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시 28

월평 「국화」 - 《대구문학》 193호(2024. 5-6월호)

(전략) 목소리가 좋으면 그 시를 다시 쳐다보게 된다. 아니, 오래 귀 기울이게 된다. 목소리는 비유를 통해 형상화된다. 어조語調는 독자를 사로잡기도 하고, 멀어지게도 한다. 차가운 음색이 있는가 하면, 한없이 따뜻한 음성이 있다. 시의 내공은 어조가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체나 객체가 겸손하면, 그 시 주변에 사람이 많이 끓고, 반대로 냉정하거나 직선적이면, 하나 둘 독자가 멀어진다. 물론 성깔이 못된 시를 엄청 좋아하는 젊은 마니아mania 층도 두껍다. 어쨌거나 목소리는 그 시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은 틀림없다. 김상동의 「국화」는 묘한 목소리를 가졌다. 이런 경우 3개월도 멀다는 거예요 2개월 후에 보도록 합시다 (몇 차례 찬비가 지나가는 동안 기러기 떼는 북국의 긴 밤들을 물고 ..

내가 쓴 시 2024.05.24

김상동 「엄마 이야기」 월평 - 대구문학 175호(2022년 4월호)

(전략)  「엄마 이야기」와 「번개시장」은 지나온 삶의 따스한 이야기다. 시인은 그 따뜻함이 그리운가 보다. 누군들 푸근하고 아름다운 인정이 있는 시절이 그립지 않겠는가. 우리는 코로나라는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가면서 무엇보다 가족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어머니가 있다. 그래서인지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의 사랑을 표현한 두 시가 눈에 들어 왔다.       감 이파리 뚝뚝 서럽게 지는 밤      홍시 한 광주리 가득 이고 나섰단다       육십 리 산길 굽이굽이      달과 납닥바리* 길동무 삼아       문바우 지나고 파군치 지나고      아양교도 큰고개도 다 지나서      희끄무레 동트고 시장이 눈앞인데       이 일을 어쩐단 말이냐      깜빡 졸았는지 돌부리가..

내가 쓴 시 2022.04.14

글쓴바우

2021. 11. 6. 촬영. 글쓴바우* 김상동 이쪽은 폭포 가리재 큰골 야시골 호지난골 저쪽은 보랑골 너리청석 오도재 너머 한밤** 아버지와 함께 나무하러 다니던 길 옆에 큰 바위 하나 두꺼비처럼 앉아 있지 솔숲에 국수나무 싸리나무 머루덩굴에 싸여 있지 저 바우에게 고맙다고 인사해라 저 바우에게 부탁해서 너를 낳았단다 지게 받쳐 두고 풀숲을 헤치고 다가가 보면 바위엔 한문 다섯 글자가 새겨져 있었지 뜻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 열여덟에 시집 온 어머니 서른이 되도록 태기가 없어 이 신령스럽고 위엄 있는 바위 앞에 촛불 밝히고 빌었다네 날마다 빌고 또 빌었다네 마침내 서른하나에 소원을 이루셨네 어머니 아버지, 어디 계시나요? 홍수가 계곡을 온통 휩쓸고 지나갈 때도 사람들이 하나 둘 도시로 떠날 때도 꿈..

내가 쓴 시 2021.11.26

지금은 따스하고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지금은 따스하고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김상동 국민학교 2학년, 젖은 고리땡 바짓가랑이를 모닥불에 돌아서서 말리다가 불이 붙었지 바지를 벗고 나서야 겨우 불을 끌 수 있었지 타다 만 바지는 돌돌 말아 옆구리에 끼고 썰매는 어깨에 메고 내복 바람으로 집에 갔네 엄마는 김치 이파리를 씻어서 장단지에 붙이기를 반복하셨지 예니레가 지나도 낫기는커녕 점점 깊게 곪아가는 상처를 어쩔 거나 아버지의 리어카에 실려 새벽에 당도한 곳은 가축병원이었네 그 허름한 문간방에 보름을 입원하여 큰 개에게 쓰는 분량의 페니실린을 매일 주사 맞았네 사람이나 짐승이나 한 식구라는 것은 부모님의 확고한 사상이었네 조석으로 가마솥에 쇠죽 끓여 소에게 따뜻하게 먹이고 ‘개는 주둥이가 뜨시면 자고 소는 등이 뜨셔야 잘 잔다’며 겨울이면 소 등..

