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124

송이를 따다

운동 겸 버섯 탐색을 해 보기로 했다. 먼 산에 갈 필요까진 없고 가까운 동산으로 향했다. 올해는 수년 만에 송이 풍년이라고 하는 데다, 높은 산의 송이가 끝물이라고 이웃집 형이 말하는 것으로 볼 때, 집 가까운 야산에도 송이가 난다면 날 때가 된 것이다. 내가 어릴 적에는 뒷산에 송이가 많이 났었다. 아버지와 나무하다가 지게를 받쳐 두고 송이가 날 만한 곳으로 가보면, 잔솔밭에 수두룩이 나 있던 것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싸리나무를 꺾어 만든 꾸러미에 송이를 가득 담아 나뭇짐에 얹어 집으로 오면 엄마는 맛있는 송이찌개를 끓여 주셨다. 그렇게 많이 나던 송이가 근년에 와서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동안 소나무들은 너무 늙었고, 숲은 너무 울창해졌으며, 송이를 너무 샅샅이 따서 포자가 ..

텃밭 일기 2016.10.14

비슬산 참꽃 구경

시인학교 월요반에서 비슬산 참꽃을 구경 가기로 한 날이다. 내 차에 김동원 시인(시인학교 교장), 원용수 선생님, 박영선 시인을 아침 여덟시 반에 지산동에서 태우고 비슬산 자연휴양림 입구까지 갔다. ‘비슬산 참꽃 축제’가 열리는 기간이라서 평일인데도 많이 붐볐다. 오늘 우리 일정이 빠듯하여 걸어서 등산하지 못하고 축제 기간에 운행하는 대견사까지 올라가는 셔틀버스 티켓을 줄을 서서 샀는데, 버스를 타려면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동안 고령에서 온 김청수 시인과 합류하고, 달성문인협회가 길가에 전시한 비슬산과 참꽃에 관한 시들을 감상했다. 그 중에는 김동원, 김청수 시인의 작품도 있었다. 잠시 길 옆 숲속에서 박영선 시인이 준비한 차를 마시고, 김청수 시인이 준비해온 돼지껍데기 안주를 곁들여 막걸..

텃밭 일기 2016.04.25

가마솥 걸기

오늘은 마당 가 돌담 앞에다 가마솥을 걸 화덕을 만들었다. 옛집에서는 정지(부엌) 안에 가마솥이 걸려 있었지만 20년 전쯤에 양옥으로 집이 새로 지어진 뒤 아버지는 집 뒤뜰에다 화덕을 만들어 무쇠 솥을 걸어 쓰셨는데, 그 솥은 오래전부터 바닥에 금이 가서 물이 조금씩 샐 뿐만 아니라 녹이 슬고 무거워서 불편한 점이 많았었다. 가벼운 알루미늄 솥을 사 와서(호칭치수 50cm, 7만원) 뒤뜰이 아닌 앞마당 돌담 앞에다 화덕을 만든 것이다. 솥 크기에 맞춰 벽돌로 둥글게 쌓아올리고, 동산에서 찰흙을 캐 와서 벽돌 사이에 바르고, 마지막엔 시멘트를 물에 풀어서 발랐다. 시멘트를 바르지 않으면 아무래도 비에 약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궁이의 쇠문은 녹이 많이 슬고 삭았지만, 아직은 쓸 만해서 옛것을 사용했다. 완성..

텃밭 일기 2016.04.15

봄바람을 쐬다(짱구와 명자꽃)

지난 일요일에 퇴직자 모임이 있다고 하도 전화가 와 쌓아서 팔공산을 나왔는데, 어제는 '월요시인학교'에 출석하는 날이었고, 내일은 또 고용 보험료를 받기 위해 고용센터에 마지막으로 출석해야 하는 날이고, 오는 토요일은, 낮에는 결혼식, 저녁엔 고향 친구들의 모임인 '구구회'가 시내에서 열리는 날이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엔 4월 총선과 관련된 어떤 애처로운 후보의 작은 후원회에 나가볼 생각이고, 그래서 나의 텃밭엔 다음 월요일 시인학교에 출석한 뒤에나 겨우 다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없어도 마늘 순과 정구지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을 것이지만, JBL 스피커는 빈집에서 심심하겠다. 이리하여, 오늘 오후엔 짱구와 함께 아파트 주위를 돌며 산책이나 하였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들이 낯설게 느껴지는지..

