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시 83

해결방법 - 베르톨트 브레히트

해결방법* 베르톨트 브레히트 6월 17일 인민봉기가 일어난 뒤 작가연맹 서기장은 스탈린 가(街)에서 전단을 나누어 주도록 했다. 그 전단에는, 인민들이 어리석게도 정부의 신뢰를 잃어 버렸으니 이것은 오직 2배의 노동을 통해서만 되찾을 수 있다고 씌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부가 인민을 해산해 버리고 다른 인민을 선출하는 것이 더욱 간단하지 않을까? (1953년) ------------------- * 1953년 6월 17일 동베를린에서 일어난 인민봉기에 대한 당국의 억압조치를 시인은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음.

외국의 시 2016.02.06

바퀴 갈아 끼우기 - 베르톨트 브레히트

바퀴 갈아 끼우기* 베르톨트 브레히트 나는 길가에 앉아 있고 운전기사는 바퀴를 갈아 끼우고 있다. 내가 떠나온 곳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가야 할 곳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바퀴 갈아 끼우는 것을 왜 나는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는가? (1953년) ------------------- * 인민봉기를 내면적으로 찬성하면서도 집권당을 공개적으로 반대할 수 없는 동독의 상황. ― 김광규 옮김, 『살아남은 자의 슬픔』, 한마당 1999년

외국의 시 2016.02.06

후손들에게 - 베르톨트 브레히트

후손들에게 브레히트 I 참으로 나는 암울한 세대에 살고 있구나! 악의없는 언어는 어리석게 여겨진다. 주름살 하나 없는 이마는 그가 무감각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웃는 사람은 단지 그가 끔직한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 줄 뿐이다. 나무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이 그 많은 범죄행위에 관해 침묵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거의 범죄처럼 취급받는 이 시대는 도대체 어떤 시대란 말이냐! 저기 한적하게 길을 건너는 사람을 곤경에 빠진 그의 친구들은 아마 만날 수도 없겠지? 내가 아직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믿어 다오. 그것은 우연일 따름이다. 내가 하고 있는 그 어떤 행위도 나에게 배불리 먹을 권리를 주지 못한다. 우연히 나는 해를 입지 않았을 뿐이다.(나의 행운이다하면, 나도 끝장이다.)..

외국의 시 2016.02.06

미지의 여인 - 알렉산드르 블록

미지의 여인 알렉산드르 블록 저녁마다 술집들 위로 떠도는 뜨거운 공기가 거칠고 답답하다 술꾼들의 들뜬 고함소리에는 봄날의 썩는 냄새가 속속들이 베어있다. 저 멀리 뒷골목의 먼지 위로, 교외 별장들의 권태 위로는 빵집 간판이 금빛 살짝 빛나고 아이의 울음이 흩어진다. 그리고 저녁마다 철길 건널목 너머에는 모자를 삐뚜름히 멋을 부린 노련한 재담가들이 숙녀들을 동반하고 운하들 사이를 산책한다. 호수 위에서는 노가 삐걱이고 여인의 기성이 울린다 하늘에는 모든 것에 익숙해져 버린 원반이 무표정하게 휘음하다. 저녁마다 유일한 친구는 내 술잔에 어려 있다. 그 또한 나처럼 쓰고 독하고 신비한 액체로 마취되어 말없이 창백하다. 옆자리 테이블들에서는 졸음에 겨운 웨이터들이 대기하고 술꾼들은 붉은 토끼눈으로 소리친다 "술..

외국의 시 2016.02.03

낙엽을 흩뿌린 단풍나무 - 세르게이 예세닌

낙엽을 흩뿌린 단풍나무(КЛЕН ТЫ МОЙ ОПАВШИЙ) 세르게이 예세닌 낙엽을 흩뿌린 단풍 나무여, 얼어붙은 단풍나무여 어째서 하얀 눈보라 속에 몸을 굽히고 서 있나요 아니면 무언가를 보았나요, 아니면 무슨 소리를 들었나요. 시골 저편으로 산보라도 나가는것 같아요 마치 술에 취한 문지기처럼 길가에 눈더미에 빠져 다리가 얼어붙은 것 같아요. 아, 요즘 웬일인지 나약해진 나는 술잔치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고 갯버들을 만나고, 소나무를 바라보고 눈보라 속에서 그들에게 여름 노래를 불러 주었어요. 나는 마치 한 그루의 단풍 나무 같아요. 낙엽을 흩뿌린 단풍잎이 아니라 있는 힘을 다해 초록빛으로 남으려는, 겸손을 잃어 버리고 완전히 바보가 되어 마치 타인의 아내인 듯 자작나무를 껴안고 있어요.

