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돌아오지 않은 외삼촌

공산(空山) 2020. 6. 29. 19:28

내게는 외삼촌이 한 분 있었다. 어머니의 형제 1남5녀 중 둘째가 어머니이고 셋째가 바로 그 외삼촌이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그가 열아홉 살(만 18세) 되던 해인 1950년 전쟁에 나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그 외삼촌을 많이 닮았다는 말은 어릴 적에 이모들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지금은 어머니도 이모들도 모두 안 계신다.
 
며칠 전 농협으로부터 문자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국방부와 농협 사이의 업무협약 체결로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6.25 전사자의 유가족 찾기'를 안내한다는 내용이었다. 외가를 포함하여 8촌 이내의 유족은 유가족 찾기에 신청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어머니를 대신하여 20년 전쯤에도 외삼촌의 유해를 찾기 위해 정부에 신청한 적이 있었지만 깜깜소식이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전사자 유해 발굴사업이 많이 확대되었고, 유족을 대상으로 유전자 검사까지 한다니까 기대를 해 봐야 할 것 같아 다시 신청하기로 했다. 국방부 유해발굴 감식단의 유족 확인 과정은 1년 정도의 기간이 소요되고,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유가족에 통보한 후 현충원에 안장한다고 한다. 미확인시에도 앞으로 발굴되는 유해와 지속적으로 유전자를 비교 분석한다고 한다.
 
가물가물한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의 이름을 떠올리며, 나는 국방부에 제출할 제적등본을 주민센터에서 발급받았다. 요즘은 전산화가 잘 되어 있어서 제적등본도 본적지가 아닌 집앞 주민센터에서 금방 발급해 주었다. 외삼촌은 1932년 1월생이었다. 사망일시; 1950년 9월 14일, 사망장소; 불명지구에서 전사, 사망신고일; 1961년 3월 11일, 신고인; 육군본부 부관감으로 제적등본에는 기재되어 있었다. 기록은 그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예전에 내가 어머니한테서 들은 얘기는 외삼촌이 6.25 전쟁이 나던 해 '7월 모병'때 입대했다는 것이었다. 전쟁이 그치고, 외할머니는 아들의 생사를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끝내 정확한 소식을 듣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호주(외할아버지) 의성김씨 1888년생, 1945년 사망, 처(외할머니) 경주김씨 1903년생, 1961년 8월 사망, 자(어머니) 1927년생(실제는 1926년 범띠), 1944년 6월 혼인신고... 나의 한쪽 뿌리인 외가의 재적등본을 받아 들고 나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짠한 기분에 젖었다. 내일엔 유전자 시료채취를 위해 보건소에 가야 한다.
 
(이튿날 보건소에 갔으나 코로나 때문에 시료 채취 업무가 중단되어 있었다. 국방부 유해 발굴 감식단에 통화하여 유전자 시료 채취 키트를 우편으로 받아 자가 채취후 우편으로 보냈다. 2020.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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