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도 만연하고 있다. 특히 '신천지'라는 종교집단을 중심으로 대구와 경북지역이 심하다. 오늘 아침 질병관리본부의 발표를 보면 확진 환자가 밤 사이에 60명이 늘어 총 893명(대구 경북 749명)에 이르고 사망자는 9명이라고 한다. 바이러스가 광범위한 지역사회에 전파되는 단계에 접어들고 보니 뒷산 산책로에 나가기도 꺼려진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멧돼지 만나기보다 더 겁이 날 지경이다.
그래서 어제는 집에서 뉴스만 보겠다는 아내를 두고, 지도를 보고 인적이 드물어 보이는 산을 찾아 혼자 등산을 하였다. 칠곡군에 있는 도덕산(해발 660m)이었는데, 차를 몰고 팔공산 순환도로 서쪽 끝으로 가서 송림사 앞을 지나 '도덕암' 아래에 주차를 하였다. 이 산은 구절송 전망대에서도 응해산 너머로 멀리 봉우리가 보이지만 처음 와 보는 산이다. 그러니까 동서로 길게 늘어선 팔공산 주능선의 서쪽 끝이 가산이라면, 그 가산의 맞은편에 나앉은 것이 이 산이다. 차에서 내려 도덕암 진입로를 걸어 오르는데 경사가 40도는 돼 보여서 처음부터 숨이 찼다. 도덕암 마당을 받치고 있는 높은 축대의 돌 틈에서 나온 다람쥐 한 쌍이 나를 반겨 주었다. 바로 그 마당의 왼쪽과 오른쪽 끝에서 등산로가 시작되었는데, 나는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 등산로는 거칠고 한적하였지만 중턱에 벤치가 한 군데 놓여 있었고 이정표도 서 있었다. 정상에 서 있는 표지석은 아담했다. 팔공산 주능선이 한눈에 건너다 보였지만 평소에 바라보던 각도와 많이 달라서 낯설었다.
어릴적에 나는 팔공산 기슭의 고향집에서 저녁놀이 지는 쪽으로 서쪽 바다가 나올 때까지 걸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산이 나오면 산을 넘고 들판과 강이 나오면 들길을 걷고 강을 건너면서 말이다. 그러면 결국 변산반도 쯤에 다다르게 되겠지만, 나는 여태 그 생각을 실행해 보지는 못했다. 그 대신 젊었던 시절에 열차와 시외버스를 번갈아 타고 대전과 정읍을 거쳐 고창과 변산 바닷가에 두어 번 가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아직은 늦지 않았다. 걸어서 못 가면 자전거를 타고서라도 서쪽으로 서쪽으로 가 볼 날이 있을 것이다. 내가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서쪽으로의 여정에 첫 관문이 바로 이 도덕산을 끼고 돌아가는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멀리 내려다 보이는 저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오늘따라 한결 가까이 보이는 가야산을 왼편에 끼고 돌아가면 남덕유산이 오른쪽으로 보일 것이다. 육십령을 넘고 마이산을 지나 전주천을 건너서, 지루한 김제평야를 지나면 이윽고 서해의 저녁놀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혼자 걷는 산길은 즐거웠다. 하산길 8부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라는 이정표를 놓치고 엉뚱한 능선길로 마냥 훑어졌다가 뒤늦게 잘못 든 것을 깨닫고 다시 산을 오르며 땀은 좀 흘렸지만. 그리고 저 바이러스 소동이 언제쯤 수그러들지 걱정도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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