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40, 00,700 파계사 앞에서
어제는 지난 가을부터 아니 몇 년 전부터 벼르던 팔공산 주능선 종주를 실행하기로 했다. 서쪽의 파계사 쪽으로 입산하여 파계봉, 서봉, 비로봉, 동봉, 염불봉까지 등반을 하고 염불암과 동화사 쪽으로 하산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파계사로 가는 버스 차창 밖으로 제법 많이 날리던 눈발이 버스에서 내릴 무렵에 슬그머니 그쳤다. 절 입구 매표소에선 1,500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사찰에서 문화재 관람료로 받는 이 입장료를 일반 등산객에게도 받는 것이 정치 이슈가 되자 최근에 일부 조계종 승려들이 집단행동에 나서는 일까지 벌어졌었다.
"멋쟁이 아저씨, 등산 축하 드려요!"
"팔공산을 종주하자면 이 정도 입장료는 내야겠지요?"
말없이 입장료를 내는 나에게 매표소 여직원이 던지는 말이었고 나의 대답이었다. 일주문 쪽으로 걸어 올라가는데, 소나무와 느티나무 가로수가 보도까지 다투어 뛰쳐나오며 나의 기념비적 등산의 시작을 축하해 주었다.
일주문을 지나고, 여러 계곡을 아우른다고 해서 파계사(把溪寺)라는 절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는 파계지 연못을 지나서, 진동루(鎭洞樓) 앞 보장각(寶藏閣)을 왼쪽으로 돌아 등산로가 시작되었다. 쌓인 낙엽을 많이 밟은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등산객의 발길이 뜸한 것 같았다.
11:10, 07,200 주능선에 올라섬
버스를 내린지 한 시간 반만에 7,200보를 걸어서 주능선인 파계재에 올라섰다. 바람이 세었다. 만약에 오늘 함께 온 일행이 있었다면 나 혼자만 이렇게 두리번거리며 뒤돌아보기도 하며 여러 장의 사진을 찍으며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정표는 동봉까지 6.2km라고 가리켰는데, 적지 않은 거리라 생각되었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눈이 길을 꼽꼽하게 해서 먼지가 일지 않아 좋았다. 눈을 밟을 때 제법 뽀드득뽀드득 소리까지 나서 걸음이 즐거웠다.
11:50, 09,700 파계봉
파계봉 부근에 이르니 난데없이 까마귀 한 마리가 까악까악 큰 소리로 짖으며 가지에서 가지로 건너뛰며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배낭 속에 먹을 것이 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헬기장에 앉아 군고구마를 먹었다. 물론 까마귀한테도 좀 떼어서 던져 주었는데, 이때 내가 오늘 싸 온 양식이 그리 넉넉치 않다는 걸 눈치챘는지 그 뒤로는 까마귀가 따라오지 않았다.
13:10, 13,500 가마바위봉
뒤로 돌아보니 지나온 능선이 벌써 아득히 멀고, 앞으로 보니 멋진 톱날능선이 내려다 보인다. 멀리 비로봉과 서봉, 동봉은 구름 속에 묻혀 있었다.
13:40, 14,600 톱날능선 북벽 통과
가장 어려운 구간이 시작되었다. 밧줄을 타고 올라갈 땐 지팡이를 윗쪽에다 던져 두고 두 손으로 매달려야 했다. 가마바위봉부터 동봉까지는 6년 전 가을에도 등산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만났던 암벽 중간의 물푸레나무가 아직도 살아서 발판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루터기는 등산화에 닳아서 반쪽이 되어 있었지만 6년 전보다는 더 굵게 자라 있었다. 이 나무를 밟고 암벽을 기어오를 때 얼마나 고마웠는지!
톱날능선을 무사히 통과한 다음 너럭바위에 올라 음료수를 마시며 잠시 숨을 돌렸다. 내 자신의 사진을 한 장 찍고 싶었지만 눈길 위에 사람 발자국 하나 찍혀 있지 않은 곳에서 셀카봉도 없이 어떻게 사진을 찍는단 말인가? 그러나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나이 꽤나 들어 보이는 소나무가 나서서 폰 카메라를 잡아 준 덕분에 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세찬 바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소나무가 튼튼한 손아귀 같은 가지로 카메라를 잡고 있을 때, 나는 셔터의 타이머를 작동시키고 바위끝으로 가서 서 있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 소나무 또한 얼마나 고맙게 생각되었는지!
서슬 푸르게 길을 가로막으며 등산객을 힘들게 하던 바위들도 때로는 자신을 눕혀 마룻바닥처럼 평탄한 길을 만들기도 하고, 사람이나 짐승이 지나갈 수 있도록 몸을 세워 문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어떤 넓적한 바위는 천장을 만들어 두세 사람이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나무들은 또 절벽 끝에 줄지어 서서 난간을 만들어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도 마음놓고 지나가도록 해 주었다.
14:50, 16,900 칼바위 부근에서 만난 발자국
칼바위 앞에서 첫 나무계단을 만났다. 이 계단만 오르면 서봉은 눈앞이리라. 칼바위는 여전히 꿋꿋이 서 있었다. 여기서 방금 지나간 발자국을 만나 반가웠다. 발가락이 다섯 개인 것으로 보아 너구리는 아니고, 발톱이 짧아 오소리도 아니고, 발바닥이 제법 큰 것을 보니 북방족제비도 아니고, 아무래도 담비의 발자국 같았다. 어릴 적에는 뒷산에서 몇 마리씩 몰려다니는 것을 자주 보았었지만 지금은 멸종 위기의 처지에 놓여 있다는 그 담비의 발자국을 여기서 만나다니.
