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121

빛바랜 단풍

올해의 팔공산 단풍은 그다지 곱지 않다. 산으로 가는 입구, 그러니까 미대마을에서 백안마을까지의 은행나무 가로수는 그런 대로 나은 편이나 순환도로쪽으로 들어서면 단풍나무와 벚나무들이 단풍도 채 들기 전에 이파리가 갈색으로 말라 오그라진 것이 많다. 아마도 가을 들어 계속된 가뭄 탓인 것 같다. 그리고 유난히 길었던 지난 장마의 영향도 있는 것 같고. 그러고 보니 햇볕, 구름, 바람, 비, 눈, 기온, 안개, 습도, 서리 등의 기후요소가 자연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새삼 알 만하다. 4년 전에 찍은 사진을 보면 극락이 따로 없구나 싶을 정도로 곱디고왔던 부인사의 단풍도 올해는 그렇지 않다. 선명한 자색으로 물들었던 절 입구의 느티나무, 그 느티나무와 대비가 되던 붉은 살구나무와 노란 벚나무도 구분이 ..

텃밭 일기 2019.11.05

메뚜기잡이

일전에 아내가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메뚜기를 잡으러 가서 한 홉쯤 잡아 오더니, 오늘은 나더러 메뚜기를 또 잡으러 가자고 했다. 무엇에든지 애살있는 아내로서는 그날 잡은 메뚜기가 너무 적어서 아쉬웠던 모양이다. 그날은 처음이라서 메뚜기가 많은 곳을 찾아 헤매느라 많이 잡지 못했다며 다시 가면 많이 잡을 수 있다는 아내의 말에 나는 솔깃해졌다. 새벽 다섯 시 반에 출발하여 집에서 차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인 의성군 쪽으로 향했다. 메뚜기는 해가 뜨고 이슬이 마르면 활동성이 강해져서 잡기가 힘들기 때문에 아침 일찍 잡아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오늘은 날이 흐려서 이슬이 마르는 시간이 더딜 것 같아 잡기가 좀 더 좋을 것이었다. 아내가 잡았다는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완전히 밝았는데, 낮은 산자락에 자리잡..

텃밭 일기 2019.10.23

서울서 만난 좀작살나무

어릴 적 학굣길은 시오리 가까이나 되는 먼 길이었다. 살던 곳이 팔공산 중턱에 자리 잡은 하늘 아래 첫 동네이다 보니 등굣길은 줄곧 내리막이고 하굣길은 숨차는 오르막이었다. ‘독 씻고 단지 씻고’ 하나 뿐인 귀한 아들이 먼 길을 다니기가 힘들까 봐 부모님은 한 살을 더 먹여 아홉 살에 나를 국민학교에 입학시키셨다. 봄날엔 그 길가에 참꽃(진달래), 찔레꽃, 조팝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여름날의 하굣길엔 중간의 큰 솔밭과 아랫마을 어귀의 당산 느티나무 숲이 있어 거기서 무거운 책가방을 내려놓고 쉬기에 좋았다. 꼬박 9년을 걸어 다녔으니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눈을 감으면 길바닥에 박힌 돌부리 하나까지 훤하다. 근년에 나는 아스팔트 대로를 두고 일부러 그 좁은 길을 가끔 다니며 추억에 잠길 때도 있다..

텃밭 일기 2019.10.06

태블릿 PC

내가 데스크탑 PC를 쓰다가 노트북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016년 초였다. 당시에 나는 트럼펫 연습을 위한 반주기 구입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마침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Dr. Kim이 성능 좋은 노트북을 사주어서 별도로 구입한 반주기 프로그램을 거기에다 얹어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반주기 뿐만 아니라 인터넷 사용, 사진과 문서의 작성과 보관, 블로그 운영 등의 PC 기능들을 충분히 활용해 왔다. 다음의 글은 당시 SNS에 올렸었던 것인데, 처음 만든 블로그에 대한 나의 프롤로그였던 셈이다. "북방족제비의 꿈 // 연초에 내겐 성능 좋은 노트북이 하나 생겼다. 이 물건을 만져 보고 두드려 보고 Window10이라는 문을 열고 들락거려도 보노라니, 앞으로 나의 아늑한 토굴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 ..

