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47

'호박꽃 초롱' 序詩

'호박꽃 초롱' 序詩 백석 한울은 울파주가에 우는 병아리를 사랑한다 우물돌 아래 우는 돌우래를 사랑한다 그리고 또 버드나무 밑 당나귀 소리를 임내내는 시인을 사랑한다 한울은 풀 그늘 밑에 삿갓 쓰고 사는 버섯을 사랑한다 모래 속에 문 잠그고 사는 조개를 사랑한다 그리고 또 두툼한 초가지붕 밑에 호박꽃 초롱 혀고 사는 시인을 사랑한다 한울은 공중에 떠도는 흰구름을 사랑한다 골짜구니로 숨어 흐르는 개울물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아늑하고 고요한 시골 거리에서 쟁글쟁글 햇볕만 바래는 시인을 사랑한다 한울은 이러한 시인이 우리들 속에 있는 것을 더욱 사랑하는데 이러한 시인이 누구인 것을 세상은 몰라도 좋으나 그러나 그 이름이 강소천(姜小泉)인 것을 송아지와 꿀벌은 알을 것이다 ― 1941년 1월 발표 -------..

백석 2016.12.30

쫓기달래

쫓기달래 백석 오월이는 작은 종 그 엄마는 큰 종 사나운 주인이 마소처럼 부리는 오월이는 작은 종 그 엄마는 큰 종 하루는 그 엄마 먼 곳으로 일을 가 해가 져도 안 왔네 밤이 돼도 안 왔네 오월이는 추워서 엄마 찾아 울었네 오월이는 배고파 엄마 찾아 울었네 배 고프고 추워서 울던 오월이 주인집 부엌으로 몸 녹이러 갔네 부엌에는 부뚜막에 수수찰밥 한 양푼 주인네 먹다 남은 수수찰밥 한 양푼 오월이는 어린 아이 한 종일 굶은 아이 수수찰밥 한 덩이 입으로 가져 갔네 이 때에 주인 마님 샛문 벌컥 열었네 밥 한 덩이 입에 문 오월이를 보았네 한 덩이 찰밥을 입에 문 채로 오월이는 매 맞았네 매 맞고 쫓겨 났네 춥디 추운 밖으로 쫓겨난 오월이 캄캄한 어둔 밤에 엄마 찾아 울었네 행길로 우물가로 엄마 찾아 울다..

백석 2016.12.30

七月백중

七月백중 백석 마을에서는 세불 김을 다 매고 들에서 개장취념을 서너번 하고 나면 백중 좋은 날이 슬그머니 오는데 백중날에는 새악씨들이 생모시치마 천진푀치마의 물팩치기 껑추렁한 치마에 쇠주푀적삼 항나적삼의 자지고름이 기드렁한 적삼에 한끝나게 상나들이 옷을 있는대로 다 내 입고 머리는 다리를 서너켜레씩 들여서 시뻘건 꼬들채 댕기를 삐뚜룩하니 해 꽂고 네날백이 따백이 신을 맨발에 바꿔 신고 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가는데 무썩무썩 더운 날에도 벌 길에는 건들건들 씨연한 바람이 불어 오고 허리에 찬 남갑사 주머니에는 오랜만에 돈푼이 들어 즈벅이고 광지보에서 나온 은장두에 바눌집에 원앙에 바둑에 번들번들 하는 노리개는 스르럭 스르럭 소리가 나고 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오면 약물터엔 사람들이 백재일..

백석 2016.12.30

국수

국수 백석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날여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하면 마을에는 그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줄거움에 차서 은근하니 흥성 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녑 은댕이 예대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햔 힌김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같은 봄비속을 타는듯한 녀름 볓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든덩에 함박눈이 푹푹 싸히는..