외국의 시 2016.02.03

목로 술집의 모스크바 - 예세닌

목로 술집의 모스크바 예세닌 그렇다! 이제는 결정된 것이다. 다시는 돌아오는 일이 없게 나는 고향의 들판을 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날개 같은 잎으로 내 머리 위에서 미류나무가 소리를 내지는 않으리라 내가 없는 동안 나지막한 집은 구부정하게 허리를 구부릴 것이고 내 늙은 개는 오래 전에 죽어버렸다 구불구불한 모스크바의 길거리에서 죽는 것이 아무래도 내 운명인 성싶다 나는 이 수렁 같은 도시를 사랑하고 있다 설사 살갗이 늘어지고 설사 쭈글쭈글 늙어빠졌다손 치더라도 조는 듯한 황금빛의 아시아가 성당의 둥근 지붕 위에서 잠들어 버렸다 밤에 달이 비치고 있을 때 달이 비치고 있을 때… 제기랄, 뭐라고 말해야 하나! 나는 고개를 떨구고 간다 골목길을 따라 단골 목로술집으로 소름을 끼치게 하는 이 굴 속에는 왁자지껄..

외국의 시 2016.02.03

나는 첫눈 속을 거닌다 - 세르게이 예세닌

나는 첫눈 속을 거닌다 세르게이 예세닌 나는 첫눈 속을 거닌다 마음은 생기 넘치는 은방울꽃들로 가득 차 있다. 저녁이 나의 길 위에서 푸른 촛불처럼 별에 불을 붙였다. 나는 알지 못한다, 그것이 빛인지 어둠인지? 무성한 숲 속에서 노래하는 것이 바람인지 수탉인지? 어쩌면 들판 위에 겨울 대신 백조들이 풀밭에 내려앉는 것이리라. 아름답다 너, 오 흰 설원이여! 가벼운 추위가 내 피를 덥힌다! 내 몸으로 꼭 끌어안고 싶다. 자작나무의 벌거벗은 가슴을. 오, 숲의 울창한 아련함이여! 오, 눈 덮인 밭의 활기참이여! 못 견디게 두 손을 모으고 싶다. 버드나무의 허벅지 위에서 ----------------------- 예쎄닌(С. А. Есенин, 1895~1925) : 예쎄닌은 상징주의에서 시적 기술을 배웠고..

외국의 시 2016.02.03

겨울길 - 푸슈킨

겨울길 푸슈킨 물결치는 안개 사이로 달이 살며시 나타난다 슬픈 들판에 슬프게 빛을 붓는다 쓸쓸한 겨울 길을 트로이카가 쏜살같이 딜린다 단조로운 말방울소리가 따분하게 울린다 마부의 한가로운 노래 가락엔 무엇인가 정겨움이 묻어나온다 위세 좋은 술판의 떠들썩함 마음속의 애수가…… 불빛도 없고 검은 초가집도 없는 황량한 눈의 벌판 이따끔 줄무늬로 칠한 이정표만 만날 뿐이다 쓸쓸하다 슬프다… 니나 내일은 내일은 사랑스런 너에게로 돌아가 난롯가에서 모든 것을 잊고 너를 실 컷 쳐다보리라 시계 바늘은 소리를 내며 정확한 원을 그릴 것이고 한밤은 우리들을 갈라놓지 않을 것이다 훼방꾼들은 멀리 떼어놓음으로써 우울하구나 니나 길이 쓸쓸하며 마부는 조느라고 노래를 그쳤다 말방울소리는 단조롭고 달빛은 몽롱하다 --------..

외국의 시 2016.02.03

새로운 거상 The New Colossus - 엠마 라자루스(Emma Lazarus)

새로운 거상 The New Colossus (1883)    엠마 라자루스(Emma Lazarus)      정복자의 사지(四肢)를 대지에서 대지로 펼치는   저 그리스의 청동 거인과는 같지 않지만   여기 우리의 바닷물에 씻긴 일몰의 대문 앞에   횃불을 든 강대한 여인이 서 있으니   그 불꽃은 투옥된 번갯불,    그 이름은 추방자의 어머니   횃불 든 그 손은 전 세계로 환영의 빛을 보내며   부드러운 두 눈은 쌍둥이 도시에 의해 태어난   공중에 다리를 걸친 항구를 향해 명령한다.   “오랜 대지여, 너의 화려했던 과거를 간직하라!”   그리고 조용한 입술로 울부짖는다   “너의 지치고 가난한    자유를 숨쉬기를 열망하는 사람들을   너의 풍성한 해안가의 가련한 사람들을 나에게 보내다오   폭..

외국의 시 2016.02.03

산책 - 안나 아흐마또바

산책 안나 아흐마또바 마차에 스쳐 지나는 깃털을 바라보니, 슬픔의 원인도 모르고 마음이 아프다. 구름 낀 하늘 아래 저녁은 조용히 슬픔에 젖는다. 빛바랜 앨범 속에 먹으로 그린 것 같은 블로뉴 숲. 벤진과 라일락 내음, 조심스런 정적. 떨리지 않는 손으로 그는 다시 내 무릎을 만진다. (1913년) ----------------------------------- 아흐마또바(А. А. Ахматова, 1889~1966) : 아끄메이즘을 표방하는 시인들 중에서 가장 이름이 알려진 시인이다. 그녀의 두 번째 시집 『염주(Чётки, 1914)』는 아흐마또바를 바로 유명하게 만들었고, 아끄메이즘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녀의 시는 개인적이고 자서전적인 성격을 띠는데 단순하고 명료한 인간의 언어로..

외국의 시 2016.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