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새 차 계약하기

공산(功山) 2020. 5. 24. 18:27

정든 헌 차를 그만 타고 새 차를 사기로 했다. 헌 차를 버리는 것은 아니고, 맏이가 무겁고 큰 시험 장비들을 싣고 다닐 때 쓰겠다며 헌 차는 제게 주고 나더러는 새 차를 사서 타라고 했기 때문이다. 비용은 제 형제가 분담하겠다고 한다.

 

헌 차는 2005년식 쏘렌토 디젤 2.5인데, 산 지는 15년 가까이 되었지만 15만km밖에 타지 않았다. 그동안 관리를 잘 해서 아직은 쓸만하다. 새 차였을 적엔 가끔 부모님을 모시고 나들이를 가기도 했고, 마을 어르신들을 태우고 멀리 바닷가까지 다녀온 적도 있는 차다. 상시 4륜구동(Full Time 4WD)에 H형 프레임이 얹혀 있어서 무거운 짐을 실을 수 있었고, 험한 도로나 눈길에도 잘 다니곤 했다. 15년이란 세월이 금방 지나갔다. 이 차 이전에 내가 처음으로 샀던 차는 '코란도 페밀리'였었다. 수동 기어에 역시 디젤 4WD였고, 포도 농사 시절에 10kg짜리 포도 박스를 50개씩이나 싣고 공판장에 다니던 차였는데, 15년을 타고 폐차했었다. 

 

이제 새로 차를 사게 되면 내겐 세번째 차가 된다. 몇 군데의 대리점에 가서 몇몇 모델들을 둘러보았다. 요즘에 나온 차들은 배기량이 적어진 반면 차체는 커진 것 같았다. 그것은 물론 엔진 성능이 그만큼 향상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디자인은 모두들 세련되어 있었지만, 그중에는 차의 얼굴인 라디에이터 그릴에 잔뜩 허세가 들어가 있어서 도무지 마음이 가지 않는 차도 있었다. 그런 차를 타고 다니면 나도 차를 닮아서 거드름을 피우거나 허세를 부리게 될 것만 같았다.

 

사람의 눈이 얼마나 민감하고 간사한 것인지는 진열된 자동차 앞에 서 보면 알 수 있다. 몇 년 전에 처음 나왔을 땐 디자인이 그렇게 멋져 보이던 차가 지금 나온 차들과 비교하면 얼마나 초라하고 구닥다리처럼 보이는지. 헌 차와 동급인 SUV 모델을 보러 갔지만, 그 옆에 서 있는 좀더 작고 깜찍한 차에 눈이 더 갔다.

 

날이 갈수록 대기 오염에 대한 관심은 높아질 것이다. 그에 따라 배출가스에 대한 규제는 늘어만 갈 것이다. 게다가 도시의 교통은 더욱 혼잡해지고, 나는 앞으로 대중교통을 더 많이 이용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큰 차를 몰아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마음의 짐을 하나씩 내려놔야 한다는데, 차에 싣고 다닐 짐을 줄여 나가는 것도 순리 아닐까? 그렇다면 차가 더 작아져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배기량을 낮추는 대신 한결 정숙한 가솔린 차를 사기로 작정했다. 전기차나 LPG차는 성능이나 충전소의 편의성 면에서 아직은 이른 것 같았다.

 

결국 소형 SUV로 분류되는 셀토스 1.6 가솔린, 노블레스 트림에 흰색(Snow Pearl)으로 결정했다. 그래도 가끔은 험한 길과 눈(雪) 구경은 가야 할 테니까 전자식 4WD 기능을 추가했다. 나이 들어서 탈 차로 오히려 젊은 취향의 디자인을 선택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선루프, 하이테크, UVO 팩, 드라이브 와이즈 등 첨단 옵션과 함께 차량 가격이 3천만원에 이르렀지만, 몇 가지 감면 혜택과 코로나 사태와 관련한 소비세 감면(5%의 70% 감면)까지 있어서 취득세(7%), 등록 비용을 포함해도 총비용은 그만큼을 넘지 않았다.

 

 

카탈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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