백석 2016.12.30

木具

木具 백석 五代나 날인다는 크나큰집 다 찌글어진 들지고방 어득시근한 구석에서 쌀독과 말쿠지와 숫돌과 신뚝과 그리고 녯적과 또 열구 데석님과 친하니 살으면서 한해에 멫번 매연지난 먼 조상들의 최방등 제사에는 컴컴한 고방 구석을 나와서 대멀머리에 외얏맹건을 질으터 맨 늙은 제관의손에 정갈히 몸을 씻고 교우 읗에 모신 신주앞에 환한 초불밑에 피나무 소담한 제상위에 떡 보탕 시케 산적 나물지짐 반봉 과일들을 공손하니 받들고 먼 후손들의 공경스러운 절과 잔을 굽어보고 또 애끊는 통곡과 축을 귀에하고 그리고 합문뒤에는 흠향오는 구신들과 호호히 접하는것 구신과 사람과 넋과 목숨과 있는것과 없는것과 한줌흙과 한점살과 먼 녯조상과 먼 훗자손의 거룩한 아득한 슬픔을 담는것 내손자의손자와 손자와 나와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

백석 2016.12.30

조당에서

조당에서 백석 나는 支那나라사람들과 가치 목욕을 한다 무슨 殷이며 商이며 越이며하는 나라사람들의 후손들과 가치 한물통안에 들어 목욕을 한다 서로 나라가 달은 사람인데 다들 쪽발가벗고 가치 물에 몸을 녹히고 있는 것은 대대로 조상도 모르고 말도 제각금 틀리고 먹고입는것도 모도 달은데 이렇게 발가들벗고 한물에 몸을 씿는 것은 생각하면 쓸쓸한 일이다 이 딴나라사람들이 모두 니마들이 번번하니 넓고 눈은 컴컴하니 흐리고 그리고 길즛한 다리에 모두 민숭민숭 하니 다리털이 없는 것이 이것이 나는 웨 작고 슬퍼지는 것일까 그런데 저기 나무판장에 반쯤 나가누어서 나주볓을 한없이 바라보며 혼자 무엇을 즐기는 듯한 목이긴 사람은 陶淵明은 저러한 사람이였을것이고 또 여기 더운물에 뛰어들며 무슨 물새처럼 악악 소리를 질으는 삐..

백석 2016.12.30

八院

八院 -西行詩抄 3 백석 차디찬 아침인데 妙香山行 乘合自動車는 텅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속 가치 진진초록 새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밧고랑처럼 몹시도 터젓다 계집아이는 慈城으로 간다고하는데 慈城은 예서 三百五十里 妙香山百五十里 妙香山 어디메서 삼촌이 산다고 한다 새하야케 얼은 自動車 유리창박게 內地人 駐在所長가튼 어른과 어린아이 둘이 내임을 낸다 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비인 車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사람도 눈을 씻는다 계집아이는 몃해고 內地人 駐在所長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러케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첫슬것이다 ―「조선일보」 1939. 11. 10. ------------------------------ 팔원 - 지명. 영변..

백석 2016.12.30

山宿

山宿 -- 山中吟 백석 旅人宿이라도 국수집이다 메밀가루포대가 그득하니 쌓인 웃간은 들믄들믄 더웁기도 하다. 나는 낡은 국수분틀과 그즈런히 나가누어서 구석에 데굴데굴하는 木枕들을 베여보며 이山골에 들어와서 이木枕들에 새깜아니 때를 올리고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사람들의 얼골과 生業과 마음들을 생각해본다 ―「조광」 4권 3호, 1938. 3. ---------------------------- 들믄들믄 - 불을 많이 때어 온돌방이 지독하게 더운 상태를 나타내는 말 국수분틀 - 국수를 누르는 재래식 기구 그즈런히 - 가지런히

백석 2016.12.29

내가이렇게외면하고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백석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날씨가 너무나 좋은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같은 넥타이를 매고 곻은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늬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짖인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작고 들려오는 탓이다. ―「여성」 3권 5호, 1938. 5. ------------------------------ 잠풍날씨- 바람이 잔잔하게 부는 날씨 달재 - 달궁이. 쑥칫과에 딸린 바닷물고기 진장 - 진간장 작고 - 자꾸

백석 2016.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