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시 83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로버트 프로스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

외국의 시 2016.06.29

이니스프리 호수 섬(The Lake Isle of Innisfree)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이니스프리 호수 섬(The Lake Isle of Innisfree)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나 일어나 이제 가리라, 이니스프리로 가리라. 그곳에 진흙과 나뭇가지로 작은 오두막 하나 짓고 아홉 이랑 콩밭과 꿀벌통 하나 벌 윙윙대는 숲속에 나 홀로 살리라. 나 거기서 평화를 누리리, 평화는 천천히 내리는 것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에 이르기까지 한밤엔 온통 반짝이는 빛, 한낮엔 보랏빛 환한 기색 저녁엔 홍방울새 날갯짓소리 가득한 그곳 나 일어나 이제 가리라, 밤이나 낮이나 호숫가에 철썩이는 낮은 물결소리 들리네. 한길 위에서 있을 때나 잿빛 포도 위에 서 있을 때면 내 마음 깊숙이 그 물결소리 들리네.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

외국의 시 2016.06.29

푸른 소녀들(Blue Girls) - 존 크로우 랜섬

푸른 소녀들(Blue Girls) 존 크로우 랜섬 푸른 스커트자락 펄럭이며 신학교 탑 아래 풀밭을 지나 늙고 고집 센 선생들의 강의를 들으러 가보렴 단 그들의 말은 한마디도 믿지는 말고, 풀밭 위를 거닐며 공중에서 재잘대는 파랑새처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일랑 말고 하얀 리본으로 머리를 묶으렴. 푸른 소녀들아, 시들기 전에 네 아름다움 발휘해보렴, 그러면 나의 시끄러운 입술로 소리쳐 공표할 테니 아름다움은 아무리 해도 굳게 잡아둘 수 없는 연약한 것이라고. 그건 내가 들려줄 수 있는 경험에서 나온 것이지; 나는 혀가 사나운 여인을 하나 알고 있는데 어느덧 그녀의 푸르던 눈은 흐릿해지고 모든 완벽함도 퇴색해버렸지 ― 하지만 얼마 전만 해도 너희 중 어느 누구보다 사랑스러웠단다. --------------..

외국의 시 2016.06.29

현미경 - 맥신 쿠민

현미경 맥신 쿠민 안톤 레빈후크는 네덜란드인이었다 그는 반짇고리, 옷감 등을 팔았다 그런데 손님들은 그에게 화를 내며 투덜거렸고 안톤의 가게 물건에는 먼지가 쌓여있었다 ​ 가게를 돌보는 대신 그는 현미경에 쓸 특별한 렌즈를 닦으며 그런 시간을 갖는 것에 몰두했다 그가 현미경을 통해 본 것들은 모기의 날개 양의 털, 이의 다리, 사람, 개와 쥐의 피부: 황소의 눈, 거미의 '실 빼는 기관' 물고기의 비늘, 작은 얼룩 자신의 혈액, 그리고 무엇보다도, 알 수 없는, 쉬임없이, 매우 작은 벌레들 헤엄치고 내뿜고 부딪치고 팔짝거리는 간단한 물 속까지도 ​ 불가능해! 대부분의 네덜란드인은 말했다. 안톤 저 사람은 완전히 머리가 돌았어! 사람들은 말했다 그를 스페인으로 보내 버려야 해! 그는 집파리의 두뇌를 보았다..

외국의 시 2016.06.29

태어나기 전에 드리는 기도 - 루이스 맥니스

태어나기 전에 드리는 기도 루이스 맥니스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니, 제 말을 들어주세요. 흡혈박쥐, 쥐, 족제비 또는 발이 안쪽으로 굽은 귀신이 내 가까이로 오지 않게 해주세요.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니, 나를 위로해주세요. 나는 두려워요. 인류가 높은 벽으로 나를 가두지나 않을까, 독한 약물로 나를 중독에 빠뜨리지는 않을까, 교묘한 거짓으로 나를 꼬드기지나 않을까, 검은 선반 위에 올려놓고 나를 괴롭히지나 않을까, 핏물욕조에 나를 처박지는 않을까.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니, 내게 주세요. 나를 어를 물과, 나를 위해 자랄 풀과, 내게 말 건네줄 나무와 내게 노래해줄 하늘과, 내 마음의 등 뒤에서 나를 안내할 새들과 흰 불빛을.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니, 나를 용서해주세요. 세상이 내 안에..

