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꽃피운 일지출

공산(空山) 2019. 8. 31. 17:42

 





 

나는 오래전부터 아파트 베란다와 거실 창가를 난실로 삼아 난을 키우고 바라보며 살아왔다. 그렇지만 난의 종류나 포기수가 썩 많은 것은 아니고, 예닐곱 종류에 여남은 포기를 키우고 있을 뿐이다. 별도의 난실을 갖추지 못한 나로서는 열악한 환경에서 버텨 주는 난에게 미안해서도 더 욕심을 내어 난의 식구들을 늘려 볼 엄두를 못 내었던 것이다. 이들 식구들 중에는 친구가 키우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며 시들어 죽기 직전에 내게 맡긴 것도 있는데, 내게 와서 그래도 깨어나는 걸 보면 마음이 뿌듯해지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포기수가 많이 늘어날 수가 없고, 꽃도 해마다 피우지 못하고 해거리를 하거나 몇 년 만에 한 번씩 피울 때도 있다.

 

지금은 오랜만에 일지출(日之出)이 꽃을 피워 청향이 집 안에 가득하다. 여름에 꽃을 피워 하란(夏蘭)으로 분류되는 이 혜란(蕙蘭), 온난한 중국 복건성(福建省)이 원산지인 건란(建蘭)의 일족이다. 강건한 잎에는 황백색의 복륜(覆輪)이나 호()가 변화있게 나타난다. 그렇게 힘들게 피운 고마운 꽃을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어 사진을 찍어 보았다.

 

2020. 7. 12.
2022. 7. 23. 꽃대 두 개에 아홉 송이의 꽃이 피었다.

 

2023. 8. 4. 한 개의 꽃대에 여덟 송이의 꽃을 달더니, 한 달 보름의 시차를 두고 또 한 개의 꽃대를 빼어 올렸다.

 

설월화, 2024. 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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