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중매(雪中梅) - 안상학

   설중매(雪中梅)

   안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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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여기서 내가

   눈 속에서 꽃을 피우든지 꽃으로 피어서 눈을 맞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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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꽃으로 향기로울 때

   잎이 없음을 서러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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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잎으로 푸르를 때

   꽃이 없음을 서러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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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금빛 열매를 달았을 때

   향기가 없음을 서러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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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나목으로 동토에 섰을 때

   그 모든 것이 없음을 서러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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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꽃이었고 향기였고 잎이었고 열매였고 나목이었고 또 나는 꽃이었다가 향기였다가 잎이었다가 열매였다가 나목이었다가 또 나는 꽃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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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금 내게 없는 기쁨을 노래한 적 없다

   나는 지금 내게 없는 슬픔을 노래한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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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목이 나목을 잃고 꽃이 꽃을 잃고 열매가 열매를 잃고 잎이 잎을 잃고 향기가 향기를 잃을 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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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에 앞서 잎을 내세운 적 없다 잎에 앞서 열매를 열매에 앞서 나목을 나목에 앞서 꽃을 꽃에 앞서 향기를 내세운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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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눈 속에서 향기를 피우든지 향기로 피어 눈을 맞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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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다만 수많은 하나의 지금

   무수한 하나의 여기에서 눈을 맞으며 서 있을 뿐이다

 

 

   —계간 《창작과비평》 2023 봄, 20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