텃밭 일기 2016.03.22

춘란 전시회

어제 오후엔 친구들(면장, 금룡)과 함께 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에서 열린 춘란 전시회에 다녀왔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이름다운 꽃을 피운 화예품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우리는 다만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둘러보았다. 돌아오는 길엔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흙비에 학교 맞은편 뒷골목의 주점까지 쫓겨 들어가서 막걸리를 마셨다. 그 옛날 청도와 밀양쪽으로 춘란을 산채하러 다니던 시절의 추억에도 잠시 잠기며.

텃밭 일기 2016.02.29

팔공산에 올라

11시에 부인사 동쪽 등성이를 따라 등산을 시작하여 '이말재'를 거쳐 두 시간 만에 팔공산 주능선에 올라섰다. 동봉과 서봉은 몇 년에 한번씩은 올라왔었지만 이 능선에 오르기는 한 십 년 만인 것 같다. 가뭄 탓인지 단풍은 그다지 곱지 않고 황사 때문에 시야도 많이 흐리지만, 평일이라 호젓해서 좋다. 그 옛날, 아버지를 따라 지게 지고 나무하러 다니고 동네 아이들과 소먹이러 다니던 골짜기들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저기 동쪽으론 톱날바위와 서봉과 비로봉이 눈앞에 보이고, 돌아보면 내가 올라온 등성이도 보인다. 이쯤에서 메고 온 단감과 막걸리로 목을 좀 축여도 되겠다. 서봉과 비로봉을 거쳐 동봉에서 일몰의 광경을 보고 내려가려고 한다.

텃밭 일기 2015.10.23

연못 파기

오늘은 팔공산 주능선을 종주해보려고 생각하다가 그건 단풍이 더 드는 며칠 후로 미루고, 텃밭에다 작은 연못을 하나 만들기로 했다. 도랑물이 흘러 나오도록 만들어진 밸브 앞쪽 토란밭 머리에 삽, 괭이, 곡괭이를 사용하여 땅을 팠다. 서너 시간 땀을 흘려, 가장 깊은 곳은 1m쯤의 깊이가 되도록 파고나서, 도랑물로 담수를 하니 수면 넓이가 한 평은 좋이 되는 것 같다. 한 평이라는 면적이 이토록 넓은지, 물의 양은 또 얼마나 많은지 오늘 실감하였다. 이리하여 반달 모양의 작은 연못이 하나 한반도의 아래쪽 팔공산 자락에 새로이 생겼다. 이 둠벙은 텃밭에 물을 줘야 할 때 조금씩 내려오는 도랑물을 미리 받아 두어 시간을 절약할 목적으로 만들었지만, 내게는 그밖에 욕심이 하나 더 생겼다. 앞으로 두고봐서 누수가 ..

텃밭 일기 2015.10.15

분갈이

오늘은 점심도 걸러가며 난의 분갈이를 했다. 작년 이맘때 시험삼아 일지출과 상원황에 양파주머니 내복을 입혀보았었는데, 오늘 보니까 확실히 뿌리의 발육 상태가 좋다. 화분 내부의 통기성이 훨씬 좋아진 결과다. 그래서 올해는 모든 화분에 이 방법을 적용하여 분갈이를 했다. 양파주머니 내복법이란, 작은 크기의 양파주머니를 화분 깊이에 맞춰 통째로 잘라 화분 내벽에 두르고 그 안에다 난과 난석을 넣는 방법이다. 아파트 베란다의 열악한 환경에서 애란인들의 가장 큰 난제가 바로 뿌리썩음이라, 그것을 개선해보고자 내가 독창적으로 고안한 방법이다. 앞으로 우리집 난은 뿌리가 썩지 않고 튼튼하게 자랄 것으로 자못 기대된다. 분갈이를 해주고 나니 난들이 즐거워하고 내게 고마워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마땅히 해야할 일을..

텃밭 일기 2015.09.11

미안한 날

풀이 무성하게 자란 묵은 밭에서 풀을 베다가 꿩알을 발견하였다. 모르고 주위의 풀을 거의 다 베어 버린 건 나의 실수였으나, 예초기 날에 꿩알들이 한 개도 다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놀라서 날아갔을 어미가 다시 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한참 후에 가봤더니 특유의 보호색과 검불로 감쪽같이 위장한 어미는 다시 알을 품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가까이 다가가도 꼼짝하지 않는 저 끔찍한 모성애! (아래 두번째 사진에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을 품고 있는 까투리가 있는지 잘 모른다.) 풀을 베고 사진까지 찍었으니 까투리와 장끼 부부에겐 이래저래 미안한 날이었다. 그늘이 없어졌으니 알을 품는 어미의 등은 땡볕에 얼마나 뜨거울까. 아무쪼록 알들이 모두 무사히 부화해서 아홉 꺼병이들이 ..

텃밭 일기 2015.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