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120

톱을 쓸었다

내게는, 아니 우리집에는 아버지가 생전에 사용하시던 톱이 두 자루 있다. 하나는 큰 톱이고, 다른 하나는 큰 톱에 비해 폭과 길이와 이빨의 크기가 작은 톱이다. 작은 톱은 몇 해 전에 벌초를 하면서 연장을 다루는 데 서툰 재종질(再從姪)이 톱날 끝부분을 부러뜨린 것을 내가 그라인더로 다듬어서 길이가 예전보다 더 짧아졌다. 아버지 돌아가신지가 15년째이니 작은 톱의 나이는 한 서른 살은 된 것 같다. 큰 톱은 당신께서 사 오신 뒤 몇 년밖에 사용하지 못하셨으니 스무 살 남짓 되었겠다. 어제 산가에 다녀오면서 빈집을 지키고 있던 그 두 자루의 톱을 아파트로 가지고 왔다. 산가는 춥기 때문에 따뜻한 아파트에서 오랜만에 톱을 쓸어 보기 위해서였다. 톱을 가지고 오면서 철물점에 들러서 줄도 하나 샀다. 새 줄은 ..

텃밭 일기 2023.01.27

겨울에 만나서 더 반가운 친구들 ㅡ 호접란과 동백

겨울은 텃밭에 나갈 일이 많지 않는 농한기라서 적적하기도 하지만 마음이 좀 여유로워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겨울에도 실내에서 꽃을 피우는 호접란을 한 포기 키워보고 싶어졌다. 유튜브에서 호접란 키우기를 검색하여 공부를 좀 하고 나서 홍자색 꽃이 아름다운 '만천홍'이라는 품종 두 포기를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배달 과정에서 동해를 입지 않도록 보온재로 꼼꼼히 포장한 박스를 조심스레 뜯었을 때, 거기엔 뜻밖에도 순백색 꽃을 피운 것도 한 포기 들어 있었다. 난원에서 서비스로 다른 품종을 한 포기 더 보낸 것이었는데, 반갑고 고마웠다. 흰 꽃은 꽃대가 하나였지만 만천홍은 포기마다 꽃대가 두 개씩이었고, 꽃대의 아래쪽 꽃은 활짝 피어 있었다. 애초에 두 포기를 주문한 것은 설에 아들이 오면 한 포기를 ..

텃밭 일기 2023.01.20

늦옥수수를 꺾으며

지난봄에는 고구마와 콩을 심을 텃밭의 맨 북쪽 가에 옥수수를 한 이랑 심었었다. 옥수수는 키가 커서 다른 작물에 그늘을 드리울 수 있기 때문에 북쪽 이랑에다 심은 것이다. 내가 해마다 옥수수를 심는 것은 삶아서 간식으로 먹는 그 맛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이른봄 언땅이 녹고 나서 가장 먼저 파종을 하는 작물 중 하나여서 싹이 파릇파릇 돋아나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이 늦가을에 심은 마늘의 싹을 보는 것에 못지않게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의 옥수수 농사는 순조롭지 못했다. 웃거름 주기와 물 주기를 잘 해서 옥수숫대는 튼튼하게 자랐지만, 해마다 그랬던 것처럼 옥수수가 익어갈 무렵에 텃밭에 산짐승이 들어와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미리 울타리를 쳐서 대비를 했었지만, 높다란 울타리는 고라니만..

텃밭 일기 2022.11.11

자전거와 함께 왕건길을

시월 하순에 접어든 뒤부터는 기온이 많이 떨어진 데다 해가 짧아져서 춥고 어두운 새벽에 자전거를 타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요즘엔 햇살이 강하지 않으면서도 공기가 푸근한 해거름에 저녁노을 아래서 탄다. 곧 겨울이 와서 날이 더 추워지면 햇볕이 따사로운 오후 시간으로 앞당겨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특별히 가 볼 데가 있어 점심을 먹은 뒤 일찌감치 나의 애마인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나는 4년 전 겨울에 아내와 함께 용수천의 작은 다리 '부남교'를 건너 '하늘마루'―거저산―열재―소원만디 전망대―한실골―신숭겸장군 사당―파군재―봉무동까지 '왕건길'을 등산한 적이 있었다. 오늘은 거꾸로 봉무동―파군재―신숭겸장군 사당―한실골―소원만디 전망대―열재―내동―공산터널옆 옛길―파군재―봉무동까지 자전거를 타고 ..

텃밭 일기 2022.11.06

팔공산 종주(2) - 동봉에서 관봉(갓바위)까지

08:40, 03,000 입산 후 등산로를 찾다 지난번엔 파계사 쪽으로 입산하여 파계재에서 동봉까지 팔공산 주능선 6.2km를 종주하고 나서 동화사 집단시설지구 쪽으로 하산했었다. 그것이 지난 1월이었다.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난 뒤, 나는 오늘 동봉에서 관봉까지 주능선 7.3km를 종주했다. 물론 오늘 걸은 거리는 이 주능선 구간에다 입산부터 동봉까지의 등산 구간과 관봉에서 주차장까지의 하산 과정을 더하면 13km가 넘을 것이다. 오늘 아침 급행1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려서 지난 1월에 하산했던 곳으로 입산하려고 했으나 집단시설지구 쪽의 등산로 입구를 찾지 못하고, 수태골 쪽으로 걸어 모래재*를 조금 넘어가다가 오른쪽 산자락으로 들어섰다. 등산로가 없어도 조금만 능선을 타고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것이..

