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위남마을 참나무들

공산(空山) 2021. 3. 11. 09:01

이시아폴리스의 이웃에 사시는 조선배님, 봉무동 아들네 아파트 문짝 수리를 해 주러 성주에서 온 병국이, 지묘동의 왕수씨, 그리고 나 넷이서 파군재 밑 독좌암 앞 위남마을 입구의 막국수집에서 오랜만에 만나 점심을 먹은 것은 어제였다. 막걸리를 반주로 곁들였지만, 병국이는 전날 저녁에 많이 마신 데다 운전을 해야 한다며 술을 마시지 않았고, 이태 전에 술을 끊은 나는 물론 병아리 눈물만큼도 마시지 않았다. 아직도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수가 하루에 400명 언저리라 5명 이상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음식점에 들어설 때도 여느 장소와 마찬가지로 체온을 재고 연락처를 기록하는 것이 요즘의 풍속이다.

 

서로가 그리워하는 것 같아 이 자리에 여러분을 불러 모셨으니 내가 모처럼 큰 일을 한 것 같다고 한 것은 나의 너스레였다. 그런데, 주문한 두부무침과 막걸리와 막국수가 나오기도 전에 왕수씨가 계산대로 가서 음식값을 미리 내는 바람에 내가 난처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조선배님도 오늘 이 분들과 점심을 먹으면 꼭 당신이 계산하라는 사모님의 특명을 받고 나왔다며 머리를 긁적이셨다.

 

담소를 하던 중에 조선배님이 한 가지 괴이한 이야기를 꺼내셨다. 저 안쪽의 위남마을 뒷산에 가면 비탈의 참나무 둥치들이 모두 같은 방향 같은 높이에 움푹 패여 있는데 자신은 그 연유를 모르겠더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점심을 먹은 후 식당을 나와서 그 기이한 참나무들을 보기 위해 위남마을의 나지막한 뒷산으로 올라갔다. 아닌 게 아니라 모든 참나무들이 비탈이 높아지는 쪽, 그러니까 산꼭대기에서 내려다 보이는 방향의 가슴 높이에서 아래위로 길게 홈이 패여 있었고 그 홈이 파인 만큼 다른 방향으론 불룩하니 부풀어 있었다. 홈이 파인 부분은 썩었고 그 가장자리엔 부름켜의 새 살이 돋은 것으로 보아 오래 전에 입은 상처들이었다. 나는 그것이 도토리를 털기 위해 사람들이 참나무를 몽둥이로 두들겨 팬 자국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예전 다른 산에서도 몇몇 참나무들이 이런 상처를 입고 서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상처가 하나같이 같은 방향인 이유는, 비탈이 높은 위치에 사람이 서서 둥치의 높은 곳을 패면 나무를 더 많이 흔들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추리해 볼 수 있었다. 나무들은 모두 늙어 있었지만 죽은 것은 아니어서 곧 새 잎을 피우긴 할 것이다.

 

인간의 욕심과 잔인함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가만히 두어도 참나무는 도토리를 떨어뜨려 줄 텐데, 산짐승과 다른 사람들이 줍기 전에 저만 먼저 주으려고 한 짓이 아닌가. 저 깊은 상처를 가슴에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나무들의 고통은 얼마나 클 것인가. 우리는 더이상의 할 말을 잃고 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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