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삼 33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金宗三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아닌 시인이라고.

김종삼 2015.12.10

김종삼 시의 건너뜀과 빈자리 - 서범석

김종삼 시의 건너뜀과 빈자리 서범석(시인/문학평론가/대진대학교 교수) 1. 디아스포라적 삶의 빈자리 김종삼(金宗三, 1921∼1984) 시인이 타계한 것이 불과 30년도 되지 않아 일정부분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간 시인이지만, 몇 가지 생애적 자료의 불확실성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음을 먼저 말하고 싶다. 첫째는 그의 출생지인데, 김종삼 시인의 문학적 삶을 살펴보기 위하여 자료를 뒤지다 보면 모든 자료에서 ‘황해도 은률 출생’이라는 기록을 보게 된다. 그러나 김종삼은 은률 출생이 아니고 ‘평양 출생’이라는 것이다. 아직 정정하게 생존하는 시인의 부인 정귀례 여사의 증언에 따르면, 은률은 시인의 외가가 있던 곳으로 유아시절 얼마 동안 머무른 곳이기는 하지만 김종삼은 평양에서 출생하였다는 것이다. 그의 친형인 ..

김종삼 2015.12.10

造語의 시학 - 김종삼의 삶과 문학 - 권명옥

조어造語의 시학 - 김종삼의 삶과 문학 권명옥(시인·전 세명대학교 교수) 시인 김종삼 (1921~1984)은 생애의 대부분을 낯선 이방의 땅 남한/서울에서 보냈다. 1947년 정월 스물 여섯 나이에 양친 및 막내 종수宗洙(4남)와 월남, 63세를 일기로 사망하기까지 40년 가까이 가난과 소외 그리고 굴욕으로 점철된 삶을 살다 갔다. (국방 경비대 군인 장남 종문宗文과 일본 거류민 종인宗仁(3남)은 월남 길에 함께하지 않았다.) 낯선 땅에서 시를 쓴다는 것에 대해 뒷날 그는 이런 말들을 털어 놓는다. ― 나는 시에 대해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애착도 느끼지 않는다. 다만 창피 안 당할 정도로 써 갈길 뿐이다. ― 살아가노라면 어디서나 굴욕 따위를 맛볼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되건 안 되건 그적거리고..

김종삼 2015.12.10

그리운 안니 . 로 . 리

그리운 안니 . 로 . 리 김종삼 나는 그동안 배꼽에 솔방울도 돋아 보았고 머리 위로는 몹쓸 버섯도 돋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는 이라는 老醫의 음성이 자꾸만 넓은 푸름을 지나 머언 언덕가에 떠오르곤 하였습니다 오늘은 이만치 하면 좋으리마치 리봉을 단 아이들이 놀고 있음을 봅니다 그리고는 얕은 파아란 페인트 울타리가 보입니다 그런데 한 아이는 처마밑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않고 짜증을 내고 있는데 그 아이는 얼마 못 가서 죽을 아이라고 푸름을 지나 언덕가에 떠오르던 음성이 이야기ㄹ 하였읍니다 그리운 안니 . 로 . 리라고 이야기ㄹ 하였읍니다.

김종삼 2015.12.09

김종삼 시의 ‘서정적 자아’와 분단의식 - 서범석

김종삼 시의 ‘서정적 자아’와 분단의식 서범석 1. 분단의 자력선(磁力線) 한국의 근현대문학을 시기 가름할 때, 민족문학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와 분단시대의 문학이다. 물론 태동기인 개화기와 잠깐의 광복기가 있기는 하지만, 개화기는 일제강점 그리고 광복기는 분단시대와 직간접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근현대문학은 일제강점기와 민족분단시대의 두 시기로 가름할 수 있는 것이다. 민족주의 입장에서 보면 일제강점기는 독립을 향한 저항의식이, 민족분단시대에는 통일지향의식이 가장 중요한 가치를 차지하게 됨은 필연적이다. 이러한 시대의식은 그 시대 모든 문학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혹시 그것과 관련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의 간접적 영..

김종삼 2015.12.09

김종삼 시의 ‘셀프 아키타입’ 양상 - 서범석

김종삼 시의 '셀프 아키타입' 양상 서범석 1. 서론 – 탈가정의 비정상적 삶 김종삼(1921∼1984) 시인은 이북 출신으로 6.25 전쟁 전에 가족들이 월남하였고, 본인도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후 전쟁 전에 월남하여 문학적 생애를 대부분 남한에서 살았다. 그래서 디아스포라(diaspora)로서의 어려운 삶을 남한에서 겪으면서 음악과 술 그리고 담배에 과도하게 집착하면서, ‘불쾌’와 ‘노여움’을 느낄 때 뿌리 뽑힌 자로서의 정한(情恨)을 시로 형상화한 시인이다. 그러니까 그의 시는 ‘흩어진 것에 대한 그리움’에서 시작되었으며, ‘상실된 순수 세계’를 향한 염원이 그 목표였다고 할 수 있다. 서울에서의 김종삼의 삶은 부인 정귀례 여사의 증언대로 ‘변태’나 ‘비정상’의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생활인..

김종삼 2015.12.09

시인학교

시인학교 김종삼 공고(公告) 오늘 강사진 음악 부문 모리스 라벨 미술 부문 폴 세잔느 시 부문 에즈라 파운드 모두 결강. 김관식, 쌍놈의 새끼들이라고 소리지름. 지참한 막걸리를 먹음. 교실내에 쌓인 두터운 먼지가 다정스러움. 김소월 김수영 휴학계 전봉래 김종삼 한 귀퉁이에 서서 조심스럽게 소주를 나눔. 브란덴브르그 협주곡 제5번을 기다리고 있음. 교사. 아름다운 레바논 골짜기에 있음. ―「시인학교」시현실사 1977

김종삼 2015.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