외국의 시 2016.06.29

나의 까마귀 - 레이먼드 카버

나의 까마귀 레이먼드 카버 까마귀 한 마리가 내 창문 밖 나무 가지로 날아들었다 이 까마귀는 테드 휴즈의 것도 갈 웨이의 것도 프로스트의 것도 파스테르나크의 것도 로르카의 것도 아니고 또한 전쟁터에서 피를 파먹는 호머의 까마귀도 아니다. 이것은 그저 까마귀일 뿐 아무 곳에도 결코 아귀가 맞지 않는 삶 아무 것도 말할 만한 것이 없는 새일 뿐이다 잠시 가지에 머물렀다가 날렵하게 아름다운 몸짓을 지으며 날아갔다 내 인생 밖으로 ―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 1938. 5. 25~1988. 8. 2) 미국 작가

외국의 시 2016.06.27

郊外의 그대에게 - 다까무라 고오다로

郊外의 그대에게 다까무라 고오다로 사랑하는 사람이여 그대에게 가는 내 마음은 커더란 바람이다. 지금 물고기의 푸른 껍질에 스민 추운 밤도 이슥하여라. 교외의 집에서 그대여 포근히 잠들라. 너무나도 맑고 투명하여 어린애 같은 그대 앞에서는 모두가 사악한 마음을 지닐 수 없나니 모든 선악은 그대 앞에서는 숨길 수 없나니 그대는 진실로 더없는 심판관 더럽고 타락한 내 모습 속에서도 어린애 같은 티없는 맑음으로써 그대는 아름다운 내 속의 나를 발견했었네 그대로 하여 나도 모르던 나 내 따뜻한 육체 속에 깃들어 있음을 믿는 기쁨이여. 느티나무잎도 다 떨어진 이 겨울밤은 너무나도 적막하여라. 태풍처럼, 태풍처럼 내 마음은 그대에게 가노라. 가서는 대지 속에서 솟구치는 온천처럼 그대의 따뜻한 살결 속에 잠기게 하노라..

외국의 시 2016.03.29

쓸쓸한 歸家 - 다까무라 고오다로

쓸쓸한 歸家 다까무라 고오다로 얼마나 돌아오고픈 집이었는데 아내는 죽어서야 왔다. 칠흑의 시월, 텅 빈 아틀리에의 한 구석에 먼지를 깨끗이 털고 나는 아내를 살며시 눕힌다. 작은 움직임조차도 없는 시체 앞에 나는 망연히 서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병풍을 거꾸로 세우고 촛불을 켜고 향을 사룬다. 그리고 죽은 아내에게 화장을 한다. 모든 일은 저절로 흐른다. 밤이 밝아오는가 하면, 해가 지고 집안은 온통 꽃에 묻히고 시끄러운 가운데 다른 집의 장례식처럼 되고 어느새 아내는 사라져 버린다. 나는 호올로 텅 빈 아틀리에에 마냥 있다. 밖은 휘영청 달밤인 모양이다.

외국의 시 2016.03.29

어리광스런 이야기 - 다까무라 고오다로

어리광스런 이야기 다까무라 고오다로(高村光太郞, 1883-1956) 그녀는 동경엔 하늘이 없다고 한다. 하늘다운 하늘을 보고 싶다고 한다. 놀라서 쳐다본 하늘. 벚나무 푸른 잎 사이로 옛부터 낯익은 파아란 하늘이 못 잊히도록 아스라하다. 희뿌연 지평선의 어스름은 연분홍빛 아침의 촉촉함이다. 그녀는 먼 하늘에 눈주며 속삭인다. 아다다라 산 영마루에 매일 걸려 있는 파아란 하늘이 진짜 하늘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어리광스런 하늘 이야기이다. ―「레몬哀歌」宇石, 1987. 編譯 姜禹植.

외국의 시 2016.03.28

물새와 노는 지에꼬(智惠子) - 다까무라 고오다로

물새와 노는 지에꼬(智惠子) 다까무라 고오다로 쓸쓸한 구쥬구리(九十九里)모래밭에 앉아서 아내는 논다. 수많은 물새들이 아내의 이름을 부른다. 지이, 찌, 찌이, 찌, 찌이―― 모래에 조그만 발자국을 찍으며 물새들이 아내에게 다가온다. 입속말로 늘 뭐라 중얼대는 아내가 두 손을 높이 들고 되부른다. 지이, 찌, 찌이―― 두 손에 든 조갑지를 물새들이 조른다. 아내는 조개를 자륵자륵 던진다. 떼지어 비상하는 물새를 아내가 부른다. 지이, 찌, 찌이, 찌, 찌이―― 세상사 다 어디다 두고 이미 천연의 저편에 선 아내의 뒷모습이 외롭디외로웁다. 두어 마장 떨어진 솔밭 속으로 해는 지고 송화가루 맞으며 나는 하염없이 서 있다.

외국의 시 2016.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