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시스 잠 16

나는 당나귀가 좋아

나는 당나귀가 좋아 물풀레 나무 긴 울타리를 끼고 걸어가는 순한 당나귀가 나는 좋다. 당나귀는 꿀벌에 마음이 끌려 두 귀를 쫑긋쫑긋 움직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태워 주기도 하고 호밀이 가득 든 부대를 나르기도 한다. 당나귀는 수챗가에 가까이 이르면 버거정거리며 주춤 걸음으로 걸어간다. 내 사랑은 당나귀를 바보로 안다. 어쨌든 당나귀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당나귀는 언제나 생각에 젖어 있고 그 두 눈은 보드라운 비로드 빛이다. 마음씨 보드라운 나의 소녀야, 너는 당나귀만큼 보드랍지 못하다. 당나귀는 하느님 앞에 있기 때문이다. 푸른 하늘 닮아서 당나귀는 보드랍다. 당나귀는 피곤하여 가벼운 모양으로 외양간에 남아서 쉬고 있다. 그 가련한 작은 발은 피곤에 지쳐 있다. 당나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기가 할 일을 ..

프랑시스 잠 2016.03.11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나무 항아리에 우유를 담는 일, 꼿꼿하고 살갗을 찌르는 밀 이삭들을 따는 일, 암소들을 신선한 오리나무들 옆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일, 숲의 자작나무들을 베는 일, 경쾌하게 흘러가는 시내 옆에서 버들가지를 꼬는 일, 어두운 벽난로와, 옴 오른 늙은 고양이와, 잠든 티티새와, 즐겁게 노는 어린아이들 옆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한밤중 귀뚜라미들이 날카롭게 울 때 처지는 소리를 내며 베를 짜는 일, 빵을 만들고 포도주를 만드는 일, 정원에 양배추와 마늘의 씨앗을 뿌리는 일, 그리고 따뜻한 달걀들을 거두어들이는 일.

프랑시스 잠 2016.03.11

정오의 마을

정오의 마을… 에르네스트 카이으바르에게 정오의 마을. 금파리가 황소뿔 사이에서 윙윙대며 날고 있다. 우리는 가리라, 네가 좋단다면, 네가 좋단다면, 단조로운 들판으로 가리라. 수탉 우는 소리를 들어 봐…… 공작 우는 소리를 들어 봐…… 종소리를 들어 봐…… 그리고 저기, 저기 당나귀 우는 소리를 들어봐…… 까만 제비 한 마리가 높이 떠돌고 있다. 저 멀리로 리봉처럼 이어 서 있는 포플러나무들. 이끼에 쏠리듯 뒤덮여 있는 우물! 따르륵대는 우물 도르래 소리를 들어 봐. 아직도 따르륵댄다. 금발의 소녀가 도르래 줄로 끌어올리는 낡은 검은 물통에서 흩어져내리는 은빛 물방울. 소녀는 금발 머리 위의 물단지를 약간 기울게 하는 발걸음으로 걸어간다. 복숭아 꽃들 밑에서 화사한 햇빛에 섞이는 주름장식 같은 금발. 마..

프랑시스 잠 2016.03.09

시냇가 풀밭은

시냇가 풀밭은… 시냇가 풀밭은 빽빽하고, 무겁게 내린 비로 젖은 밀이 쓰러져 있다. 시내 둑의 나무 잎들은 짙푸르고, 버드나무들만 흐릿한 잿빛이다. 꼴(乾草)은 벌통처럼 나란히 쌓여 있고 언덕들은 너무나 밋밋하여 누군가 애무하고 있는 것 같다. 詩人 친우여, 우리들의 모든 마음의 기쁨을 앗아가는 괴로움이 없다면 모든 것이 다사로우리. 하지만 괴로움을 떠나려 함은 헛된 일. 말벌은 풀밭을 떠나지 않는 법이니. 그러니 삶이 저 갈대로 가도록 내버려 두세나. 검은 암소들이 마실 물이 있는 곳에서 풀을 뜯도록 내버려 두세나. 그래 언제까지고 괴로와하는 모든 이들을, 우리와 같은 모든 이들을 동정하기로 하세. 사실 누구나 우리와 같다네. 누구나 모두 재능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건 유일한 차이점이나 중요한 것..

프랑시스 잠 2016.03.09

이제 며칠 후엔

이제 며칠 후엔… 이제 며칠 후엔 눈이 오겠지. 지난 해를 회상한다. 불 옆에서 내 슬픔을 회상한다. 그때 무슨 일이냐고 누가 내게 물었다면 난 대답했으리라 ― 날 그냥 내버려 둬요. 아무 것도 아니에요. 지난 해 내 방에서 난 깊이 생각했었지. 그때 밖에선 무겁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쓸데없이 생각만 했었지. 그때처럼 지금 난 琥珀 빨뿌리의 나무 파이프를 피운다. 내 오래 된 참나무 옷장은 언제나 향긋한 냄새가 난다. 그러나 난 바보였었지. 그런 일들은 그때 변할 수는 없었으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들을 내쫓으려는 것은 虛勢이니까. 도대체 우린 왜 생각하는 걸까, 왜 말하는 걸까? 그건 우스운 일이다. 우리의 눈물은 , 우리의 입맞춤은 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우린 그걸 이해하는 법. 친구의 발자국 소..

