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삼 33

어머니

어머니 김종삼 불쌍한 어머니 나의 어머니는 아들 넷을 낳았다 그것들 때문에 모진 고생만 하다가 죽었다 아우는 비명에 죽었고 형은 64세때 죽었다 나는 불치의 지병으로 여러 번 중태에 빠지곤 했다 나는 속으로 치열하게 외친다 부인터 공동 묘지를 향하여 어머니 나는 아직 살아 있다고 세상에 남길 만한 몇 줄의 글이라도 쓰고 죽는다고 그러나 아직도 못 썼다고 불쌍한 어머니 나의 어머니

김종삼 2015.12.09

라산스카

라산스카 김종삼 1 바로크 시대 음악 들을 때마다 팔레스트리나 들을 때마다 그 시대 풍경 다가올 때마다 하늘나라 다가올 때마다 맑은 물가 다가올 때마다 라산스카 나 지은 죄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리 2 집이라곤 비인 오두막 하나밖에 없는 초목의 나라 새로 낳은 한 줄기의 거미줄처럼 水邊의 라산스카 라산스카 인간되었던 모진 시련 모든 추함 다 겪고서 작대기를 짚고서 3 미구에 이른 아침 하늘을 파헤치는 스콥소리

김종삼 2015.12.09

園丁

園丁 김종삼 평과(果)나무 소독이 있어 모기새끼가 드물다는 몇 날 후인 어느 날이 되었다. 며칠 만에 한 번만이라도 어진 말솜씨였던 그인데 오늘은 몇 번째나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된다는 길을 기어이 가리켜주고야 마는 것이다. 아직 이쪽에는 열리지 않은 과수밭 사이인 수무나무 가시 울타리 길줄기를 벗어나 그이가 말한 대로 얼만가를 더 갔다. 구름 덩어리 얕은 언저리 식물이 풍기어오는 유리 온실이 있는 언덕 쪽을 향하여 갔다. 안쪽과 주위(周圍)라면 아무런 기척이 없고 무변(無邊)하였다. 안쪽 흙바닥에는 떡갈나무 잎사귀들의 언저리와 뿌롱드 빛깔의 과실들이 평탄하게 가득 차 있었다. 몇 개째를 집어보아도 놓였던 자리가 썩어 있지 않으면 벌레가 먹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 것도 집기만 하면 썩어갔다. 거기를 지킨다..

김종삼 2015.12.09

물桶

물桶 김종삼 희미한 풍금소리가 툭 툭 끊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무엇을 하였느냐는 물음에 대해 다름아닌 人間을 찾아다니며 물 몇 桶 길어다 준 일밖에 없다고 머나먼 廣野의 한복판 얕은 하늘 밑으로 영롱한 날빛으로 하여금 따우에선 -------------------------- 「물통」은 가벼운듯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인생론을 함축하고 있는 작품이다. 제2연의 ‘그동안 무엇을 하였느냐는 물음’은 바로 인생의 존재의미를 묻고 생각하게 돕기 때문이다. 그 질문에 대한 서정적 자아의 대답이 제3연의 ‘人間을 찾아다니며 물 몇 桶 길어다 준 일밖에 없다’이다. 여기서 ‘인간을 찾아다니며’는 ‘타인을 위하여’로, ‘물 몇 桶’은 ‘사소한 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니까 이타적인 긍휼의 선행은 조금밖에 하지 못했다는 ..

김종삼 2015.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