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 부엌 - 천서봉
K의 부엌 천서봉 이제, 불행한 식탁에 대하여 쓰자 가슴에서 울던 오랜 동물에 대하여 말하자 가령 상어의 입속 같은 검은 식욕과 공복의 동굴 속에서 메아리치는 박쥐의 밤들 들개의 허기, 늪처럼 흡입하는 아귀의 비늘과 그 비늘이 돋는 얼굴에 대하여 말하자 하여 그 병의 딱딱한 틈에서 다시 푸른 순(筍)을 발음하는 잡식성의 세계사에 대하여 말을 가둔 열등한 감자와 그 기저의 방 속에서 끝내 다복할 주검에 대하여 말하자 기어이 모든 숨을 도려내고야 말, 아름다운 칼들 가득한 K의 부엌에서 딱딱하게 굳어 기괴한 신탁의 소리를 내고야 말 우리의 혀에 대하여 말하자 간이나 허파 따위를 담고 보글보글, 쉼 없이 끓어오르는 냄비 속 레퀴엠에 대하여 말하자, 우리가 요리하고픈 우리의 부위, 왼손이 끊어내고 싶던 그 왼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