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124

아카시아꽃 튀김

텃밭 옆 길가에 흐드러진 아카시아꽃을 한 아름 꺾어서 아내에게 건네 주었다. 아내는 살아오면서 그렇게 향기로운 꽃을 많이 받아 보긴 처음일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아내에게 꽃 한 송이 사다 준 적이 없다. 그래서 더욱 미안하지만, 나는 그것을 선물로 아내에게 꺾어 준 것이 아니었다. 꼬투리째 꽃을 따서 튀김을 해 먹기 위해서였다. 아카시아꽃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안 것은 불과 몇 년 전이었다. 텔레비전에서 튀김을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해서 처음 먹어 본 것이 이제 연례행사가 되었다. 그냥 지나치기엔 섭섭해서 올해도 계절이 지나가기 전에 갓 피어난 꽃을 따서 아내와 나는 튀김을 해서 먹었다. 은은한 향기와 달콤함과 고소함, 질기지도 딱딱하지도 않은 식감은 우리의 입맛을 당기기에 충분했다. 먹으면서 나는 ..

텃밭 일기 2021.05.13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 아내

내가 몇 달 전부터 자전거를 타 보니까 생활이 한결 신선해지고 체력단련에도 더없이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 혼자만 자전거를 탈 것이 아니라 아내와 함께 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권유했지만 겁이 많은 아내는 걷기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싫다고 했다. 그러던 아내가 나의 반복된 권유에 못이겨 며칠 전부터 자전거 타기를 배우고 있다. 물론 강사는 나다. 우선 연습용 자전거가 필요했으므로 불로천변에 있는 자전거방으로 갔었다. 거기엔 헌 자전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주인 영감님은 그것들을 늘 수리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전거를 대여는 하지 않는다고 해서 3만원짜리를 한 대 샀다. 연습용이라고 하니까 영감님은 양쪽에 보조바퀴를 달아 주셨다. 연습은 쉽지 않았다. 사흘째인데 아내는 아직..

텃밭 일기 2021.05.01

신비로운 호두나무

나의 텃밭에는 젊은 호두나무가 네 그루 있다. 15년쯤 전에 1년생 실생 묘목을 사다 심었는데 호두가 열리기 시작한지도 칠팔 년은 된 것 같다. 새로 축대를 쌓고 지반을 고른 척박한 땅에 심어서 그런지, 두더지들이 뿌리 밑 땅속에 굴을 하도 뚫어서 그런지, 혹은 동해를 입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두 그루는 몇 년 전에 죽었다. 그래서 살아남은 네 그루만은 죽이지 않기 위해 해마다 나무 밑의 땅을 일구어 두더지 굴을 메꾸기도 하고 잡초를 뽑고 거름을 주곤 한다. 그런데, 지금 그 호두나무에 이상한 일이 생겼다. 호두나무는 암수한그루(자웅동주)로 알고 있고 실제로 지난해까지도 네 그루 모두에 호두가 열렸었는데, 올봄엔 가운데에 서 있는 한 그루만 지금 수꽃을 주렁주렁 피웠다. 자세히 보니까 암꽃은 수꽃을 피운 ..

텃밭 일기 2021.04.30

위남마을 참나무들

이시아폴리스의 이웃에 사시는 조선배님, 봉무동 아들네 아파트 문짝 수리를 해 주러 성주에서 온 병국이, 지묘동의 왕수씨, 그리고 나 넷이서 파군재 밑 독좌암 앞 위남마을 입구의 막국수집에서 오랜만에 만나 점심을 먹은 것은 어제였다. 막걸리를 반주로 곁들였지만, 병국이는 전날 저녁에 많이 마신 데다 운전을 해야 한다며 술을 마시지 않았고, 이태 전에 술을 끊은 나는 물론 병아리 눈물만큼도 마시지 않았다. 아직도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수가 하루에 400명 언저리라 5명 이상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음식점에 들어설 때도 여느 장소와 마찬가지로 체온을 재고 연락처를 기록하는 것이 요즘의 풍속이다. 서로가 그리워하는 것 같아 이 자리에 여러분을 불러 모셨으니 내가 모처럼 큰 일을 한 것 같다..

텃밭 일기 2021.03.11

고모를 뵈러 가다

아버지의 5남 4녀 형제자매 중 지금 생존해 계시는 분은 고모 둘뿐이다. 고모 네 분은 모두 아버지의 동생들인데 그 중에서 둘째와 넷째 고모만 생존해 계시는 것이다. 오늘은 아내와 함께 둘째 고모를 뵈러 가기로 했다. 둘째 고모를 뵈러 가기 전에, 우선 지저동의 큰고모댁을 먼저 찾아 보기로 했다. 큰고모는 십수 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전쟁때 유복자로 태어난 하나뿐인 아들, 그러니까 내겐 고종 형님의 소식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큰고모가 계실 때는 명절마다 찾아뵙곤 했었지만, 그 고모가 돌아가신 후엔 고종 형님을 만나기가 어려워지고 소식마저 끊겼다. 형님의 도박과 그로 인한 형수와의 이혼설 등 흉흉한 소문만 가끔 들려올 뿐이었다. 큰고모가 사시던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주택가의 골목길엔 ..

