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산초와 초피

공산(功山) 2022. 9. 26. 20:34

예전에, 숲이 지금처럼 무성하지 않았을 적에는 마을이나 논밭 주위, 야산에 산초나무가 많았었다. 소를 먹이러 가거나 나무하러 가면 흔히 볼 수 있었다. 지금도 고향 동산에서 많이 눈에 띄지만 열매를 많이 달고 있는 산초나무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울창해진 큰키나무들의 그늘에 가려서 일조량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산초를 나의 고향에선 '난대'라고 한다. 향이 강하고 독특해서 나는 이 나무를 어릴 적엔 좋아하지 않았다. 어쩌다 이 나무의 잎을 만지게 되면 거기서 나오는 냄새가 싫어서 코를 막곤 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든 후에 언제부터인지 그 냄새가 좋아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일부러 잎을 만지거나 따서 코를 대고 향기를 음미까지 하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묵은 밭에다 그 산초나무를 너댓 그루 키우고 있다. 동산에 자생하고 있는 어린 나무를 캐어다 심은 것이다. 밭에는 그늘을 드리우는 큰키나무들이 없기 때문에 열매가 많이 열리는데, 지난해에는 열매로 기름을 짜니 참기름병으로 두 병 남짓 나왔었다. 그것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수시로 한 숱갈씩 먹었다. 산초기름은 위나 기관지 건강에 도움이 되고 아토피 피부염 등을 개선하며 들기름처럼 오메가3를 함유하고 있어 피를 맑게 한다는 속설이 있다. 그러나 나는 꼭 무슨 약효를 바라서가 아니라 향기가 좋아서 먹는다. 아내는 그 향기를 싫어해서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 동네 방앗간에선 압착기에 남는 냄새의 뒷처리 문제 때문에 산초기름을 짜주지 않아서 멀리 대구역전의 번개시장까지 가서 기름을 짰었다.

나는 오늘 텃밭에서 산초를 땄는데, 올해도 작년 정도의 수확량은 될 것 같다. 열매를 말리고 막대기로 두들기고 까불러서 겉껍질을 버리고 나면 남을 까만 열매가 되가웃은 될 것이고, 기름을 짜면 또 두 병은 나올 것이다. 그 고소하고 쌉싸름하면서도 형언할 수 없는 긴 여운의 뒷맛을 생각하면 벌써 입에 침이 고인다.

한편, 산초나무와 생김새가 비슷하면서도 향기는 전혀 다른 초피나무가 있다. 고향에서는 '지피'라고 하는데, 경상도식 추어탕에 없어서는 안 되는 향신료이다. 잎의 모양이나 가지에 난 가시, 열매의 크기가 산초나무와 비슷하지만, 열매를 맺는 위치와 모양에서 큰 차이가 있다. 산초는 가지 끝에만 무더기로 열매를 수십 수백 알씩 달지만 초피는 가지 전체에 걸쳐 몇 알씩 흩어서 열매를 단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차잇점은 산초는 열매의 껍질을 버리고 알갱이만 기름을 짜는 데 쓰지만, 초피는 반대로 알갱이는 버리고 열매의 껍질만 말리고 갈아서 향신료로 쓴다는 것이다. 산초나무, 초피나무, 귤나무, 탱자나무는 다 '운향과'에 속하는 나무들이라고 한다.

초피나무는 고향에서 자생하는 모습을 예전엔 찾아볼 수가 없었지만, 내가 오래전에 청도쪽으로 등산을 간 산에서 받아온 씨앗을 산가 뒤안과 텃밭 주위에 퍼뜨렸다. 나무 아래 씨가 떨어져 자란 묘목을 이웃에게 나눠주기도 해서 지금은 고향마을에서도 초피나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요즘은 산초와 초피의 열매가 익어서 껍질이 벌어지고 알갱이가 드러나는 때인데, 비둘기를 비롯한 온갖 산새들이 찾아오고 있다. 그들은 산초와 초피 모두 겉껍질엔 관심이 없고 까만 씨만 좋아한다.

 

 

가지 끝에만 무더기로 달린 산초나무의 열매
수확하여 건조 중인 산초 열매. 겉껍질이 벌어지고 까만 씨가 드러나 있다.
초피나무
초피나무. 열매가 가지의 곳곳에 흩어져 달려 있고, 익어서 겉껍질이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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