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동안 구름 걷히기를 기다린 끝에 눈앞에 드러난 백록담은, 그저께 밤부터 어제 아침까지 한라산에 200mm나 내린 비 덕분에 물이 많이 차 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저 아래쪽 산언저리와 바닷가엔 서너 번 다녀간 적은 있으나 여기까지 오르기는 이번이 처음이라, 뒤늦게 소원 하나는 이룬 셈이다. 때마침 밤새 내리던 비도 아침에 그쳐 쾌적한 날씨다. 성판악에서 7시 반에 출발하여 5시간을 걸어 올라왔다. 올라오는 동안 정지용 시인의 오래된 시 을 생각했다. "絶頂에 가까울수록 뻑국채 꽃키가 점점 消耗된다. 한 마루 오르면 허리가 스러지고 다시 한 마루 우에서 목아지가 없고 나종에는 얼골만 갸웃 내다본다. 花紋처럼 版박힌다. 바람이 차기가 咸鏡道 끝과 맞서는 데서 뻑국채 키는 아조 없어지고도 八月 한철엔 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