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124

들깨 타작

지난여름의 그 가뭄과 더위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들깨 농사는 풍년이다. 웃자라지 않고 가지가 많이 발달해서 타작을 해보니 알차다. 해마다 같은 밭에다 들깨만을 심었는데, 지난봄엔 밭을 갈 때 석회-고토 비료만 뿌려 비닐을 씌워 모종을 하고, 사름을 하고 나선 웃거름으로 포기마다 과수 전용 복합비료를 조금씩 주었었다. 장마 때는 과습으로 여러 포기가 죽었고, 열매가 여물기 직전에는 태풍의 영향으로 대궁이가 쓰러지고 가지가 많이 찢어졌었다. 들깨 알이 여물자 참새와 멧새들이 몰려왔지만, 고추밭의 가짜 구렁이 서너 마리를 데려와 들깨 밭에 풀어놓았더니 그 뒤로는 일절 새들이 오지 않았다. 잎이 많이 진 들깨 대를 며칠 전에 낫으로 쪄서 이랑 위에다 가지런히 널어두었다가 오늘 아내와 함께 타작을 했다. 펼쳐놓은 ..

텃밭 일기 2018.11.02

마늘과 양파를 심다

고구마를 캐고 나서 거름과 비료를 뿌려 다시 이랑을 만들고 비닐을 씌워 두었던 밭에다 그저께는 아내와 함께 마늘을 심었다. 마늘 씨는, 지난 여름에 두 친구(금룡, 종일)와 함께 의성의 한 마늘 농가에 하루 마늘을 뽑아 주러 갔었을 때 얻어온 것으로, 며칠 전에 굵고 실한 것을 미리 쪼개어 골라 둔 것이다. 의성 마늘이라 한지형(寒地形)인데, 한 400쪽쯤 되려나. 그리고 가까운 불로(不老) 5일장에서 어제 사온 양파를 오늘 아침엔 혼자 심었다. 흰색 한 단, 자색 반 단을 심었으니 370여 포기쯤은 될 것이다. 심기 전에 인터넷에서 약간의 공부를 하여 열흘 전에 퇴비와 석회-고토 비료, 복합비료를 뿌렸었다. 퇴비가 부족하여 대신 비료를 조금 더 뿌렸다. 지난해엔 양파 모종이 사름을 못하고 말라 죽은 것..

텃밭 일기 2018.10.26

옛 생각을 하게 한 도배

산가(山家)는, 9남매(5남4녀) 중 셋째로 태어나 본가에서 '숟가락 몽댕이 하나도 타 나오지 못한' 아버지와, 6남매(5녀1남) 중 둘째로 태어나 사실상 친정의 가장(家長) 노릇을 해야 했던 어머니가 만나 가정을 꾸려 평생을 사시던 곳이고, 내가 태어나고 자라던 곳이다. 물론 예전에는 초가였지만, 내가 중학교에 다닐 무렵에야 문명의 혜택을 입어 함석지붕으로 바뀌었었다(전기도 중학교 2학년때 들어왔다). 지붕만 바뀌었을 뿐 작고 천장이 낮은 큰방과 갓방(건넌방), 그 사이의 마루, 정지(부엌)가 있는 윗채와, 외양간, 가마솥이 걸린 디딜방앗간, 아랫방이 있는 아랫채는 옛날 그대로였다. 그런 옛집을 내가 허물고, 그 자리에 콘크리트와 붉은 벽돌을 쌓아, 유리창과 기름 보일러와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양옥을 ..

텃밭 일기 2018.10.14

송이 구경

옛날에 아버지와 함께 해마다 송이를 따던 곳에서 수삼 년만인 지지난해에 송이 일곱 개를 딴 적이 있었는데, 그때 오랜만에 고향 동산의 송이를 보게 되어 얼마나 반가웠던지. 지난해에는 그 자리에 몇 번 가 보았으나 송이는 끝내 보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먼 앞바다로 태풍이 올라오고 있어서 비가 내리는 오늘 아침, 나는 다시 송이를 따던 그 산비탈로 가 보았다. 지지난해 활짝 핀 송이를 딸 때가 10월 14일이었기 때문에 올해도 난다면 날 때가 된 것이다. 그 송이구덩이(송이가 나는 곳을 우리는 싀이구디 즉 송이구덩이라 불렀다)에 이르러서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활짝 핀 송이의 갓 하나가 보였다. 가파른 비탈을 내려가 따고 보니 옆에도 몇 개 더 있었다. 지지난해에 비하면 9일이나 이른 데도 송이는 피어 있..

텃밭 일기 2018.10.05

라돈 측정

일부 시판 침대 매트에서 검출된 고농도의 라돈이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었다. 그 후에 구청에서 몇 대의 라돈 측정기를 비치하고 개인에게 하루씩 대여해 준다고 하여 지난 8월에 신청을 했었는데, 오늘에야 내 차례가 왔다. Radon Eye RD200이라는 국산 모델인데, 10분마다 측정치가 앱과 블루투스를 통해 핸드폰 화면에 업데이트되는, 비교적 크기가 작고 측정하기 쉬운 제품이다. 마침 오늘이 금요일이라 나는 다음 월요일에 반납하면 되니까 시간적 여유가 많아서 여기저기 이것저것 두루 측정해 보기로 했다. 1급 발암물질인 라돈에 대한 우리나라 관리 기준치는 미국 환경보호청이 정한 실내 공간 기준치와 같은 4 pCi/ℓ (1pCi = 37 Bq/m3)라고 한다. * 오래전 태국에서 산 라텍스 매트리스 : ..

