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폭염

공산(空山) 2018. 7. 26. 22:19

유래없는 폭염이 보름 이상 지속되고 있다. 뉴스에 의하면 오늘 경산 하양이 40.5, 영천 신녕이 40.4도로 역대 최고 기록을 갱신했다고 한다.

 

창문이 활짝 열린 산가 실내에 걸려 있는 알코올 온도계는 오후 세 시가 지나자 33도를 가리켰고, 이 온도계를 바깥으로 들고 나가 감나무 그늘에 걸었더니 34도를 가리켰다. 어제까지는 실내 32.5도가 최고였는데, 오늘 이곳의 올여름 최고 온도를 갱신한 셈이다. 그래도 부근의 대구와 경산, 영천의 40도에 육박하거나 넘은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시원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14도밖에 안 되는 지하수 수돗물로 샤워를 하고 나면 한참 동안은 괜찮다. 해가 서산에 걸릴 때부터는 산바람이 내려와 시원하고, 새벽에는 홑이불을 덮어야 될 정도다.

 

텃밭의 사정을 얘기하자면, 먼저 들깨밭은, 유난히 길고 비가 많이 내렸던 지난 장마철에 배수가 잘 되지 않았던 일부 이랑엔 뿌리가 썩어 죽은 포기가 많지만, 대부분의 들깨들은 그런대로 잘 자라고 있다. 광폭 비닐로 멀칭을 한 것이 장마철엔 과습의 피해를 주었지만 지금처럼 가물 때는 오히려 보습을 해주어 좋은 것 같다. 들깨는 웃자라면 열매를 많이 맺지 않으므로 올해는 좀 늦게 장마철에 모종을 하여 아직 키가 크지 않다.

 

고추 50포기, 청양고추 7포기, 파프리카 5포기, 가지 3포기, 토마토 5포기, 방울토마토 5포기, 오이 5포기, 야콘 15포기에 대한 얘기다. 비닐을 덮어 씌운 이랑의 포기마다 옆에 큰 컵 한 컵 정도의 물이 고일만큼 물구덩이(Water Pocket?)를 만들어 놓고 매일 아침 해 뜨기 전에 나와서 둠벙에 고인 물을 떠서 나눠 주고 있다. 마치 그 옛날 잔디밭에 줄지어 앉은 조무래기들의 오지랖에 묘사 떡을 나눠 주듯이. 그래서 아직은 가뭄이나 더위에 대한 큰 피해는 없고, 고추와 파프리카가 올해는 많이 달렸다(나는 아직 피망과 파프리카를 구분하지 못한다). 해마다 조금씩 심던 야콘은, 이파리가 햇볕에 데어 많이 말라서 올해의 더위가 얼마나 혹독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호박도 몇 포기 여기 저기 심어 부지런히 물을 줬더니, 애호박이 벌써 많이 열렸다. 산짐승들을 피해 뒤안에 심었던 옥수수는, 매일 물을 주지만 잎과 옥수수 자루가 햇볕에 데어서 제대로 여문 옥수수를 기대하기는 어렵겠다. 이종 동생들과 함께 심어 자기 몫의 밭을 구분해 둔 고구마는, 고라니가 와서 잎을 조금 뜯어먹었지만 아직 가뭄 피해는 없다. 지금쯤 이랑 사이에다 물을 한번 대주면 좋겠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다. 그리고 콩은, 비둘기를 피해 모종을 잘 키워 옮겨 심었었지만, 사흘만에 고라니가 와서 몽땅 뜯어먹었다. 그래서 일부는 다시 키운 모종을 심고 일부는 그대로 둔 채 그물을 씌웠는데, 지금은 곁가지가 다시 자라 제법 무성하다. 콩이 얼마나 열릴 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그밖에도 마당이나 텃밭에서 함께 폭염을 견디고 있는 친구들은 많다.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묘목을 심으셨으니 나와 나이가 비슷한 마당의 작은 감나무, 나이가 훨씬 더 많은 그 옆의 큰 감나무, 내가 오래 전에 심은 은행나무들과 밭가의 잣나무들, 밭 한쪽에 한창 열매들을 맺고 있는 왕대추 두 그루와 호두나무 다섯 그루, 여러 해 묵혀둔 밭에서 쑥과 잡초를 밀어내며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고사리들, 밤나무 세 그루, 가죽나무와 엄나무들, 키위(양다래)와 머루나무, 갈매나무, 느릅나무, 자귀나무, 오동나무, 배롱나무, 소나무, 주목... 이루 다 헤아려 얘기할 수가 없다.

 

이 폭염은 티벹쪽에서 온 고기압과 북태평양 고기압 기단이 만든 열섬(열기둥) 현상이라고 한다. 하늘을 쳐다보면 높은 구름이 가을을 예고하는 듯한데, 비 소식은 없고 폭염은 계속될 거라고 하니 걱정이다.

 

(816, 비가 최고 28mm나 내려서, 지난달 11일부터 이어진 대구지역의 폭염특보가 37일 만에 해제되었다고 한다.)

 

 

 

 

 

'텃밭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 이야기  (0) 2018.08.25
텍사스 목화  (0) 2018.08.09
텃밭에서 새를 쫓아 주는 구렁이  (0) 2018.06.20
사토(莎土)  (0) 2018.05.21
참꽃을 심다  (0) 2018.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