내가 쓴 시 2021.07.07

도덕산명동道德山鳴動 다람쥐 이필二匹

도덕산명동道德山鳴動 다람쥐 이필二匹 김상동 멧돼지보다 겁나는 코로나19를 피하여 오늘은 생각만큼 높지 않아서 마음이 가벼운 도덕산*에나 오르기로 한다 저 홀로 나앉아 졸고 있는 산 그러나 이름이 태산보다 무거움을 주는 산 무거움을 떨치기 위해 검찰, 언론 이런 절벽 같은 말들은 비켜 가기로 한다 그러는 동안 나는 도덕산 중턱에 이르렀다 낡은 도덕암 마당을 떠받치고 있는 삼단의 높다란 축대 앞에 서 있다 축대의 돌 틈에서 뛰쳐나온 한 쌍의 다람쥐야 울지 마라, 도덕산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니 울지 마라, 너희가 도덕산을 깨울 것이니 *도덕산道德山 ⁚ 경상북도 칠곡군에 있는 산. 중턱에 도덕암이라는 사찰도 있다.

내가 쓴 시 2021.07.07

옛 나무들을 회상함 - 김상동

옛 나무들을 회상함 김상동 1. 미루나무 분단국 국민들의 통일 의지만큼이나 힘차게 하늘을 찌르며 펄럭이는 우리나라 미루나무의 습성을 나는 언제부터인가 자랑스럽게 바라보게 되었다 관청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학교와 모든 직장에서 펄럭이는 깃발의 수만큼이나 우리나라 방방곡곡에는 미루나무가 서 있었다 사라호 같은 태풍이 불어와서 이 나무들이 일제히 쓰러진다 해도 그 움이 터져 나와 다시 자라는 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통일은 희망적이라고 나는 언제부터인가 나름대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2. 떡갈나무 로지 겐*, 너를 사랑한다 네가 죄를 모르고 부끄럼을 모르듯이 나도 이제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 네 말마따나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까 화내고 질투하고 욕심 부리며 살기엔 우리들의 청춘이 너무 짧구나! 사랑한다 로지 ..

내가 쓴 시 2021.06.25

바위가 있는 텃밭 - 김상동

바위가 있는 텃밭 김상동 여기서 나는 돌아가신 부모님을 날마다 만난다 부모님 땀이 밴 흙에 나의 땀을 섞는다 입구엔 기념비처럼 키 큰 바위가 서 있는데 거기엔 십 년 전 이 바위를 내가 일으켜 세울 때 대견해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서려 있다 글자를 새겨 넣으라는 말들이 있으나 그건 바위에게 미안해서 안 될 일이다 조금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새참을 먹는 평상이나 나팔을 부는 무대가 되는 주목과 갈매나무로 둘러싸인 반석도 있다 이 주목의 본적이 어딘지 나는 알 수 없지만 갈매나무는 백석 시인의 그 갈매나무다 텃밭에는 낙타바위도 하나 덩그러니 서 있는데 여차하면 ‘이랴!’ 하고 훌쩍 걸터앉아 일망무제의 전망을 건너 아라비아까지도 갈 수 있다 그 낙타는 단봉이기 때문이다 어떤가? 이만하면 여기서 새와 산짐승들..

내가 쓴 시 2021.06.22

이렇게라도 - 김상동

이렇게라도 김상동 남북 이산가족들이 금강산에서 상봉하는 영상을 지켜본 지난밤, 나는 꿈속에서 엄마를 만났다 집 앞 텃밭에서였는데 엄마는 수확한 콩을 키로 깨끗이 까불러서 봉지에 무겁게 담아 나더러 들고 가자고 하셨다 집으로 가자, 저기 있는 내 모자도 챙기거라 엄마, 내가 퇴직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왜 그리 일찍 가셨어요? …… 여기서 이렇게라도(꿈속에서라도) 사는 것이 좋지요? 그라마(그럼) 엄마, 이렇게라도 우리 오래오래 같이 삽시다 오냐 마당에 들어서니 아버지도 와 계셨다

내가 쓴 시 2021.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