텃밭 일기 2021.02.26

옻골과 4차순환도로

자전거를 탄 지 한 달이 훨씬 지나고 보니 집에서 두어 시간 거리 안에 있는 금호강과 신천의 자전거 길은 많이 가본 것 같다. 오늘은 한 이십 년 전쯤에 차를 몰고 잠깐 아내와 한 번 가 보았을 뿐이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한 옻골에 가 보기로 했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느지막이 출발하여 금호강을 거슬러 우안(右岸)의 자전거길을 따라가다가 화랑교를 지나 강둑을 넘고 방촌의 대로를 건너 둔산동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거기엔 자전거길이 없어 행인이 거의 없는 보도를 타고 갔다. 동촌비행장 동쪽 끄트머리의 둔산동을 지나고 경부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그러니까 방촌 대로로부터는 한 4km쯤 북쪽으로 들어갔을까. 수령이 400여 년인 느티나무와 회나무가 입구에 서 있는 옻골마을은 골목길과 담장들이 말끔히 단장되어 있었..

텃밭 일기 2021.02.06

새 노트북

김교수가 새 노트북을 하나 사서 택배로 보내 주었다. 며칠 전에 새 노트북을 사서 보내겠다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 나는 지금 쓰고 있는 것도 아직 쓸만 하다고, 사더라도 한 3년 후에나 사자고 말렸으나 그는 한사코 말을 듣지 않았다. 불편함을 굳이 감수하면서까지 그 정도의 돈을 아낄 필요가 없다는 것은 그의 지론이다. 새 노트북은 YOGA C930 131KB 모델로, 보다 더 작은 13.9인치의 터치기능이 있는 화면과 펜, 인텔 코어 is-8250U 프로세서, 512GB의 하드 드라이버, 8GB의 램, Window10 home 등등의 최신 사양에다 가볍고 깔끔하고 아담한 디자인이다. 김교수는 아마도 나의 시집 발간과 건강을 이만큼 회복한 데 대한 축하의 뜻으로 새 노트북을 사 보냈을 것이다. 지금까지 쓰던..

텃밭 일기 2021.02.05

불로천, 신천, 금호강, 낙동강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지 한 달 가까이 되었다. 그동안 거의 매일 한두 시간씩 자전거를 탔다. 산책로를 터벅터벅 걸을 때보다는 확실히 운동의 강도가 높아서 다리의 근육이 많이 단단해진 것 같다. 요즘의 강가에는 산책로와 함께 자전거길이 잘 되어 있어서 자전거 타기가 좋다. 집에서 서쪽으로 5분 거리에 금호강이 있다. 자전거길을 따라 강을 거슬러 가서 불로천이 금호강으로 흘러 드는 곳에서 다시 그 불로천을 거슬러 측백나무 군락지(천연기념물 1호)가 있는 도동마을까지 갔다가 돌아오면 한 시간 정도 걸린다. 또는 불로천 하구의 징검다리를 건너서 계속 금호강을 거슬러 동촌을 지나 반야월까지 갔다가 돌아오거나 공항교를 건너 금호강을 하류쪽으로 따라가다가 침산교에서 돌아오면 두어 시간 걸린다. 지지난주엔 몇 권의 ..

텃밭 일기 2021.01.26

자전거와 하이데거와 함께 새해 맞이하기

한 2년 전부터 벼르다가, 느닷없는 건강 문제에 부딪혀 마음을 접고 말았다가, 다시 몸이 좀 추스려지자 석 달 전인 지난 9월에 주문을 한 자전거가 마침내 멀리 캐나다에서 공수空輸되어 왔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발송부터 도착까지 1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자전거 공장은, 생산 속도가 수요량에 턱없이 따라가지 못해 두 달에 한번씩 정해진 시각에 한정 수량만을 전 세계의 수요자로부터 온라인으로 직접 주문을 받았는데, 금방 매진이 되곤 했다. 동작이 뜬 나는 몇 분만에 매진이 된 줄도 모르고서 주문 받을 시간이 되었는데 왜 아직도 홈페이지에 매진으로 돼 있느냐고, 주문 방법을 알려 달라고 부랴부랴 이메일을 보냈더니, 공장에선 나의 뒷북이 우습고 불쌍했던지 특별히 한 대를 추가하여 주문을 받아 주었었다. 서양..

텃밭 일기 2020.12.29

시집이 나왔다

늦깎이로 등단이라는 절차를 밟은 지도 6년이 지나서, 올해 대구문화재단이 공모한 '2020 개인예술가 창작기금 지원 대상자'로 선정된 무명시인의 첫 시집 '구름의 뿌리'가 '도서출판 그루'에서 나왔다. 시집에 넣을 시를 고르고, 출판사와 원고 파일을 주고 받기를 반복하며 교정을 하느라 여름과 가을을 다 보냈다. 시집이 나오고 보니 미흡하고 아쉬운 점이 많다. 이번 시집 발간을 경험 삼아서, 그리고 건강이 허락된다면 앞으론 열심히 읽고 배우며 좋은 시를 다시 써 봐야겠다. 시인의 말, 목차, 68편의 시, 김상환 시인의 해설까지 총 136쪽의 분량인데, 두께는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고 적당한 것 같다. 처음엔 출판사의 '그루 시선' 시리즈로 내려고 하였으나, 그것은 판형이 너무 크고 표지 도안이 밋밋하게..

텃밭 일기 2020.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