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120

친구의 농막

40년 전에 나랑 입사동기가 되었던 친구 금용은 정년퇴직 후에 새로 땅을 마련하여 텃밭을 가꾸고 있다. 그곳은 그의 고향 부근인 풍기읍의 소백산 자락인데, 멋진 농막을 마련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도 반년이 넘었지만 코로나 펜데믹과 나의 게으름 탓에 그동안 벼르기만 하다가 드디어 오늘 구경을 가기로 했다. 아침에 아내와 함께 차를 몰고 출발하여 고속도로와 국도를 2시간 가까이 달려 열시쯤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친구가 이곳으로 아주 이사를 한 것은 아니어서 경산에서 여기까지 가끔 내왕을 하려면 멀어서 힘들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지막하면서도 예쁜 철 대문 앞에 차를 세우니 주인 부부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농막은 미리 사진으로 보았던 대로 소백산 자락을 배경으로 아담하게 남향으로 서 있었다. 대문..

텃밭 일기 2022.08.09

반갑지 않은 텃밭 손님

올해는 텃밭 한쪽에 심은 옥수수의 작황이 좋았다. 씨앗을 새로 사지 않고 작년에 사서 심어 수확한 옥수수자루 두 개를 벽에 매달아 두었다가 심었었는데 유전자가 열성화 하지 않았는지 잘 자랐다. 이제 막 익기 시작하여 며칠 전에는 몇 개 꺾어서 삶아 맛도 보았다. 제철에 먹고 남으면 올해는 조금 냉동해 뒀다가 겨울에 먹어야겠다고, 아내는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이틀만에, 어제 아침 텃밭에 가 보고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옥수수 이랑이 난장판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 키보다 큰 옥수숫대를 옆으로 눕히거나 분질러 갉아먹은 옥수수자루가 땅바닥에 수두룩하게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알이 아직 차지 않은 것은 전혀 건드리지 않고 알이 찬 것만 용케도 골라서 까 먹었다. 텃밭을 둘러친 '노루망' 울..

텃밭 일기 2022.07.23

가 보고 싶었던 길

올 장마는 며칠마다 한 번씩만 비가 내리고 맑은 날이 많아 텃밭 식구들이 건강히 자라고 있다. 지난해와는 달리 참깨는 아직 시들음병이나 역병이 없이 꽃을 잘 피우고 있다. 봄 가뭄 때 진딧물이 많이 끼었었고 우박까지 맞아서 몰골이 형편없었던 토마토와 고추도 지금은 많은 열매를 맺고 있다. 땅콩은 땅속으로 씨방자루(자방병)를 한창 내리는 중이라서 며칠 전에 북돋우기를 해 주었고, 옥수수는 먼저 익은 것 몇 자루를 벌써 가꾼 사람에게 내주었다. 어제는 텃밭에 설치되어 있는 동력 분무기의 호스를 산가 마당까지 멀리 뻗쳐 감나무에 살충제와 살균제를 섞은 농약을 쳤다. 잡초를 뽑거나 베고, 산짐승이 들어오지 못하게 울타리를 단속하고, 웃자라지 않도록 순을 따 주고, 말목을 박고 줄을 쳐서 자세를 잡아 주며 웃거름..

텃밭 일기 2022.07.20

이종들과의 만남

내게는 이모가 네 분 있었다. 엄마 위로 한 분, 엄마 아래로 세 분. 그 중 가장 가까운 곳에 살던 셋째 이모와 가장 가까이 지냈었다. 셋째 이모 슬하엔 1남2녀의 이종들이 있는데, 그들은 어릴 적부터 방학을 하면 우리집에 와서 살다시피 했다. 산골이다 보니 여름엔 모기나 풀벌레에게 물려 가려우니까 긁어서 팔다리에 부스럼이 끊일 날 없었다.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 때 학교가 가까운 그 이모집에서 학교에 다녔는데, 방 두 칸에 부엌 한 칸, 그야말로 초가삼간을 슬레이트와 시멘트 블록으로 개조한, 여름엔 더 덥고 겨울엔 웃풍이 세어서 추운 집이었다. 이모와 이모부는 두 이종 여동생과 함께 큰 방에서 주무시고, 나와 이종 남동생은 작은 방에서 함께 자며 지냈다. 천장 속에선 밤마다 쥐들이 우르르 뛰어다니고, ..

텃밭 일기 2022.06.26

초여름의 선물

6월 하순, 본격적으로 성하의 계절로 접어들고 있다. 텃밭은 봄부터 많이 가물어서 그동안 물을 주느라 힘들고 바빴다. 물은 웅덩이에서 물뿌리개로 떠 뿌려 주거나 동력 펌프로 뿜어 주었다. 덕분에 마늘과 양파 농사는 그런대로 잘 되어서 며칠 전에 수확을 하였고, 참깨는 발아를 잘 하여 벌써 키가 10cm 정도로 가지런히 자라고 있다. 고라니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높은 그물 울타리를 둘러친 밭에는 땅콩, 콩, 구구마, 옥수수, 고추, 토마토, 가지, 오이도 잘 자라고 있다. 그저께는 아내와 함께 들깨 모종을 했는데, 오늘밤부터 장맛비가 내린다고 하니 사름을 잘 할 것이다. 지난 5월 하순(24일)엔 구슬만한 우박이 40분 동안이나 내려 복숭아나 자두는 성한 것이 거의 없다. 한창 자라던 고추와 토마토 새순도 ..

