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빈 집 - 기형도

공산(空山) 2015. 11. 18. 14:17

   빈 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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