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기억을 버리는 법 - 김혜수

공산(空山) 2023. 8. 19. 20:48

   기억을 버리는 법

   김혜수

 

 

   버리자니 좀 그런 것들을
   상자 속에 넣어 높은 곳에 올려놓는다
   가끔 시선이 상자에 닿는다
   쳐다보고만 있자니 좀 그런 것들을
   더 큰 상자에 넣어 창고 속에 밀어버린다
   창고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모서리가 삭아내리는 것들
   자주 소멸을 꿈꾸며
   닳아 내부조차 지워져버린 것들
   가끔 생각이 창고에 닿는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점차
   생각조차 희박해지고
   창고를 넣을 더 큰 상자가 없을 때
   그때 상자 속의 것들은 버려진다

 

   나도자주그렇게 잊혀갔으리라


   

   ―이상한 야유회』 (창비 2010)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로운 기쁨 - 유계영  (0) 2023.08.25
한참이나 물끄러미 쳐다본다 - 조성국  (2) 2023.08.22
와이퍼 - 차성환  (0) 2023.08.02
폭설 카페 - 전영관  (0) 2023.08.02
밤 배 - 이승희  (0) 2023.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