텃밭 일기 2022.10.23

산초와 초피

예전에, 숲이 지금처럼 무성하지 않았을 적에는 마을이나 논밭 주위, 야산에 산초나무가 많았었다. 소를 먹이러 가거나 나무하러 가면 흔히 볼 수 있었다. 지금도 고향 동산에서 많이 눈에 띄지만 열매를 많이 달고 있는 산초나무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울창해진 큰키나무들의 그늘에 가려서 일조량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산초를 나의 고향에선 '난대'라고 한다. 향이 강하고 독특해서 나는 이 나무를 어릴 적엔 좋아하지 않았다. 어쩌다 이 나무의 잎을 만지게 되면 거기서 나오는 냄새가 싫어서 코를 막곤 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든 후에 언제부터인지 그 냄새가 좋아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일부러 잎을 만지거나 따서 코를 대고 향기를 음미까지 하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묵은 밭에다 그 산초나무를 너댓 그루 키우고 있다..

텃밭 일기 2022.09.26

아내의 백내장 수술

시야가 늘 침침하다던 아내가 벼르던 끝에 백내장 수술을 했다. 시내 안과에서 그저께는 오른쪽 눈을, 어제는 왼쪽 눈을 수술했다. 그리고 오늘은 경과를 관찰하기 위해 병원에 다녀왔다. 백내장이란 주로 노화에 의해 눈의 수정체가 흐려지는 현상인데, 요즘엔 다초점 인공수정체 기술이 보편화되어 이 수정체를 삽입하는 수술을 하면 근거리, 중거리, 원거리를 보는 시력도 좋아진다고 한다. 수술은 비교적 간단했다. 점안약으로 부분마취한 후에 레이저 기계로 눈동자를 조금 절개하고, 흐려진 수정체를 제거한 후 렌즈를 갈아끼우는 작업인데, 2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수술한 한쪽 눈을 거즈로 가린 채 6시간 정도 입원하면서 경과를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몇 가지 안약을 넣고 퇴원했다. 그러고는 다음날 다시 병원에 가서 ..

텃밭 일기 2022.09.21

새로운 난(蘭) 식구

추석을 전후한 7일간의 코로나 격리기간 동안 유례없이 적적하고 한가한 명절을 쇠면서 나는 집에서 몇 가지 온라인 쇼핑을 하였다. 추석 연휴 기간에는 택배사들도 모두 휴무를 하기 때문에 연휴가 끝난지 이틀째인 오늘에야 주문했던 물품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내가 주문한 물품들은 크고 비싼 것이 아니고 잡다한 생활용품이었다. 최근에 오작동을 자주 해서 바꿔야 할 블루투스 마우스, 뚜껑이 몇 달 전부터 말을 듣지 않는 전기 무선 주전자, 트럼펫 광택제인 실버 폴리쉬, 현관문에 나사를 박지 않고도 부착할 수 있는 무타공 말굽, 시집 한 권, 산성(酸性) 토양을 좋아하는 시골집 돌담 앞의 철쭉과 진달래와 뒤안의 블루베리를 위한 유황 입제(비료), 그리고 난 몇 포기. 그 중에서 내가 빨리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

텃밭 일기 2022.09.14

올 것이 왔다

그저께 일요일은 집안에서 벌초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전날 울산에서 온 아들과 아내와 나 셋이서 아침을 새벽에 먹고 산가로 갔다. 나는 며칠 전에 미리 부모님 산소엔 벌초를 했기 때문에 사촌, 육촌 형제들과 거기에 딸린 오촌, 칠촌 조카들과 고조부 산소에서 합류하여 벌초를 마친 후 그 자리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벌초를 하는 곳에 가지 않고 여느 때처럼 산가에 남아 텃밭일을 하고 함께 돌아온 아내가 몸살이 난 듯했다. 발열은 없었지만 두통과 근육통이 있었다. 그런 아내를 집에서 쉬게 하고, 아들과 나는 함께 차를 타고 의자를 하나 사러 외출했다. 딱딱한 식탁 의자를 책상 의자로 쓰고 있는 내게 아들이 편한 의자를 사 주겠다고 했던 것이다. 실은 나도 의자를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떤 것..

텃밭 일기 2022.09.07

달성보, 도동서원, 우포늪

접이식 자전거 두 대를 차에다 싣고 아내와 함께 달성보 쪽으로 향했다. 상류쪽 강정보는 자전거를 타고 두어 번 가보았으나 달성보에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집에서 출발하기에 앞서 달성공단에서 오래전부터 철공소를 운영하고 있는 고향 친구 나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가는 김에 모처럼 점심이나 함께 먹을까 해서였다. 그런데 마침 오늘 그는 형제들과 고향 선산에서 벌초를 하는 중이라고 해서 벌초가 끝나는 대로 달성보로 오라고 하고는 아내와 나는 전망대 앞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자전거를 폈다. 자전거를 타고 보를 건너며 내려다본 강물은 그다지 맑아보이지 않았지만, 우안(右岸)의 강둑길을 달리며 양쪽으로 펼쳐지는 낙동강과 들판의 풍경을 만끽하였다. 다시 보를 건너 좌안(左岸)에서 강정보 쪽으로 강을 거슬러 한참을 달리..

텃밭 일기 2022.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