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바빠진 텃밭 식구들

공산(空山) 2020. 6. 4. 20:51

떨어진 감꽃이 마당에 수두룩하다. 예로부터 저 감꽃이 지면 농가는 바빠진다. 어느덧 유월이라 계절은 여름에 접어들었고, 나도 텃밭 식구들도 바빠졌다. 지난해 늦가을에 심었던 마늘과 양파는 뽑을 때가 다 되었고, 이른봄에 심은 감자는 땅속 줄기인 감자알을 키우느라 마지막 힘을 쏟고 있을 것이다. 부추와 상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식탁을 푸짐하게 해 주고 있다. 완두는 하루가 다르게 열매가 영글어가고 있고, 추위를 피하여 늦게 심은 고추와 오이와 토마토도 이제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땡볕에서 힘겹게 사름을 한 고구마는 줄기를 본격적으로 뻗어갈 채비를 하고 있다. 고구마는 원산지가 머나먼 중남미라는데, 씨앗도 아닌 줄기가 물 한 모금으로 뿌리를 내리는 모습이 언제 보아도 대견하다. 

 

비닐을 씌워 둔 밭에다 며칠 전에는 참깨와 검정콩을 직파하고 비둘기를 의식하여 콩 이랑은 그물로 덮고 내가 만든 가짜 구렁이도 한 마리 풀어 두었다. 흰콩은 유월 중순에 파종할 것이다. 올해는 고구마, 콩, 옥수수를 한 밭에다 심어 고라니와 멧돼지가 들어오지 못하게 튼튼한 그물 울타리까지 쳤다. 그 울타리를 믿고 오랜만에 땅콩도 조금 심었지만 내가 캘 때까지 정체 모를 그 짐승이 내 몫을 남겨둘지는 미지수다. 들깨는 별도의 모판에 파종하여 참새가 넘보지 목하도록 역시 그물로 덮어 두었다. 들깨와 참깨와 콩은 가뭄에 발아가 힘들 것 같아 물을 수시로 뿌려 주고 있다. 

 

농작물이 사람에게 수확기를 알려 주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벼와 조는 열매가 익으면 고개를 푹 숙이지만, 수박은 두드리면 통통 울리는 소리를 내어 준다. 감, 사과, 복숭아 같은 과일들은 낯빛부터 달라진다. 왕보리수, 오디, 블루베리, 토마토, 고추도 색깔로써 익은 것을 쉽게 구별할 수 있게 해 준다. 밤나무는 가시 투성이 주먹을 펴 알밤을 직접 보여 주고 그런데,  다 자란 양파는 특이하게도 일제히 푸른 대궁이를 밭이랑에 벌러덩 눕혀 수확기가 되었음을 알려 준다. 그동안 가꾸느라 수고해 준 당신이 이젠 날 뽑아 가도 좋은 때가 되었으니 맘대로 하라는 투의 그 자세가 애처로우면서도 재미있고 우습다. 대궁이가 마를 때까지 빳빳이 서 있는 마늘과는 대조적이다.

 

올해는 완두가 텃밭을 가꾼 이래 가장 풍년이 든 해가 될 전망이어서 아내와 나는 벌써 흐뭇해져 있다. 오늘은 한 움큼 따서 삶아 맛도 보았다. 내가 알고 있었던 상식에 의하면 뿌리혹박테리아를 가진 콩과식물은 비옥한 땅보다는 척박한 땅에 심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올봄에 완두가 하도 약하게 자라길래 포기 옆을 파고 웃거름을 살짝 넣고 물을 자주 대어 주었더니 웃자람이 걱정될 정도로 줄기와 잎의 세력이 좋아졌고, 크고 토실한 꼬투리가 많이 달렸다. 만약 완두가 아니고 콩이 저렇게 무성했다면 틀림없이 쭉정이 꼬투리에 흉년이 들고 말았을 것이다. 

 

 

뽑을 때가 된 양파,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저렇게 누웠다.
꼿꼿이 서 있는 마늘(왼쪽)과 누운 양파가 대조적이다.
왕보리수, 익은 것과 익지 않은 것의 구분이 분명하다.
꼬투리가 토실해져 가고 있는 완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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