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시인론 11

김상환 시인 - 김지혜(hellowis)

대구경북의 문인김상환 시인 알고 느끼는 것의 한 방법으로 시 선택했죠 김상환 시인은 “그저 시가 좋아서, 공부가 좋아서 묵묵하게 시인의 길을 고집해 왔다. 최근에는 문학적 관심과 지향점을 현(玄)과 비(非), 공(空) 등의 비한정사에 두고 문학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달 뜨지 않은 밤에/나는 심천 미루나무 숲속에/짐승처럼 쭈그리고 앉아/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타는 음성을/듣는다//원무(圓舞)를 그리며/우리를 에워싸고 있는/간증의 불꽃은 삼경을 지나/더욱 간절한 몸부림으로 떤다//나는 살을 쥐어 뜯으며/본향을 생각하다/꿈에만 출항하는 영혼의 뱃고동 소리에/시선이 멎다//어차피 모래알처럼 부서질//너와 나는/일어나 숲속을 헤매다,/깊이도 모를 바다의 숲속에/닻을 내린다 머무름과 떠남, 삶과 죽음 사이에서 ..

시론, 시인론 2020.09.23

친일문학상 폐지론 - 맹문재

친일문학상 폐지론 맹문재 1. 2019년 4월 12일 최재봉 《한겨레》 신문기자는 지난달에 간행된 김혜순 시인의 새 시집 『날개 환상통』을 소개하면서 시인이 연루된 적 있는 5·18문학상 소동이 시집의 창작 동기라고 보았다. 그 근거로 “그들은 말했다/애도는 우리 것/너는 더러워서 안 돼”(「날개 환상통」 부분), “나와봐! 나와봐! 네 면상을 치고 말 테다/(…)/저들과 싸울 거야/저들을 벨 거야”(「바닥이 바닥이 아니야」), “나에게 우파에 좌파에 모더니스트에 친일파에 온갖 병을 뒤집어씌워도/나는 울지 않아 대신 내 콧물 가래나 받아”(「구속복」 부분) 등의 시들을 들었다. 5·18문학상 소동이란 2017년 5·18기념재단이 제정 및 운영한 5·18문학상에 선정된 김혜순 시인과 관계된 일이다. 문제가..

시론, 시인론 2020.01.13

비운의 청년 시인, 윤동주 - 이바라기 노리코

비운의 청년 시인, 윤동주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子, 1926~2006) 한국 사람에게 “좋아하는 시인은?” 하고 물어보면 “윤동주”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20대가 아니면 절대로 쓸 수 없는 이 맑고 정갈한 시풍은 젊은이를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오래 살수록 부끄럼 많은 인생이 되어 영혼까지 맑아지는 이런 시는 도저히 쓸 수 없어진다. 젊어 요절한 시인에게는 특권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 젊음이나 순결을 그대로 동결시킨 것 같은 맑고 깨끗함이 후세의 독자까지 매료시켜 항상 수..

시론, 시인론 2019.03.01

시지프스의 나무, 그 역설의 존재론 - 이영광론 - 신수진

시지프스의 나무, 그 역설의 존재론 ⸺이영광론 신수진 1. 경사지고 거꾸로 선 각도의 위상학 인간을 위해 죽음의 신을 쇠사슬로 묶었지만 신에게 붙잡혀 영원한 벌을 받는 시지프스의 신화를 통해 카뮈는 부조리에 대해 사유한다. 1) 그가 주목한 것은 바위가 정상에 닿자마자 다시 저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순간, 주저 없이 고통의 근원으로 다시금 향하는 시지프스의 바로 그 돌아서는 순간이다. 시지프스는 자신의 비참한 존재 조건을 감히 통찰하고 부조리한 삶을 무한히 들어올림으로써 결코 패배하지 않는 반항적 인간으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시지프스의 결의와 반복처럼 이영광은 계속해서 쓴다. 우울과 명랑을 진자처럼 오가며 그는 끝없이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지고 절벽을 오른다.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 아니 그건 너무 ..

시론, 시인론 2019.01.03

위대한 시인, 자유를 독백하다 - 김재혁

[세계의 문학] 한여름에 읽는 독일 서정시의 황홀경 위대한 시인, 자유를 독백하다 김재혁 시인·고려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감각은 과일의 꽃과 같은 것…진정한 시는 자유를 꿈꾸며, 시적인 자유는 새로움에 대한 끝없는 탐험 시의 근본에는 시인의 고백이 깔려 있다. 괴테도 고백했고 횔덜린도 고백했으며 첼란도 고백했다. 괴테는 자신을 고백하여 천상에 이르고자 했고, 횔덜린은 시인의 사명을 설파했으며, 첼란은 존재의 어둠 속에서 침묵의 심연에 이르렀다. 한여름에 읽는 독일 서정시의 세계에는 거듭 읽어도 줄지 않는 언어의 기쁨이 있다. 그 향연에서 우리는 날카로운 쾌락과 정신의 상승을 경험한다. ▎독일 튀링겐주 바이마르시 국립극장 앞에 있는 독일 시인 괴테(왼쪽)와 실러 동상. 괴테와 실러 두 사람은 독일 서정시 전..