텃밭 일기 2019.09.22

꽃피운 일지출

나는 오래전부터 아파트 베란다와 거실 창가를 난실로 삼아 난을 키우고 바라보며 살아왔다. 그렇지만 난의 종류나 포기수가 썩 많은 것은 아니고, 예닐곱 종류에 여남은 포기를 키우고 있을 뿐이다. 별도의 난실을 갖추지 못한 나로서는 열악한 환경에서 버텨 주는 난에게 미안해서도 더 욕심을 내어 난의 식구들을 늘려 볼 엄두를 못 내었던 것이다. 이들 식구들 중에는 친구가 키우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며 시들어 죽기 직전에 내게 맡긴 것도 있는데, 내게 와서 그래도 깨어나는 걸 보면 마음이 뿌듯해지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포기수가 많이 늘어날 수가 없고, 꽃도 해마다 피우지 못하고 해거리를 하거나 몇 년 만에 한 번씩 피울 때도 있다.  지금은 오랜만에 일지출(日之出)이 꽃을 피워 청향이 집 안에 가득하다. ..

텃밭 일기 2019.08.31

불로5일장

불로 장날이다. 장날이면 아내와 함께 구경을 나가곤 하는데, 오늘은 아내가 문화센터 가는 날이라 차려놓은 점심을 먹고 혼자 장터로 향했다. 집에서 걸어서 15분이면 장에 도착할 수 있다. 햇볕은 따가웠지만 바람은 이제 제법 서늘했다. 불로5일장은 전통이 아주 깊다. 내가 어릴 적엔 해안장이라고 했었다. 부근에는 왕산(王山), 공산(公山), 파군치(破軍峙, 파군재) 등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 전적지가 있는데, 이 불로(不老)라는 지명도 지묘(智妙), 독좌암(獨坐岩), 시래이(실왕失王), 해안(解顔), 반야월(半夜月), 안심(安心) 등의 지명과 함께 태조가 군사를 모두 잃고 혼자서 도망가던 길목에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이곳이 달성군 해안면에 속해 있던 옛적엔 해안장이라 했고,..

텃밭 일기 2019.08.20

단산지와 가족사진

지난해 말 이후부터는 단산지가 아주 가까운 곳이 되었지만 그전까지는 먼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15년 전에 부모님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있다. 2004년 5월 8일 어버이날에 찍은 사진이다. 아내와 내가 지금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사진을 찍던 날 부모님과 함께 했던 일들에 대한 뚜렷한 기억은 나지 않았다. 그 무렵에 아버지께서 당신의 평생에 처음으로 병원(파티마병원)에 일주일 가량 입원하신 적이 있었는데, 이 날이 퇴원하신 날이 아니었을까 하고 어렴풋이 짐작만 갈 뿐이었다. 때마침 어버이날이기도 해서 아마도 어디서 함께 이른 점심 식사를 한 후에 산가로 모시고 가는 길에 잠시 이곳에 들러 바람을 쐬며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나는 아내가 당시에 직접 바느질하여 만들어준 개량한복을 입고 있다. 사진..

텃밭 일기 2019.07.28

포도

포도에 대해서라면 할 이야기가 참 많다. 계단식 논에 벼농사를 지으시던 부모님이 그 논에 포도나무(캠벨어리)를 심으신 건 1980년대 초반이었다. 그때 아버지는 60대로 접어드는 연세였고 나는 20대 후반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휴일이 오면 나와 아내는 부모님을 도왔고, 포도나무에 농약을 치거나 수확한 포도를 공판장에 싣고 가는 건 내가 도맡은 일이었다. 20여년 짓던 포도농사를 그만두게 된 것은 2000년대 초반이었다. 자급자족에 그치던 벼농사에 비하여 포도는 돈을 만지게 해 주었으나 세월이 지나도 포도값은 제자리걸음이었고, 게다가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무역협정인 한-칠레 FTA가 체결되어 포도값이 폭락할 우려가 생기자 정부에서 약간의 보조금을 주어 포도 농가의 폐업을 독려했던 것이다. 중장비를 동원..

텃밭 일기 2019.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