텃밭 일기 2022.06.23

팔공산 종주(1) - 파계재에서 염불봉까지

09:40, 00,700 파계사 앞에서 어제는 지난 가을부터 아니 몇 년 전부터 벼르던 팔공산 주능선 종주를 실행하기로 했다. 서쪽의 파계사 쪽으로 입산하여 파계봉, 서봉, 비로봉, 동봉, 염불봉까지 등반을 하고 염불암과 동화사 쪽으로 하산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파계사로 가는 버스 차창 밖으로 제법 많이 날리던 눈발이 버스에서 내릴 무렵에 슬그머니 그쳤다. 절 입구 매표소에선 1,500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사찰에서 문화재 관람료로 받는 이 입장료를 일반 등산객에게도 받는 것이 정치 이슈가 되자 최근에 일부 조계종 승려들이 집단행동에 나서는 일까지 벌어졌었다. "멋쟁이 아저씨, 등산 축하 드려요!" "팔공산을 종주하자면 이 정도 입장료는 내야겠지요?" 말없이 입장료를 내는 나에게 매표소 여직원이 던..

텃밭 일기 2022.01.26

아내의 생일 이야기

토요일인 어제는 섣달 스무날, 아내의 생일이었다. 울주의 김교수와 함께 세 식구가 정자항에 가서 점심으로 김교수가 사 주는 대게와 매운탕을 맛있게 먹었다. 한 마리에 15만원씩이나 하는 대게 두 마리와 덤으로 주는 새끼 대게 한 마리를 세 사람이 먹으니 배가 불렀다. 식당에서 나와선 고래 조형물이 있는 방파제 길을 산책도 하였다. 붉고 흰 두 마리의 고래 중에서 우리가 걸은 곳은 붉은 고래가 있는 왼쪽 방파제였다. 산책을 하면서 물미역을 좀 사고, 오랜만에 엿도 사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맛을 보았다. 전에도 한 번 이곳에 세 식구가 왔다가 돌아가면서 '반구대 암각화'를 둘러본 적이 있었는데, 그게 벌써 만 3년 전의 일이다. 어제는 돌아오는 길에 김교수의 연구실에 잠깐 들러서 차를 마시고, 울산역 앞의 ..

텃밭 일기 2022.01.23

동부도서관 시 회원 소풍

어제는 동부도서관의 시 공부 프로그램(김상환 시인의 '삶이 시가 되다' 강의) 가을학기가 끝난 기념으로 팔공산 소풍을 가는 날이었다. 그런데 회원들이 정한 소풍의 집결 장소가 딴 데가 아니라 팔공산에 있는 나의 산가였다. 나는 아침 일찍 미리 산가에 도착하여 손님 맞을 준비를 하였고, 12명의 손님들은 3대의 승용차에 나누어 타고 아침나절에 산가로 모였다. 확산 추세에 있는 코로나가 늘 걱정이었다. 참석자들은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거실에 앉아 군고구마와 과일 등의 간식을 먹으며 먼저 나의 트럼펫 연주를 들었다. 내가 환영의 의미로 연주한 노래는 '매기의 추억', '허공', '바위섬' 등 세 곡이었다. 그 다음 순서로 참석자들은 자작시를 한 편씩 번갈아 낭송했다. 이어서 김상환 시인의 짧은 문학 강의를 들..

텃밭 일기 2021.12.10

묘사(墓祀)

오늘은 11월 셋째 일요일, '들밑 김해김씨' 문중 묘사일이다. 오전 10시쯤까지 들밑재 산소에 모인 사람들은 13명이었다. 그 중에는 나를 포함한 형제 항렬이 9명, 조카 향렬이 2명, 손자 항렬이 1명이었다. 쟁쟁하던 아제들과 형님들 다 세상을 뜨시고, 더러는 몸이 불편하여 오늘 참석을 못 하셨다. 예전엔 산소가 있는 칠곡군과 들밑재 일대의 선산 여기저기를 다니며 하루 종일 묘사를 지내야 했지만, 십수 년쯤 전부터는 이곳 들밑재 선산에다 비석을 새로 세워서 흩어져 있던 윗대 조상들을 한 곳에 모시고 한꺼번에 간소하게 묘사를 지낸다. 세태에 밀려 해마다 줄어드는 참석인원과 위축되어 가는 행사가 안타까울 뿐이다. 제사를 지낸 후 참석자들은 음복을 하며, 어릴적에 아버지를 따라 묘사를 지내러 가던 일, 학..

텃밭 일기 2021.11.21

'줌 인 아티스트(Zoom in Artist)' 촬영

지난 여름에 나는 대구문화재단의 '2021 문화예술 랜선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인 '지역예술인 영상프로필 제작 지원(줌 인 아티스트)’에 신청을 하고 선정이 되었었다. 시각예술, 다원예술, 전통예술, 음악, 연극, 무용, 문학 등의 분야에서 1, 2차에 걸쳐 60명이 선정되었는데, 문학에서는 신청자가 적었는지 나를 포함하여 둘만 선정되었었다. 6~9분 정도의 유튜브 영상을 제작해 주는데, 출연료로 예술가 개인에게 200만원씩 지급한다고 한다. 아마도 코로나 시국에 활동이 위축된 예술인들의 생활에 보탬을 주려는 취지인 것 같았다. 예술인들에 대한 영상 촬영은 지난 여름부터 진행되어 왔으나, 나는 지난해 발간한 시집의 시들이 주로 팔공산의 고향을 배경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이왕이면 팔공산의 단풍이 좋은 때..

텃밭 일기 2021.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