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아내가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메뚜기를 잡으러 가서 한 홉쯤 잡아 오더니, 오늘은 나더러 메뚜기를 또 잡으러 가자고 했다. 무엇에든지 애살있는 아내로서는 그날 잡은 메뚜기가 너무 적어서 아쉬웠던 모양이다. 그날은 처음이라서 메뚜기가 많은 곳을 찾아 헤매느라 많이 잡지 못했다며 다시 가면 많이 잡을 수 있다는 아내의 말에 나는 솔깃해졌다.
새벽 다섯 시 반에 출발하여 집에서 차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인 의성군 쪽으로 향했다. 메뚜기는 해가 뜨고 이슬이 마르면 활동성이 강해져서 잡기가 힘들기 때문에 아침 일찍 잡아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오늘은 날이 흐려서 이슬이 마르는 시간이 더딜 것 같아 잡기가 좀 더 좋을 것이었다. 아내가 잡았다는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완전히 밝았는데, 낮은 산자락에 자리잡은 마을 앞으로 펼쳐진 들판엔 벼를 벤 논과 베지 않은 논이 반반 정도였다.
논두렁에 올라서니 벼 잎에 붙어 있는 메뚜기가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수십 년 만에 보는 벼메뚜기다. 이슬을 흠뻑 뒤집어쓰고 벼 잎에 붙어서 자고 있는 고추잠자리들도 보였다. 나의 옛적 경험에 의하면 벼메뚜기는 논에 농약을 치면 금방 사라져 버리고 적어도 두세 해는 농약을 치지 않아야 다시 돌아오기 시작한다. 사라진다는 말은 농약을 피하여 도망간다는 것이 아니라 죽어 없어진다는 뜻이고, 돌아온다는 것은 논두렁이나 산자락에서 농약의 피해를 입지 않고 간신히 살아남은 소수의 메뚜기들이 다시 번식을 하여 논으로 들어온다는 의미다. 메뚜기는 그만큼 농약에 민감하다. 그래서 메뚜기가 사는 논에서 생산된 쌀은 그만큼 청정한 쌀이고, ‘메뚜기 쌀’이 바로 그런 쌀이라는 의미로 유명하기도 하다.
나는 농경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게 지고 뒷산으로 나무하러 다니고, 겨울밤엔 사랑방에 모여 새끼 꼬고 가마니 치며, 소를 부려 논밭을 갈던 시대였으니까. 그리고 틈만 나면 메뚜기와 가재를 잡아 볶아 먹고, 토끼몰이를 하고 참새를 잡아 구워 먹었으며, 온갖 야생 열매들을 따고 뿌리를 캐 먹었으니 수렵채취 시대에도 살았던 셈이다. 먹을 것이 그만큼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메뚜기의 맛이 고소하게 느껴지고 가시 울타리에 모여 앉아 있는 참새들을 보면 구워 먹고 싶어지니 어릴 적 입맛은 나이 들어서도 버리지 못하는 것인가 보다.
한 나절을 잡은 메뚜기가 2리터짜리 페트병으로 세 병이나 되었다. 굼뜬 내가 한 병을 잡을 동안 재바른 아내는 두 병을 잡은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의성 농협에 들러 갓 도정한 햅쌀도 한 포대 샀다. 이제 메뚜기를 쪄서 날개를 떼고 말린 다음 식용유와 소금을 조금 둘러 볶아서 먹으면 된다. 그런데 어릴 적에 먹어 보지 않았다는 아내는 메뚜기 먹는 것을 꺼리고, 칼슘과 단백질이 풍부한 건강식품이라며 두고두고 내게만 먹일 눈치여서 조금 난감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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