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옻골과 4차순환도로

공산(空山) 2021. 2. 6. 20:54

자전거를 탄 지 한 달이 훨씬 지나고 보니 집에서 두어 시간 거리 안에 있는 금호강과 신천의 자전거 길은 많이 가본 것 같다. 오늘은 한 이십 년 전쯤에 차를 몰고 잠깐 아내와 한 번 가 보았을 뿐이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한 옻골에 가 보기로 했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느지막이 출발하여 금호강을 거슬러 우안(岸)의 자전거길을 따라가다가 화랑교를 지나 강둑을 넘고 방촌의 대로를 건너 둔산동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거기엔 자전거길이 없어 행인이 거의 없는 보도를 타고 갔다. 동촌비행장 동쪽 끄트머리의 둔산동을 지나고 경부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그러니까 방촌 대로로부터는 한 4km쯤 북쪽으로 들어갔을까.

 

수령이 400여 년인 느티나무와 회나무가 입구에 서 있는 옻골마을은 골목길과 담장들이 말끔히 단장되어 있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최계(崔誡)선생의 후손인 최흥원(崔興遠)선생의 400여 년 된 종택(백불고택) 등 20여 호의 한옥 기와집들이 모여 있었다. 안동 하회나 경주 양동마을보다 마을의 규모는 훨씬 작았지만 북쪽과 동쪽과 서쪽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나름대로 아늑하고 풍취가 있었다.

 

자전거를 끌며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는데, 마을 앞을 가로질러 4차 순환도로가 지나가고 있었다. 이 길이라면 아직 공사중이라 개통까지는 멀지만 우리 동네인 봉무동 뒤쪽으로도 지나간다. 나는 은근히 호기심이 들고 지름길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높다란 신작로의 노면으로 올라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군데군데 플라스틱 바리케이트는 지그재그로 놓여 있었지만 말끔히 포장이 되어 있어서 자전거로 달리기에 좋았다. 주말 휴일이라 공사하는 사람들이나 차량이 하나도 없었다. 먼저 우리 동네와 반대쪽인 동쪽으로 달려 짧은 터널을 하나 통과하니 금방 신서 혁신도시가 눈 앞에 펼쳐졌다. 다시 자전거를 돌려 서쪽으로 달렸다. 터널이 여럿 있었는데, 긴 터널을 지날 때는 칠흑같이 어두워서 전혀 앞을 볼 수 없었지만 휴대폰 불빛에 의지하여 천천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부 구간은 아직도 토목공사 중이어서 자전거를 들고 돌밭을 지나가야 했다.

 

아마도 자동차 전용도로인 4차순환도로를 자전거로 씽씽 달려본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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