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들깨 타작

공산(空山) 2018. 11. 2. 23:48

지난여름의 그 가뭄과 더위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들깨 농사는 풍년이다. 웃자라지 않고 가지가 많이 발달해서 타작을 해보니 알차다. 해마다 같은 밭에다 들깨만을 심었는데, 지난봄엔 밭을 갈 때 석회-고토 비료만 뿌려 비닐을 씌워 모종을 하고, 사름을 하고 나선 웃거름으로 포기마다 과수 전용 복합비료를 조금씩 주었었다. 장마 때는 과습으로 여러 포기가 죽었고, 열매가 여물기 직전에는 태풍의 영향으로 대궁이가 쓰러지고 가지가 많이 찢어졌었다. 들깨 알이 여물자 참새와 멧새들이 몰려왔지만, 고추밭의 가짜 구렁이 서너 마리를 데려와 들깨 밭에 풀어놓았더니 그 뒤로는 일절 새들이 오지 않았다.

 

잎이 많이 진 들깨 대를 며칠 전에 낫으로 쪄서 이랑 위에다 가지런히 널어두었다가 오늘 아내와 함께 타작을 했다. 펼쳐놓은 널따란 비닐 포장 위에 두꺼운 고무 대야를 각자의 앞에 하나씩 엎어놓고 거기다 들깨 대를 한 움큼씩 잡고 내려치면, 들깨 밭에 난데없는 북소리가 요란해진다. 해마다 가을에 동화사에서 열리는 승시(僧市)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스님들의 법고 경연대회를 방불케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다. 그 북소리에 맞춰 2천억 개쯤이라는 우리 은하계의 별 만큼이나 많은 들깨알들이 코를 찌르는 향기와 함께 좌르르 좌르르 쏟아지니, 어찌 이 일이 힘들다고만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타작을 한 뒤에도 몇 공정을 더 거쳐야 깨끗한 알곡을 얻을 수 있다. 우선 들깨알과 마른 잎들이 뒤섞인 것을 갈쿠리나 손으로 이리 저리 저으며 마른 잎들을 대강 걷어내고, 얼기미(어레미)로 거르고, 다시 바가지로 떠서 선풍기 바람에다 부스러기와 쭉정이를 날리면 비로소 깨알만 남는 것이다. 들깨 타작을 하면서 오늘 내가 절실히 느낀 것은, 모든 농사가 그렇듯이 이런 수확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알곡이 땅에 흩어져 버려지는 일이 많은데, 그것을 아깝게 생각하면 안 되겠다는 것이다. 내가 비록 새떼를 쫓기 위해 가짜 구렁이들을 고용하기도 했지만, 수확이 끝난 빈 밭에 떨어진 낟알들은 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해가 서산을 넘어가고 어두워질 때에야 일이 끝났다. 어느덧 나와 아내도 그 옛날의 부모님을 많이 닮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엔 또 이 들깨알들을 마당에서 햇볕에 말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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