프랑시스 잠 2016.03.09

너는 裸身이리

너는 裸身이리… 너는 裸身이리, 오래된 什器들이 있는 홀에서. 빛으로 된 갈대 가락(紡錘)처럼 너는 가냘프리. 그리고 다리를 포갠 채 장미빛 불 옆에서 너는 겨울소리를 들으리라. 나는 네 발 밑에서 내 팔 안에 네 무릎을 안으리. 실버들 가지보다 더 우아한 몸매로 너는 미소 지으리. 그리고 부드러운 네 허리에 내 머리를 기댄 채 나는 네 더할 수 없는 부드러움에 그만 울어버리리라. 傲然한* 우리의 시선은 우리 자신에게는 다정하리. 그래 내가 네 목에 입맞출 때, 나를 향해 미소하며 너는 눈길을 떨어뜨리리. 그리고 네 부드러운 목덜미를 휘리라. 그러다가 병들고 충직한 늙은 하녀가 방문을 두드리며 저녁이 준비되었다고 우리에게 말할 때, 너는 소스라쳐 놀라며 얼굴을 붉히리. 그리고 네 여린 손은 네 회색빛 드..

프랑시스 잠 2016.03.09

순박한 아내를 가지기 위한 기도

순박한 아내를 가지기 위한 기도 주여, 내 아내가 될 수 있을 여인은 겸손하고 다사로우며, 다정한 친구가 되도록 해 주소서. 우리가 잠잘 때에는 손을 서로 맞잡고 잠들도록 해 주소서. 그녀가 메달이 달린 은 목거리를 가슴 사이에 감추일 듯 말 듯 목에 걸도록 해 주소서. 그녀의 살갗이 늦은 여름, 조는 듯한 자두보다 더 매끄럽고 더 따뜻하고 더 금빛으로 빛나도록 해 주소서. 그녀의 마음 속에 부드러운 純潔이 간직돼 있어 서로 껴안으며 암 말 없이 미소를 짓도록 해 주소서. 그녀가 튼튼하게 되어, 꿀벌이 잠자는 꽃을 돌보듯 내 영혼을 돌보도록 해 주소서. 그리고 내가 죽을 날 그녀가 내 눈을 감기고, 내 寢床 위에 두 손을 맞붙인 채 고통의 흐느낌으로 부풀린 가슴에 숨막혀 하며 무릎을 꿇는 이외의 어떤 다..

프랑시스 잠 2016.03.09

아기가 죽지 않게 하기 위한 기도

아기가 죽지 않게 하기 위한 기도 주여, 저 조그만 아기를 계속 엄마, 아빠 품에 지켜 주소서, 풀잎을 바람 속에 지켜 주시듯. 저 울고 있는 엄마를 보시면, 피할 수 없는 일인양 얼마 후에 저 아기를 저렇게 죽게 하지 않게 해 주심이 당신께 무슨 큰 일이겠나이까? 당신이 저 아기를 살게 해 주신다면, 아기는 내년, 맑은 날 聖體膽禮*에 장미를 던지지 않으리까? 하지만 당신은 너무나 좋으신 분. 장미처럼 발그레한 뺨에 푸르스름한 주검을 놓은 것은, 주여, 당신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름다운 주위가 바라보이는 창문 곁, 엄마 옆에 아기가 놀게 하지 않으실 것이라면? 왜 이 세상에선 그렇게 못하겠읍니까? 아! 시간이 되었으니, 죽어 가는 저 아기 앞에서, 주여, 당신은 언제나 당신 어머니 옆에 살고 계시다는 ..

프랑시스 잠 2016.03.09

당나귀와 함께 天國에 가기 위한 기도

당나귀와 함께 天國에 가기 위한 기도 오 주여, 내가 당신께로 가야 할 때에는 祝祭에 싸인 것 같은 들판에 먼지가 이는 날로 해 주소서. 내가 이 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낮에도 별들이 빛날 天國으로 가는 길을 내 마음에 드는 대로 나 자신 선택하고 싶나이다. 내 지팡이를 짚고 큰 길 위로 나는 가겠나이다. 그리고 내 동무들인 당나귀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나이다 ― 나는 프랑시스 쟘. 지금 天國으로 가는 길이지. 하느님의 나라에는 지옥이 없으니까. 나는 그들에게 말하겠나이다 ― 푸른 하늘의 다사로운 동무들이여, 날 따라들 오게나. 갑작스레 귀를 움직여 파리와, 등에와, 벌들을 쫓는 내 아끼는 가여운 짐승들이여……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이 짐승들 사이에서, 주여, 내가 당신 앞에 나타나도록 해 주소서. 이들은..

프랑시스 잠 2016.03.09

광 속, 울퉁불퉁하고

광 속, 울퉁불퉁하고 ― 앙드레 지드에게 광 속, 울퉁불퉁하고 단단히 다져진 땅 위에 마디에서 잘리고 쪼개어진, 진흙 묻은 참나무 가지들을 싣고 달구지가 자고 있었다. 요란하게 붕붕대며 돌아가던 打穀機는 끈기 있게 기다리고 있는 황소들 가운데서 멈춰 서 있고, 잡동산이 조그만 조각들이 땅 위에 흩어져 있었다. 그때, 광의 들보 위에 있는 둥우리에서 하나님의 닭인 제비 새끼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자 두 小作人이 느리지만 능란하게 다른 이들 어깨 위에 뛰어 올라, 가를 둥글게 높인 양철 조각 하나를 못으로 천장에 붙였다. 거기에 그들은 밀짚을 채우고 떨어진 새끼 제비들을 올려 놓았다. 그때 어미 제비가 겁 먹은 듯, 하늘 위로 길게 선들을 그리며 날아 올랐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어미 제비는 둥우리로 ..

프랑시스 잠 2016.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