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달성보, 도동서원, 우포늪

공산(空山) 2022. 8. 28. 21:58

접이식 자전거 두 대를 차에다 싣고 아내와 함께 달성보 쪽으로 향했다. 상류쪽 강정보는 자전거를 타고 두어 번 가보았으나 달성보에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집에서 출발하기에 앞서 달성공단에서 오래전부터 철공소를 운영하고 있는 고향 친구 나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가는 김에 모처럼 점심이나 함께 먹을까 해서였다. 그런데 마침 오늘 그는 형제들과 고향 선산에서 벌초를 하는 중이라고 해서 벌초가 끝나는 대로 달성보로 오라고 하고는 아내와 나는 전망대 앞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자전거를 폈다. 자전거를 타고 보를 건너며 내려다본 강물은 그다지 맑아보이지 않았지만, 우안(右岸)의 강둑길을 달리며 양쪽으로 펼쳐지는 낙동강과 들판의 풍경을 만끽하였다. 다시 보를 건너 좌안(左岸)에서 강정보 쪽으로 강을 거슬러 한참을 달리는데, 나사장한테서 벌초를 서둘러 마치고 일행들과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중이라는 전화가 왔다. 우리도 자전거를 나무 그늘 아래 세우고 준비해간 간식으로 점심을 때우고 나사장 부부를 만났다

두 부부가 나사장이 모는 차를 타고 우선 달성군 구지면의 도동서원으로 갔다. 서원 앞마당의 400살이 넘은 은행나무(암나무가 아닌 수나무)가 반겨 주었다. 도동서원은 한훤당(寒暄堂) 김굉필 선생의 학문과 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라고 한다. 도동서원, 소수서원, 병산서원 등 아홉 곳의 서원이 함께 '한국의 서원'으로 2019년에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입구 계단 위의 '환주문(喚主門)'이 낮고 좁은 것은 겸손하라는 의미라고 해설사는 설명해 주었다. 강당인 '중정당(中正堂)'에서 바라보면 서원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이 '수월루(水月樓)' 지붕으로 가려지는데, 이는 수월루가 잘못된 고증으로 너무 높이 복원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건립 당시 전국의 유생들이 가지고 왔다는 각양각색의 돌들로 쌓은 축대가 아름다웠다. 중정당에는 퇴계 선생의 유필 중에서 집자하여 만들었다는 '道東書院' 현판이 걸려 있었다.

서원을 나와 우포늪으로 갔다. '목포제방'에서 '제2전망대' 쪽으로 산책을 하는데, 좌우로 펼쳐진 드넓은 늪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확 트이는 느낌이었다. 우포늪은 1억4천만 년 전 한반도가 생기던 무렵에 함께 형성되었다고 한다. 낙동강의 지류인 토평천 유역에 우포, 목포, 사지벌, 쪽지벌 등의 늪으로 이루어져 있고, 총 면적은 2,500㎢(75만 평)가 넘는다고 한다. 1998년엔 국제습지조약(람사르 협약)의 보존습지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아마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쯤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나에게는 우포늪에 얽힌 추억이 하나 있다.

직장의 두 친구와 함께 주말이면 자주 막걸리를 차에 넉넉히 싣고 낚시를 하러 안동, 영천, 경산, 군위, 청도 등지로 다니던 시절이었다. 한번은 이 우포늪까지 밤낚시를 오게 되었는데, 우포늪과 인접한 창녕군 유어면에 터전을 잡고 사는 사촌 동생의 자문을 받아 포인트를 잡았다. 지금은 정확한 장소를 기억할 수 없지만, 예전에 논이었다가 늪으로 바뀐 곳이어서 얕은 수심 아래 논바닥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었다. 밤새도록 입질이 거의 없다가 새벽이 되자 고요하던 수면이 일렁이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입질이 잦아지고 월척이 연거푸 올라왔다. 그때도 낚시가 금지되어 있었는지, 빨간 모자를 쓴 감시원이 다가온 줄도 모르고 우리는 낚시에 열중하였다. "아무리 양심이 없더라도 감시원이 오면 중단하는 예의는 있어야지요!" "아, 죄송합니다. 여기가 낚시 금지 구역인지 몰랐습니다!" 잡은 물고기를 압수하지도 않고 불법 낚시꾼들을 훈방해 준 맘씨 좋은 감시원 아저씨 덕분에 우리는 돌아와서 붕어찜으로 포식할 수 있었다.

이다음엔 자전거로 늪의 구석구석을 다시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나사장이 최근에 조성해 놓았다는 농장으로 갔다. 비슬산 밑의 한 계곡 입구쪽이었는데, 농막은 비닐하우스 안에다 컨테이너를 들여놓은 형태였다. 200평쯤 되는 텃밭에는 고추, 들깨, 대추, 수세미, 호박 등의 작물과 함께 측백나무의 일종인 '에메랄드그린' 10여 포기, 전에 나의 텃밭에서 캐다 준 화살나무 몇 그루가 자라고 있었지만, 생흙으로 돋운지 얼마 되지 않은 땅이라서 작물들이 썩 잘 자라고 있지는 않았다.

농장 구경까지 마치고 나사장 부부와 우리는 현풍 읍내에 들러 곰탕으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는 달성보 부근의 강변 찻집에서 차를 마셨다. 날이 어두워지자 하늘과 산과 강의 구분이 없어지고 건너편 산등성이에 늘어선 고압선 철탑 꼭대기의 붉은 불빛들만 선명히 깜박이고 있었다. 처서 지난지 닷새째, 나흘 후엔 구월인데, 계절은 어김이 없어서 낙동강 강바람이 제법 서늘했다.

 

 

최근에 비가 자주 내려 수량이 많아졌지만 녹색이 완연한 물은 그다지 맑아 보이지 않는다.
저 앞에 보이는 것이 달성보 전망대
도동서원 앞 400살이 넘는 은행나무
중정당에서 해설을 들으며
퇴계 선생의 유필에서 집자하여 만들었다는 현판. 기둥에 두른 흰 종이띠 '상지(上紙)'도 보인다.
축대에 쓰인 돌의 석질과 색깔이 제각기 다르다.
목포제방에서 바라본 목포
제2전망대에서 바라본 우포. 멀리 산자락에 보이는 구조물이 따오기 복원센터다.
목포제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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