15:50, 18,500 서봉
서봉에 도착했다. 여기서는 고향마을이 눈앞에 내려다 보인다. 서봉 표지석 바로 뒤쪽엔 서봉의 옛 이름인 삼성봉 표지석도 서 있다. 서봉에서 비로봉 가는 길목에 웬 물고기 머리 같은 바위가 눈에 띄어 사진을 찍었다.
16:40, 21,200 비로봉
아까 서봉에서 바라보던 비로봉은 잠깐 구름이 걷혀 선명히 드러났었는데, 지금은 다시 철탑이 구름 속에 묻혔다. 비로봉은 지난 여름 한더위때 아내와 함께 뒷쪽의 하늘정원에 왔다가 들른 적이 있었다. 주목과 소나무엔 올겨울에 처음 보는 눈꽃이 피었고, 다른 나뭇가지들에도 상고대가 피었다.
17:00, 22,500 동봉
가파른 계단을 걸어 동봉에 올랐을 때 다시 구름이 걷혀 전망이 트였다. 6년 전에도 여기서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수태골 쪽으로 어두운 길을 내려간 적이 있었다. 오늘은 날이 흐려서 지는 해를 볼 수는 없었다. 여기서 잠시 망설였다. 지금 바로 수태골로 어둡기 전에 하산하느냐, 조금 어두워지더라도 계획대로 염불봉까지 가서 염불암 쪽으로 하산하느냐. 나는 염불봉까지 가기로 했다. 아뿔사, 그러나···
18:10, 25,500 다시 동봉으로
그러나 그건 결과적으로 잘못된 판단이었다. 염불봉 쪽으로 가다가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염불봉까지 거의 다 왔다고 생각되었을 때는 오른쪽으로 접어들어야 할 염불암이나 동화사 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여기서부터는 35년 전쯤에 한 번 와 본 곳이라 길을 전혀 기억할 수도 없었다. 그냥 계속 능선길을 타고 신녕재를 지나 관봉 쪽으로 가든지 길을 아는 동봉으로 돌아가든지 두 가지 방법 밖에 없었다. 그런데 계속 관봉 쪽으로 가려면 아침부터 지금까지 걸어온 거리만큼이나 더 가야 할 것인데, 그건 안 될 일이었다. 배낭에 남은 간식과 음료수를 꺼내 먹고 동봉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가파른 계단과 비탈길을 걸어 숨을 헐떡이며 동봉에 다시 올라섰을 땐 이미 사방이 캄캄했고, 건너편으로 바라보이는 비로봉 군사시설엔 전깃불들이 켜져 있었다. 1시간 10분 동안에 걸쳐 3,000걸음을 허비한 셈이었다.
몸은 지쳤지만 여기서부터의 하산길은 여러번 다니던 길이라 마음은 놓였다. 다만 어두워서 돌부리를 차거나 헛디디지 않도록 조심하며 지팡이로 더듬으며 천천히 걷는 수밖에 없었다. 수태골 쪽으로 하산하는 길이 더 낯익은 길이긴 했으나 하산한 후에 버스를 타려면 1km쯤 순환도로를 걸어야 하고, 케이블카 쪽으로 하산하면 바로 버스를 탈 수 있다. 핸드폰 불빛으로 비춰 본 이정표는 염불암이 가깝다고 되어 있었지만 염불암에서 버스를 타는 곳까지는 너무 먼 길이다.
그래서 케이블카 쪽으로 내려오는데, 길은 수태골 쪽보다 더 험했다. 물론 시간이 늦어 케이불카는 불이 꺼진 뒤였다. 그나마 계곡이 아닌 능선길이어서 먼 도시의 불빛이 바라보일 뿐만 아니라 그 불빛을 높은 구름이 반사하여 달도 없는 하산길을 조금은 어슴푸레하게 밝혀 주었다. 기억의 등불, 그래 이런 때는 그 희미하게 깜박거리는 기억의 등불도 켜 보자! 자전거 핸들에 꽂혀 있는 그 밝은 플래시를 챙겨 오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 아내는 걱정이 되어 내게 전화를 몇 번 했는데, 밝은 화면의 전화를 받고 나면 눈앞이 더 캄캄해진다고 나는 전화를 하지 말라고 했다. 아는 길이라 천천히 조심만 하면 될 테니 걱정 말라고 아내에게 말해 주었다.
20:40, 35,300 버스정류장 도착
동봉을 출발하여 케이블카 종점(신림봉)을 거쳐 동화사 집단시설지구까지 3.5km의 구간에 10,000보를 걷는 데 꼬박 2시간 반이 걸렸다. 산에서 거의 다 내려왔을 때 119 안전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불안을 견디다 못한 아내가 집앞 안전센터를 방문하여 이 못 말리는 철모르쟁이에 대한 구조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나 보았다.
21:30, 36,200 귀가
36,000걸음. 하루에 이만큼 걸어 보기는 평생에 처음이었다. 간밤엔 다리와 무릎이 아파 잠자리에서 돌아눕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자다가도 발가락과 다리에 쥐가 나서 몇 번이나 깨었다. 아내의 잔소리가 앞으로 몇 날 며칠 이어질지 모를 일이다.
'텃밭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종들과의 만남 (0) | 2022.06.26 |
---|---|
초여름의 선물 (0) | 2022.06.23 |
아내의 생일 이야기 (0) | 2022.01.23 |
동부도서관 시 회원 소풍 (0) | 2021.12.10 |
묘사(墓祀) (0) | 2021.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