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47

고방

고방 백석 낡은 질동이에는 갈 줄 모르는 늙은집난이같이 송구떡이 오래도록 남어 있었다 오지항아리에는 삼촌이 밥보다 좋아하는 찹쌀탁주가 있어서 삼촌의 임내를 내어가며 나와 사춘은 시큼털털한 술을 잘도 채어먹었다 제사ㅅ날이면 귀먹어리할아버지가 예서 왕밤을 밝고 싸리꼬치에 두부산적을 께었다 손자아이들이 파리떼같이 뫃이면 곰의발같은 손을 언제나 내어둘렀다 구석의 나무말쿠지에 할아버지가 삼는 소신같은 집신이 둑둑이 걸리어도 있었다 녯말이 사는 컴컴한 고방의 쌀둑 뒤에서 나는 저녁끼때에 불으는 소리를 듣고도 못들은척하였다 -------------------------------- 집난이 - 시집간 딸 송구떡 - 송기떡 임내 - 흉내 말쿠지 - 말코지. 물건을 걸게 만든 나무갈고리

백석 2016.12.18

오리망아지토끼

오리망아지토끼 백석 오리치를 놓으려 아배는 논으로 날여간지 오래다 오리는 동비탈에 그림자를 떨어트리며 날어가고 나는 동말랭이에서 강아지처럼 아배를 불으며 울다가 시악이 나서는 등뒤 개울물에 아배의 신짝과 버선목과 대님오리를 모다 던저벌인다 장날 아츰에 앞행길로 엄지딸어 지나가는 망아지를 내라고 나는 졸으면 아배는 행길을 향해서 크다란 소리로 -- 매지야 오나라 -- 매지야 오나라 새하려가는 아배의 지게에 치워 나는 山으로 가며 토끼를 잡으리라고 생각한다 맞구멍난 토끼굴을 아배와 내가 막어서면 언제나 토끼새끼는 내 다리아레로 달어났다 나는 서글퍼서 울상을 한다 --------------------------- 오리치 - 야생오리를 잡는 올가미 동비탈 - 동둑비탈 동말랭이 - 동둑마루 동둑 - 큰물이 넘쳐나..

백석 2016.12.18

定州城 - 백석

定州城 백석 山턱 원두막은 뷔였나 불빛이 외롭다 헌깁심지에 아즈까리기름의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잠자리 조을든 문허진 城터 반디불이 난다 파란魂들 같다 어데서 말있는 듯이 크다란 山새 한 마리 어두운 곬작이로 난다 헐리다남은 城門이 한울빛같이 훤하다 날이 밝으면 또 메기수염의 늙은이가 청배를 팔러올 것이다 -------------------------- 헌깁심지 - 헝겊심지

백석 2016.12.18

統營 - 백석

統營 백석 녯날엔 統制使가 있었다는 낡은 港口의 처녀들에겐 녯날이 가지 않은 千姬라는 이름이 많다 미억오리같이 말라서 굴껍지처럼 말없시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千姬의 하나를 나는 어늬 오랜 客主집의 생선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맞났다 저문 六月의 바다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붉으레한 마당에 김냄새나는 비가 날였다 -------------------------- 千姬 - 실제 인물일 수도 있지만 처녀의 음감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음. 미억오리 - 가늘고 긴 미역 꼬투리 소라방등 - 소라 껍질로 만든 등잔

백석 2016.12.18

枾崎(가키사키)의 바다

枾崎의 바다 백석 저녁밥때 비가 들어서 바다엔 배와 사람이 흥성하다 참대창에 바다보다 푸른 고기가 께우며 섬돌에 곱조개가 붙는 집의 복도에서는 배창에 고기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슥하니 물기에 누굿이 젖은 왕구새자리에서 저녁상을 받은 가슴 앓는 사람은 참치회를 먹지 못하고 눈물겨웠다 어득한 기슭의 행길에 얼굴이 해쓱한 처녀가 새벽달같이 아 아즈내인데 病人은 미역 냄새 나는 덧문을 닫고 버러지같이 누었다 ---------------------- 枾崎(가키사키) - 일본 시즈오카현(靜岡縣) 이즈반도(伊豆半島)의 시모다(下田) 항구 근처에 있는 바닷가 마을 참대창 - 참대나무의 가지를 뾰족하게 깎아서 만든 창 께우며 - 꿰이며 배창 - 船倉. 선박 안의 상갑판 아래에 짐을 쌓는 간 왕구새자리 - 왕골자리. ..

백석 2016.02.17

膳友辭

膳友辭 -- 咸州詩抄 4 백석 낡은 나조반에 힌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먹는다 힌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믿없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긴날을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좋은 한 벌판에서 물닭이소리를 들으며 단이슬먹고 나이들은 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소리 배우며 다람쥐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히여젔다 착하디 착해서 세괏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하나 부럽지도 않다 힌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나도 좋을 것 같..

백석 2016.02.17

가무래기의 樂

가무래기의 樂 백석 가무락조개 난 뒷간거리에 빗을 얻으려 나는 왔다 빗이 안 되어 가는 탓에 가무래기도 나도 모도 춥다 추운 거리의 그도 추운 능당 쪽을 걸어가며 내 마음은 웃줄댄다 그 무슨 기쁨에 웃줄댄다 이 추운 세상의 한구석에 맑고 가난한 친구가 하나 있어서 내가 이렇게 추운 거리를 지나온 걸 얼마나 기뻐하며 락단하고 그즈런히 손깍지벼개하고 누워서 이 못된놈의 세상을 크게 욕할 것이다 ―「여성」 3권 10호, 1938. 10. ---------------------------- 가무래기 - 가무락조개 뒷간거리 - 뒷거리 빗 - 빚 능당 - 응달 락단하다 - 즐거워 발을 구르다 그즈런히 - 가지런히

백석 2016.02.17

統營

統營 백석 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갓갓기도 하다 바람 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뽕뽕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령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山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錦이라든 이 같고 내가 들은 馬山 客主집의 어린 딸은 蘭이라는 이 같고 蘭이라는 이는 明井골에 산다든데 明井골은 山을 넘어 冬栢나무 푸르른 甘露 같은 물이 明井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

백석 2016.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