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 박지웅 여자의 혀는 정직하고 차가웠다 입에서 나오는 가장 낮은 온도 잘 가 마트에서 구입한 제품처럼 건넨 잘 가 나는 잘 가를 받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앞뒤 잘린 토막의 말 잘 가는 피가 빠지는 데 몇 달이 걸렸다 몇 달째 꿈쩍하지 않는 잘 가 가끔 이름을 불러보았으나 잘 가는 선뜻 나오지 않았다 고깃덩어리로 썩어가는 잘 가를 꺼내어 몇 번 삼키려 했으나 오래된 관처럼 입이 열리지 않았다 냉장고는 온통 사후의 세계 나는 냉장고에 심장을 넣고 기다린다 내 혀는 아직 핏물이 덜 빠졌다 ―시집 『나비가면』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