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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 기형도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1989.

내가 읽은 시 2015.11.18

엄마 걱정 - 기형도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1989.

내가 읽은 시 2015.11.18

빈 집 - 기형도

빈 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1989.

내가 읽은 시 2015.11.18

눈보라 - 황지우

눈보라 황지우 원효사 처마 끝 양철 물고기를 건드는 눈송이 몇 점 돌아보니 동편 규봉암으로 자욱하게 몰려가는 눈보라 눈보라는 한 사람을 단 한 사람으로만 있게 하고 눈발을 인 히말라야 소나무 숲을 상봉으로 데려가 버린다 눈보라여, 오류 없이 깨달음 없듯,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사람은 지금 후회하고 있는 사람이다 무등산 전경을 뿌옇게 좀먹는 저녁 눈보라여, 나는 벌 받으러 이 산에 들어왔다 이 세상을 빠져나가는 눈보라, 눈보라 더 추운 데, 아주 아주 추운 데를 나에게 남기고 이제는 괴로워하는 것도 저속하여 내 몸통을 뚫고 가는 바람 소리가 짐승 같구나 슬픔은 왜 독인가 희망은 어찌하여 광기인가 뺨 때리는 눈보라 속에서 흩어진 백만 대열을 그리는 나는 죄짓지 않으면 알 수 없는가 가면 뒤에 있는 길은 길..

내가 읽은 시 2015.11.17

가을 마을 - 황지우

가을 마을 황지우 저녁해 받고 있는 방죽둑 부신 억새밭, 윗집 흰둥이 두 마리 장난치며 들어간다 중풍 든 柳氏의 대숲에 저녁 참새 시끄럽고 마당의 잔광, 세상 마지막인 듯 환하다 울 밖으로 홍시들이 내려와 있어도 그걸 따갈 손목뎅이들이 없는 마을, 가을걷이 끝난 古西 들에서 바라보니 사람이라면 핏기 없는 얼굴 같구나 경운기 빈 수레로 털털털, 돌아오는데 무슨 시름으로 하여 나는 동구 밖을 서성이는지 방죽 물 우으로 뒷짐진 내 그림자 나, 아직도 세상에 바라는 게 있나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지성사.

내가 읽은 시 2015.11.17

섬광 - 황지우

섬광 황지우 내 중세 정원을 채찍으로 내리치는 번개; 하늘과 땅을 鎔接하는 보라 섬광에 낙원이 잠깐 윤곽만 나타났다 없어진다 그건 한낱 광휘에 불과하리라 몽매에 혹해 있는 이 어리석은 자는 그러므로 평생 깨닫지 않으리라 얼마 후 당도한 천둥 소리, 조바심이었을까? 하늘 마룻장에서 누군가 발 구르는 소리; 섬광을 본 꽃과 가지들 다 재가 된 숯덩이 정원에 쏟아붓는 暴雨; 이래도 낙원이더냐?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지성사.

내가 읽은 시 2015.11.17

소나무에 대한 예배 - 황지우

소나무에 대한 예배 황지우 학교 뒷산 산책하다, 반성하는 자세로 눈발 뒤집어쓴 소나무, 그 아래에서 오늘 나는 한 사람을 용서하고 내려왔다. 내가 내 품격을 위해서 너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 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것이 나를 이렇게 휘어지게 할지라도. 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이 地表 위에서 가장 기품 있는 建木; 소나무, 머리의 눈을 털며 잠시 진저리친다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문학과지성사.

내가 읽은 시 2015.11.17

너와집 한 채 - 김명인

너와집 한 채 김명인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 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겠네 저 비탈바다 온통 단풍 불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가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잣겠네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진 개옻 그늘과 문득 죽음과, 들풀처럼 버팅길 남은 가을과 길이 있다면, 시간 비껴 길 찾아가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 못하는 두천 그런 산길에 접어들어 함께 불붙는 몸으로 저 골짜기 가득 구름 연기 첩첩 채워 넣고서 사무친 세간의 슬픔, 저버리지 못한 세월마저 허물어버린 뒤 주저앉을 듯 겨우겨우 서 있는 저기 너와집, 토방 밖에는 황토흙빛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겠네 부뚜..

내가 읽은 시 2015.11.16

北方에서

北方에서                              -- 鄭玄雄에게     백석       아득한 녯날에 나는 떠났다    扶餘를 肅愼을 渤海를 女眞을 遼를 金을.    興安嶺을 陰山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나는 그때     자작나무와 익갈나무의 슬퍼하든것을 기억한다     갈대와 장풍의 붙드든 말도 잊지않었다     오로촌이 멧돌을 잡어 나를 잔치에 보내든것도     쏠론이 십리길을 딸어나와 울든것도 잊지않었다.     나는 그때     아모 익이지못할 슬픔도 시름도 없이     다만 게을리 먼 앞대로 떠나나왔다     그리하여 따사한 해ㅅ귀에서 하이얀 옷을 입고 매끄러운 밥을먹고 단샘을 마시고 ..

백석 2015.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