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텃밭 한쪽에 심은 옥수수의 작황이 좋았다. 씨앗을 새로 사지 않고 작년에 사서 심어 수확한 옥수수자루 두 개를 벽에 매달아 두었다가 심었었는데 유전자가 열성화 하지 않았는지 잘 자랐다. 이제 막 익기 시작하여 며칠 전에는 몇 개 꺾어서 삶아 맛도 보았다. 제철에 먹고 남으면 올해는 조금 냉동해 뒀다가 겨울에 먹어야겠다고, 아내는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이틀만에, 어제 아침 텃밭에 가 보고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옥수수 이랑이 난장판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 키보다 큰 옥수숫대를 옆으로 눕히거나 분질러 갉아먹은 옥수수자루가 땅바닥에 수두룩하게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알이 아직 차지 않은 것은 전혀 건드리지 않고 알이 찬 것만 용케도 골라서 까 먹었다. 텃밭을 둘러친 '노루망' 울타리를 점검해 보았지만, 고라니가 들어왔을 만한 구멍은 없었고 땅바닥을 살펴보아도 고라니 발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고라니보다는 훨씬 덩치가 작지만 옷수숫대를 타고 올라가 그것을 옆으로 넘어뜨릴 정도의 체중을 가진 짐승의 소행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옥수수 이랑 곳곳에는 땅을 주둥이로 판 듯한 얕은 구멍들도 여러 군데 있었는데, 그것으로 보아 불청객은 너구리인 것 같았다. 피해 규모를 볼 때 한두 마리가 아닌 것 같았다.
옥수숫대를 타고 올라갈 정도의 날렵한 짐승이라면 울타리도 소용없을 것이다. 노루망 울타리를 지지하고 있는 시멘트 말목을 타고 올라가 울타리를 넘거나 잡초가 무성한 지면과 접한 울타리의 아랫쪽을 비집고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얼마전까지는 고라니가 몇 차례나 들어와 고추 순, 고구마 잎, 콩잎, 비트 잎을 돌아가며 뜯어먹곤 했었다. 노루망 울타리를 찢고 들어온 곳을 뒤늦게 발견하고 그곳을 노끈으로 꿰맨 뒤부터는 고라니는 들어오지 못했다. 친구의 얘기를 듣고 도로보수공사에 사용하는 태양열 충전 방식의 야간 점멸등 두 개를 구입해서 텃밭에 설치하기도 했었는데, 그것은 지금도 밤마다 번쩍이고 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지난밤에도 그들은 또 한 차례 다녀갔다. 어제 아내와 내가 알이 덜 찬 옥수수라도 뺏기기 전에 먹자며 몇 개 꺾은 뒤라서 첫날보다는 피해가 적었다. 지난밤엔 작년에 사서 설치해 보았던 뉴트리아 포획틀에 옥수수 미끼를 넣어 두었지만 영리한 그들은 그건 건드리지도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오늘은 지난번에 울타리를 치고 남은 노루망으로 옥수숫대들을 직접 둘러치고, 텃밭 가운데 세워 두었던 야간 점멸등을 옥수수 이랑으로 옮겼다. 옥수수 철이 끝나면 바로 또 땅콩 이랑으로 그들이 쳐들어올 것에 대비하여 부랴부랴 인터넷을 통하여 새그물(방조망)을 주문했다. 그것으로 땅콩 이랑을 푹 덮어 두면 그들의 발가락이나 발목에 그물코가 걸리적거려 쉽게 땅콩을 파먹지 못한다는 이웃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예전에 나도 그 방법을 써 본 적이 있었지만 효과는 미미하였다. 하지만 어찌하랴. 그 방법이라도 다시 써 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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