텃밭 일기 121

돌아오지 않은 외삼촌

내게는 외삼촌이 한 분 있었다. 어머니의 형제 1남5녀 중 둘째가 어머니이고 셋째가 바로 그 외삼촌이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그가 열아홉 살(만 18세) 되던 해인 1950년 전쟁에 나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그 외삼촌을 많이 닮았다는 말은 어릴 적에 이모들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지금은 어머니도 이모들도 모두 안 계신다. 며칠 전 농협으로부터 문자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국방부와 농협 사이의 업무협약 체결로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6.25 전사자의 유가족 찾기'를 안내한다는 내용이었다. 외가를 포함하여 8촌 이내의 유족은 유가족 찾기에 신청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어머니를 대신하여 20년 전쯤에도 외삼촌의 유해를 찾기 위해 정부에 신청한 적이..

텃밭 일기 2020.06.29

바빠진 텃밭 식구들

떨어진 감꽃이 마당에 수두룩하다. 예로부터 저 감꽃이 지면 농가는 바빠진다. 어느덧 유월이라 계절은 여름에 접어들었고, 나도 텃밭 식구들도 바빠졌다. 지난해 늦가을에 심었던 마늘과 양파는 뽑을 때가 다 되었고, 이른봄에 심은 감자는 땅속 줄기인 감자알을 키우느라 마지막 힘을 쏟고 있을 것이다. 부추와 상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식탁을 푸짐하게 해 주고 있다. 완두는 하루가 다르게 열매가 영글어가고 있고, 추위를 피하여 늦게 심은 고추와 오이와 토마토도 이제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땡볕에서 힘겹게 사름을 한 고구마는 줄기를 본격적으로 뻗어갈 채비를 하고 있다. 고구마는 원산지가 머나먼 중남미라는데, 씨앗도 아닌 줄기가 물 한 모금으로 뿌리를 내리는 모습이 언제 보아도 대견하다. 비닐을 씌워 둔 밭에다 며칠 ..

텃밭 일기 2020.06.04

새 차 계약하기

정든 헌 차를 그만 타고 새 차를 사기로 했다. 헌 차를 버리는 것은 아니고, 맏이가 무겁고 큰 시험 장비들을 싣고 다닐 때 쓰겠다며 헌 차는 제게 주고 나더러는 새 차를 사서 타라고 했기 때문이다. 비용은 제 형제가 분담하겠다고 한다. 헌 차는 2005년식 쏘렌토 디젤 2.5인데, 산 지는 15년 가까이 되었지만 15만km밖에 타지 않았다. 그동안 관리를 잘 해서 아직은 쓸만하다. 새 차였을 적엔 가끔 부모님을 모시고 나들이를 가기도 했고, 마을 어르신들을 태우고 멀리 바닷가까지 다녀온 적도 있는 차다. 상시 4륜구동(Full Time 4WD)에 H형 프레임이 얹혀 있어서 무거운 짐을 실을 수 있었고, 험한 도로나 눈길에도 잘 다니곤 했다. 15년이란 세월이 금방 지나갔다. 이 차 이전에 내가 처음으로..

텃밭 일기 2020.05.24

접목을 하며

어릴 적에, 그러니까 국민학교 오륙학년 때쯤이었을 것이다 내가 '실과' 교과서에 나온 접목법을 배우고 나서 앞마당의 감나무 가지를 꺾어 뒤안의 돌감나무에 접붙이기를 해 본 것이. 그때가 가을이라서 가지접은 못하고 눈접을 몇 군데에다 몇 번이나 시도를 했지만 끝내 실패를 하고 말았었다. 1주일쯤 후에 잎자루가 떨어져야 눈접이 성공한 것인데, 잎자루가 말라붙어 도무지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듬해 어느 봄날에 그 돌감나무를 베어낸 그루터기에다 아버지와 함께 가지접 붙이기를 하여 성공은 했지만, 그것도 몇 년 잘 자라다가 바람에 접목 부위가 부러지고 말아 결국은 감이 열리는 것을 볼 수는 없었다. 그 뒤부터 내게는 접목이 어렵게만 느껴져 다시는 시도하지 않았었다. 나무를 번식시킬 필요가 있을 때는 씨앗을 심..

텃밭 일기 2020.04.06

그래도 봄은 왔다

보수 야당과 언론들이 만날 정부 비판에 열을 올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외신들은 한국의 코로나19에 대한 탁월한 진단 능력과 방역 시스템, 투명한 리더십에 감탄하며 하나같이 찬사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어제까지 발생한 확진자는 총 7,755명(대구 5,794명), 사망자는 60명에 이르고 있다. 며칠 전부터는 확진자 수의 증가세가 좀 주춤해졌다고 한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이탈리아, 이란, 일본,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도 바이러스는 크게 번지고 있다. 전 세계가 난리를 겪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봄은 왔다. 무언가 하긴 해야 되는데, 가만히 앉아서 오는 봄을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인데... 그래서 지난주엔 봉무동 뒷산 어귀의 오솔길가에서 겨울을 견디고 파랗게 자라고 있는 돌..