시론, 시인론 2017.10.05

시조시인 조운과 탱자의 꿈 - 정 양

시조시인 조운과 탱자의 꿈 정 양 한겨울 얼음장 밑으로 흘러온 시냇물처럼 조운과 그의 예술을 기리고 아끼는 이들의 마음들이 면면히 이어져 마침내 지난 해 여름 그의 시조집이 복간되고 그의 시비도 세워졌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일 년 전인 1949년에 가족들과 함께 월북했던 시조시인 조운(曺雲)(본명 柱鉉, 1900년생)은 월북 이후의 행적이 아직 공식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다. 문단에 단편적으로 알려져 있는 그에 관한 소식들은 월북 이후, 그가 공산당 중앙위원을 비롯한 공직들을 역임했었다는 것, 두 권의 민요집을 발간했다는 것, 한국전쟁 중에 그의 셋째아들이 인민군 해군장교로 복무하다 전사했다는 것, 북한사회에서 문화계의 ‘큰별’로 추앙받고 있다는 것 등등이 고작이다. 그는 임화, 김남천, 한설야 등 상당..

시론, 시인론 2017.01.24

행동하는 지식인 단재 신채호 - 신충우 단재사관 연구소장

행동하는 지식인 단재 신채호 - 신충우 단재사관연구소장 1, 고드미장꾼 충청도 산골에 '고드미장꾼'이란 말이 있다. 내가 40여전 고향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할아버지(신진구(申振求))·할머니(김이분(金二分))를 따라 장에 다니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로 지금도 회자(膾炙)된다. 고드미장꾼이란 5일에 한 번씩 서는 장에 와 남의 술자리에 끼어 안주나 축을 내는 가난한 장꾼을 일컫는 말이다. 충북 청원의 미원과 낭성지역에서는 지금도 이 말이 통용된다. 친구나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할 때 술은 안마시고 안주만 축내는 사람을 보면 '고드미장꾼'이라고 놀려댄다. 고드미라는 마을은 충북 청원군 미원(쌀안)장터에서 서북쪽으로 4.2㎞ 정도 떨어진 하늘만 빼곰히 보이는 오지 중 오지다. 미원에서 청주방향으로 1...

시론, 시인론 2017.01.01

조선 혁명 선언 - 단재 신채호 초안

조선 혁명 선언 단재 신채호 초안 1 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를 없이 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 생존적 필요조건을 다 박탈하였다. 경제의 생명인 산림·천택(川澤)·철도·광산·어장 내지 소공업 원료까지 다 빼앗아 일체의 생산기능을 칼로 베이며 도끼로 끊고, 토지세·가옥세·인구세·가축세·백일세(百一稅)·지방세·주초세(酒草稅)·비료세·종자세·영업세·청결세·소득세―기타 각종 잡세가 날로 증가하여 혈액은 있는대로 다 빨아가고, 어지간한 상업가들은 일본의 제조품을 조선인에게 매개하는 중간인이 되어 차차 자본집중의 원칙하에서 멸망할 뿐이요, 대다수 민중 곧 일반 농민들은 피땀을 흘리어 토지를 갈아, 그 일년내 소득으로 일신(一身)과 처자의 호구 거리도 남기지 못하고, 우리를 잡아 먹으려는 일본 강도에게 갖..

시론, 시인론 2017.01.01

가능성과 한계의 시 - 변희수

가능성과 한계의 시 변희수 시인 '시는 모든 문학의 가능성이다.' 시를 단순히 장르적으로 대하지 않는 이 멋진 말을 발견했을 때 스스로 기고만장한다. 문학과 가능성, 이 두 단어의 조합은 실로 벅차다. 초월적이고 우주적이다. 특히 시에 대해서 스스로 자폐적 인식을 키워왔던 내게 일종의 보상심리 같이 작용한다. 어찌되었든 일단 우리는 이 아름다운 말의 가능성을 끝까지 믿어보기로 하자. 미래는 믿는 자의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범위를 좀 더 넓게 잡아보자. 시는 문학의 가능성이면서도 문학을 벗어난 모든 것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특히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득실거리는 21세기의 아침이라면 시는 시와 시 밖의 모든 사물들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방금 마신 커피 한 잔,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이 딱딱한 키보드,..

시론, 시인론 2016.04.19

새로운 시의 길을 찾아서 - 황지우

새로운 시의 길을 찾아서 황지우 시의 출발은 항상 사춘기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시를 처음 썼던 때가 중학교 3학년 때 쯤으로 생각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어디론가 가버리고 싶고 괜히 누군가 보고 싶어지곤 했었습니다. 두근거리는 동경이라고 할까, 설렘이 있던 바로 그 자리가 시가 태어난 자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 자신 대학에서 시작법을 가끔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는 걸 느낀 적이 많습니다. 시에 대해서 일정한 이해나 믿음들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기본적인 약속 아래서 시 쓰기를 해야 할 텐데 딱히 '시는 이런 거다'라고 말하기는 참으로 힘듭니다. 제 경우에는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를 보여 주는 것으로 끝나곤 합니다. 후줄근한 차림새의..

시론, 시인론 2016.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