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가의 동쪽 돌담 바로 너머엔 물이 졸졸 흐르는 작은 도랑이 있었다. 예전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이 도랑의 맑은 물을 마시며 살았고, 거기엔 가재와 산개구리도 많이 살았다. 팔공산에 순환도로가 생긴 뒤부터는 도랑물을 식수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가재도 사라졌었다. 지난해 이맘때엔 그 도랑의 상류 구간을 구청에서 지름 20cm짜리 플라스틱 주름관을 묻어 복개하였다. 도랑 둑이 무너져 물이 자꾸 새고 낙엽이나 나뭇가지들로 막히니까 아래쪽에서 미나리 등의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민원을 넣었던 모양이다. 도랑을 복개할 땐 무척 섭섭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을에 가구 수가 많았을 적엔 봄이면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도랑을 치는 일이 떠들썩하고 즐겁고 술과 음식이 있는 큰 행사였지만, 지금은 그럴 사람들이 없으니 나 혼자서 복개를 말릴 수가 없는 노릇이었던 것이다.
어제는 마침 포크레인으로 땅고르기를 하는 이웃에게 부탁하여 그 동쪽 돌담의 일부――대문쪽에서부터 작은감나무까지 10m쯤을 허물어 치워 버렸다. 큰 바위가 포함되어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있던 돌담이 없어지고 복개된 도랑쪽까지 연결되니 경사가 좀 지긴 했지만 마당이 훨씬 넓어졌다. 돌담을 치우자 뿌리의 일부가 드러난 작은감나무 밑엔 축대를 쌓아주고, 복개된 도랑쪽엔 배롱나무와 진달래도 몇 그루 심었다. 오늘은 이웃에서 작업 중인 그 포크레인에 다시 부탁하여 땅속 바위가 불거진 곳에 흙을 갖다 부어 평탄하게 마당을 고르었다. 그리고 돌담 옆에 서 있다가 뽑힌 산수유나무와 어린 동백나무도 확장된 마당가에 옮겨 심고, 추위에 대비하여 동백은 짚으로 줄기를 정성스레 감싸 주었다. 백합 구근도 남쪽 돌담 앞에다 옮겨 심었다. 봄이 오면 새 마당에 잔디를 심을 것이다.
'텃밭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다리며 사는 사람 (0) | 2020.02.05 |
---|---|
겨울이면 떠오르는 추억 하나 (0) | 2019.12.12 |
구절송 전망대에 다시 올라 (0) | 2019.11.19 |
빛바랜 단풍 (0) | 2019.11.05 |
메뚜기잡이 (0) | 2019.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