텃밭 일기 2020.03.11

도덕산에 오르며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도 만연하고 있다. 특히 '신천지'라는 종교집단을 중심으로 대구와 경북지역이 심하다. 오늘 아침 질병관리본부의 발표를 보면 확진 환자가 밤 사이에 60명이 늘어 총 893명(대구 경북 749명)에 이르고 사망자는 9명이라고 한다. 바이러스가 광범위한 지역사회에 전파되는 단계에 접어들고 보니 뒷산 산책로에 나가기도 꺼려진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멧돼지 만나기보다 더 겁이 날 지경이다. 그래서 어제는 집에서 뉴스만 보겠다는 아내를 두고, 지도를 보고 인적이 드물어 보이는 산을 찾아 혼자 등산을 하였다. 칠곡군에 있는 도덕산(해발 660m)이었는데, 차를 몰고 팔공산 순환도로 서쪽 끝으로 가서 송림사 앞을 지나 '도덕암' 아래에 주차를 하였다..

텃밭 일기 2020.02.25

기다리며 사는 사람

나이를 먹을 만큼 먹으면 사람은 아득한 옛날을 한없이 그리워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다가올 앞날에 있을 무언가를 끊임없이 기다리며 사는 것이 또한 사람인 것 같다.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탓하다가도 겨울이면 봄이 와서 어서 꽃이 피기를 기다리고, 여름이면 가을이 빨리 와서 열매가 익고 단풍이 곱게 들기를 기다린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겨울에 접어들자 펑펑 눈이 쏟아지기를 기다리다가, 이렇게 겨울이 내내 따뜻해서 눈 구경은 글렀구나 싶으니 이젠 봄비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주엔 오랜만에 텃밭에 가서 몇 그루 안 되는 복숭아나무와 매화나무의 가지치기를 내가 하는 동안, 아내는 마늘밭에 씌워진 투명 비닐에 구멍을 뚫어 손가락 길이 만큼씩 자란 파란 마늘 싹을 비닐 밖으로 꺼내 주었다. 몇 주 전엔..

텃밭 일기 2020.02.05

겨울이면 떠오르는 추억 하나

12월도 중순으로 접어들어 날씨가 겨울다워졌다. 텃밭에 나갈 때나 걷기 운동을 할 때 지금까지는 맥고모자처럼 생긴 챙이 넓은 여름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이제 날씨가 추워지고 보니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등산복 가게에 들러 방한모자를 하나 샀다. 귀덮개를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고 가볍고 포근한 촉감의 소재로 만들어진 멋진 모자다. 겨울 모자까지 쓰고 보니 떠오르는 추억이 또 하나 있다. 부모님께 걱정을 많이 끼쳐 드린 아픈 사건이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그것은 따스하고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국민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였나 보다. 두 살 위인 사촌형과 함께 동네 앞의 얼어붙은 논바닥에서 썰매를 타고 놀다가 얼음이 깨지는 바람에 바짓가랑이를 적셨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돌아서서 불을 쬐며 ..

텃밭 일기 2019.12.12

담장을 허물다

산가의 동쪽 돌담 바로 너머엔 물이 졸졸 흐르는 작은 도랑이 있었다. 예전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이 도랑의 맑은 물을 마시며 살았고, 거기엔 가재와 산개구리도 많이 살았다. 팔공산에 순환도로가 생긴 뒤부터는 도랑물을 식수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가재도 사라졌었다. 지난해 이맘때엔 그 도랑의 상류 구간을 구청에서 지름 20cm짜리 플라스틱 주름관을 묻어 복개하였다. 도랑 둑이 무너져 물이 자꾸 새고 낙엽이나 나뭇가지들로 막히니까 아래쪽에서 미나리 등의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민원을 넣었던 모양이다. 도랑을 복개할 땐 무척 섭섭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을에 가구 수가 많았을 적엔 봄이면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도랑을 치는 일이 떠들썩하고 즐겁고 술과 음식이 있는 큰 행사였지만, 지금은 그럴 사람들이 없으니..

텃밭 일기 2019.11.29

구절송 전망대에 다시 올라

지난 3월이었던가 보다. 구절송 전망대에 마지막으로 올랐던 것이. 봄과 여름이 왔다가 가고 가을도 다 가려는 오늘, 8개월여 만에 다시 올랐다. 단산지 중간길을 돌아 그곳으로 가는 길목엔 4차 외곽순환도로 공사가 아직도 진행 중이었는데, 그 도로의 터널 위로 가로지르는 등산로 구간엔 방부목으로 만든 길고도 근사한 계단이 새로 설치되어 있었다. 오르막길에서도 내 걸음은 예전처럼 가벼웠다. 구절송은 여전히 푸르렀다. 지금이야 소나무를 여러 가지 인위적인 수형으로 많이 가꾸지만, 저렇게 오래된 소나무가 아홉 개나 되는 줄기를 한 뿌리에서 고르게 뻗으며 산등성이에 자생하는 예는 흔치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땔나무가 귀해서 야산들이 모두 민둥산이 되었던 시절에도 베어지지 않고 살아남아 100살쯤이나 먹었다니 놀라..

텃밭 일기 2019.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