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삼

물桶

공산(空山) 2015. 12. 9. 12:29

   물

   김종삼

 

 

   희미한

   풍금소리가

   툭 툭 끊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무엇을 하였느냐는 물음에 대해

 

   다름아닌 人間을 찾아다니며 물 몇 길어다 준 일밖에 없다고

 

   머나먼 廣野의 한복판 얕은

   하늘 밑으로

   영롱한 날빛으로

   하여금 따우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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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통은 가벼운듯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인생론을 함축하고 있는 작품이다. 2연의 그동안 무엇을 하였느냐는 물음은 바로 인생의 존재의미를 묻고 생각하게 돕기 때문이다. 그 질문에 대한 서정적 자아의 대답이 제3연의 人間을 찾아다니며 물 몇 길어다 준 일밖에 없다이다. 여기서 인간을 찾아다니며타인을 위하여, ‘물 몇 사소한 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니까 이타적인 긍휼의 선행은 조금밖에 하지 못했다는 후회와 자책의 고백으로 들린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인생의 의미는 남을 위해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후회의 목소리를 통해 작은 것이 큰 것이다.’라는 지혜를 덤으로 얻는다.

   뿐만 아니라 그 후회와 자책의 과정을 표현한 제1연의 형상화 방법에서 김종삼 시의 탁월한 미적 성취를 보게 된다. 질문을 받고 생각해 보니 뚜렷하게 내세울 게 없음을 희미한으로 바꾸고, 그 자책과 절망감이 風琴 소리가/ 툭 툭 끊어지는 것으로 변주하여 가슴을 울려 주며, 그 황망한 심정을 툭 툭 끊어지고/ 있었다라는 주관적 행갈이를 통하여 동감케 하는 등의 내용과 형식의 절묘한 조응이 전해 주는 미적 성취에 감흥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제4연의 머나먼 廣野의 한복판에서 실존적 인간의 고독을, ‘얕은/ 하늘 밑으로/ 영롱한 날빛으로에서 인간의 한계성을, ‘하여금 따우에선에서 그러한 인간이 지금 여기서 해야 할 일이 긍휼이라는 사실을 우주적, 종교적, 철학적으로 암시받게 된다. 이러한 김종삼의 서정적 자아가 가는 길이 바로 앞 장에서 논의했던 어린이 이미저리와 물질적 삶을 멀리하는 태도 그리고 세속적인 것에 대한 비판의식과 직통하는 길이다. 그리고 그가 남긴 분단이나 전쟁 소재의 많은 작품들 또한 그러하다. -- 서범석, 「김종삼 시의 셀프 아키타입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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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긷는 일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없어진 일이 되었을 줄 안다. 이웃들과 더불어 우물물을 먹던 시절 물 긷는 일은 고된 일이었고 허드렛일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물’은 어떤 물건이던가. 모든 생명 현상의 근본 바탕이고 오염된 모든 것을 깨끗이 하자는 일의 매개물이다. 이 시는 저승길의 시다. 장례식의 ‘풍금 소리’를 뒤에 둔 한 영혼이 먼 길을 간다. ‘머나먼 광야 한복판’ ‘영롱한 날빛(햇빛)’이 영혼에게 묻는다. 이제 곧 올라갈 ‘얕은 하늘 밑’이다. ‘따(땅) 우에선’ 무엇을 하였느냐는 질문이다. ‘영롱한’ 질문이었으리라. ‘(목마른) 인간(人間)을 찾아다니며 물 몇 통(桶) 길어다 준 일밖에 없다’고 답한다. 이 구절은 겸사(謙辭)의 언어이지만 슬픔이 가득하다. 뜻 있는 삶이란 미리 죽음의 자리에 가서 ‘지금’을 바라본다. 그러면 사는 의미가 보인다. 김종삼에게 ‘물통’은 ‘시’였으리라. 예나 지금이나 ‘물통’ 진 자는 별 대접을 바라지 않는다. ‘물통’을 배달하게 되어 기쁘다. -- 곽재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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