텃밭 일기 2018.09.28

갠 날 아침

오래 전에 떠난 장마가 뒤늦게 다시 돌아왔는지 며칠째 비가 오락가락해서 익은 고추를 말리기가 힘들었다. 밤새도록 비가 내리다가 그친 오늘 아침, 산가에 이틀을 머물며 창밖 파초 이파리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함께 듣던 아내는 비름과 고구마순, 그리고 이웃에게 갖다 줄 호박잎과 들깻잎을 한 봉지씩 따서 담은 가방을 들고 시내로 떠났다. 나는 버스 타는 곳까지 차로 아내를 바래다 주고, 주유소에 들러 휘발유를 몇 리터 사 돌아왔다. 휘발유는, 베다 만 묵밭의 풀을 내일 아침부터 마저 베고, 다음 주말에 있을 문중 벌초 행사와 다다음 주말에 있을 사촌들과의 집안 벌초 때 예초기 연료탱크에 가득 채워 가야할 연료다. 아내는 살뜰히 만든 반찬들 ―― 가지와 정구지(부추) 찜, 정구지 김치, 북어 조림, 풋고추 찜, ..

텃밭 일기 2018.09.04

간송 특별전 관람

낮 12시에 옛 직장 친구(종호) 아들 결혼식에 가서 점심을 먹고, 금룡의 제안으로 두 친구(금룡, 창일)와 함께 예식장 부근 대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간송 특별전 조선 회화 명품전’을 관람하였다.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신사임당, 정선, 김홍도, 김정희, 이징, 신윤복, 흥선 대원군, 심사정 등 조선시대 거장들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교과서나 신문, 지폐 등에서만 접했던 그림들의 실물을 직접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입장료는 8,000원. 관람을 마친 후 우리는 미술관 구내 커피점에서 커피도 마셨다. 플래시를 켜지 않는 조건으로 사진 촬영이 허용되어서 유리창 너머로 몇몇 작품들을 촬영해 보았다.

텃밭 일기 2018.08.25

꿈 이야기

남북 이산가족들이 금강산에서 상봉하는 영상을 TV를 통해 지켜본 지난밤, 나는 꿈속에서 엄마를 만났다. 집 앞 텃밭에서였는데, 내가 베어 둔 소나무의 잔가지들을 엄마는 몇 다발로 묶어서 운반하기 좋도록 밭가에다 차곡차곡 쌓아 두셨다. 그 소나무 다발의 가지들이 가지런하여 무척 보기좋았다. 그러고는 수확한 콩을 키로 깨끗이 까불러서 봉지에 무겁게 담은 후 나더러 집으로 들고 가자고 하셨다. “집에 가자, 저기 있는 내 모자도 같이 챙기거라.” 나는 엄마와 함께 집으로 걸어가면서 엄마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엄마, 내가 퇴직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왜 그리 일찍 가셨어요? …… 여기서 이렇게라도(꿈속에서라도) 사는 것이 좋지요? 그라마(그럼). 엄마, 이렇게라도 우리 오래오래 같이 삽시다. 오냐 마당..

텃밭 일기 2018.08.25

텍사스 목화

2년 전 미국 텍사스에 갔을 때, 지평선 끝까지 사방으로 펼쳐진 목화밭이 인상적이었다. 그때가 지금처럼 8월 상순이었는데, 목화꽃이 드문드문 피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 텍사스의 한 대학교에 부임하게 된 아들은 난생 목화라는 식물을 처음 보게 되어서 무척 신기해했다. 나는 어릴 적에 엄마가 솜이불을 만들기 위해 작은 밭에다 목화를 가꾸시는 걸 보았고 목화도 따 보았었지만, 그렇게 넓디넓은 목화밭에 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아들이 이듬해 봄에 한국의 한 국립대학교에 부임하게 되어 귀국할 때, 그 텍사스의 솜 한 꼬투리를 가지고 와서 내게 보여 주었다. 현대판 문익점이랄까, 그 솜 꼬투리 속에는 씨앗이 네 개 들어 있었다. 그것을 가방 안에 넣어둔 채 한동안 잊고 있다가 어느 날 다시 생각이 났고, 불현듯 목..

텃밭 일기 2018.08.09

폭염

유래없는 폭염이 보름 이상 지속되고 있다. 뉴스에 의하면 오늘 경산 하양이 40.5도, 영천 신녕이 40.4도로 역대 최고 기록을 갱신했다고 한다. 창문이 활짝 열린 산가 실내에 걸려 있는 알코올 온도계는 오후 세 시가 지나자 33도를 가리켰고, 이 온도계를 바깥으로 들고 나가 감나무 그늘에 걸었더니 34도를 가리켰다. 어제까지는 실내 32.5도가 최고였는데, 오늘 이곳의 올여름 최고 온도를 갱신한 셈이다. 그래도 부근의 대구와 경산, 영천의 40도에 육박하거나 넘은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시원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14도밖에 안 되는 지하수 수돗물로 샤워를 하고 나면 한참 동안은 괜찮다. 해가 서산에 걸릴 때부터는 산바람이 내려와 시원하고, 새벽에는 홑이불을 덮어야 될 정도다. 텃밭의 사정을 얘기하자..

텃밭 일기 2018.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