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47

統營 - 南行詩抄 2

統營 -- 南行詩抄 2 백석 統營장 낫대들었다 갓 한닢 쓰고 건시 한접 사고 홍공단단기 한감 끊고 술 한병 받어들고 화륜선 만져보려 선창 갔다 오다 가수내 들어가는 주막 앞에 문둥이 품바타령 듣다가 열이레 달이 올라서 나룻배 타고 판데목 지나간다 간다 ------------------------- 낫대들다 - 맞서서 달려들 듯이 곧장 앞으로 나아가다 홍공단단기 - 붉은 공단천으로 만든 댕기 판데목 - 통영시 앞바다의 충무 운하가 뚫린 어름의 수로. 임진왜란 때에 패잔 왜 수군이 이곳의 육지를 파고 물길을 틔워서 배를 몰아 도주한 데서 붙여진 이름. 한자로는 착량(鑿梁).

백석 2016.02.13

修羅

修羅 백석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날인 것을 나는 아무 생각없시 문밖으로 쓸어벌인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곧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벌이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설어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깨인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걸인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올으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벌이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곻은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벌이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맞나기나..

백석 2016.02.13

北新

北新 -- 西行詩抄 2 백석 거리에는 모밀내가 낫다 부처를 위한다는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 가튼 모밀내가 났다 어쩐지 香山 부처님이 가까웁다는 거린데 국수집에서는 농짝같은 도야지를 잡어 걸고 국수를 치는 도야지 고기는 돗바늘 같은 털이 드문드문 백엿다 나는 이 털도 안 뽑은 도야지 고기를 물구럼이 바라보며 또 털도 안 뽑은 고기를 시껌언 맨모밀국수에 언저서 한입에 꿀꺽 삼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가슴에 뜨끈한 것을 느끼며 小獸林王을 생각한다 廣開土大王을 생각한다 ―「조선일보」 1939. 11. 9. ----------------------- 돗바늘 : 돗자리나 이불을 꿰매는 데 쓰는 큰 바늘

백석 2016.02.10

연자ㅅ간

연자ㅅ간 백석 달빛도 거지도 도적개도 모다 즐겁다 풍구재도 얼럭소도 쇠드랑볓도 모다 즐겁다 도적괭이 새끼락이 나고 살진 쪽제비 트는 기지게 길고 홰냥닭은 알을 낳고 소리치고 강아지는 겨를 먹고 오줌싸고 개들은 게뫃이고 씸지거리하고 놓여난 도야지 둥구재벼오고 송아지 잘도 놀고 까치 보해 짖고 신영길 말이 울고가고 장돌림 당나귀도 울고가고 대들보 우에 베틀도 채일도 토리개도 모도들 편안하니 구석구석 후치도 보십도 소시랑도 모도들 편안하니 ―「조광」 2권 3호, 1936. ---------------------------- 풍구재 : 풍구. 곡물로부터 쭉정이, 겨, 먼지 등을 제거하는 농구 쇠드랑볓 : 쇠스랑 형태의 창살로 들어오는 햇살 도적괭이 : 도둑고양이 새끼락 : 새끼 발가락 홰낭닭 : 홰에 올라 앉은..

백석 2016.02.10

백화(白樺)

백화(白樺) -- 山中吟 백석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山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山 너머는 平安道 땅도 뵈인다는 이 山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조광」 4권 3호, 1938. 3. ----------------------------- 박우물 - 바가지로 물을 뜰 수 있는 얕은 우물.

백석 2016.02.10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은 백석 포근한 봄철날 따디기의 누굿하니 푹석한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두 많이 나서 흥성흥성할 것이다 어쩐지 이 사람들과 친하니 싸단니고 싶은 밤이다 그렇건만 나는 하이얀 자리 우에서 마른 팔뚝의 샛파란 피ㅅ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뜰하던 동무가 나를 벌인 일을 생각한다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즐거이 술을 먹으러 단닐 것과 내 손에는 新刊書 하나도 없는 것과 그리고 그 '아서라 세상사'라도 들을 류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여성」 3권 4호, 1938. 4. --------------------------- 따디기 ..

백석 2016.02.10

산곡(山谷)

산곡(山谷) ― 함주시초(咸州詩抄) 5 백석 돌각담에 머루송이 깜하니 익고 자갈밭에 아즈까리 알이 쏟아지는 잠풍하니 볕바른 골짜기이다 나는 이 골짝에서 한겨울을 날려고 집을 한 채 구하였다 집이 몇 집 되지 않는 골안은 모두 터앝에 김장감이 퍼지고 뜨락에 잡곡 낟가리가 쌓여서 어니 세월에 뷔일 듯한 집은 뵈이지 않었다 나는 자꾸 골안으로 들어갔다 골이 다한 산대 밑에 자그마한 돌능와집이 한 채 있어서 이 집 남길동 단 안주인은 겨울이면 집을 내고 산을 돌아 거리로 나려간다는 말을 하는데 해바른 마당에는 꿀벌이 스무나문 통 있었다 낮 기울은 날을 햇볕 장글장글한 툇마루에 걸어앉어서 지난 여름 도락구를 타고 장진(長津) 땅에 가서 꿀을 치고 돌아왔다는 이 벌들을 바라보며 나는 날이 어서 추워져서 쑥국화꽃도 ..

백석 2016.02.10

백석의 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 이동순

백석의 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 동 순 인간의 말이라고 하는 것이 요즘처럼 그 품격을 잃어버린 적은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말이 스스로의 품격을 잃어버리게 된 모습을 우리는 말의 타락이라고 한다. 말이란 원래 인간의 것이니 말의 타락은 곧 그 시대 그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 생활, 인간 정신의 타락과 다름아니다. 이러한 말의 타락 현상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선 가장 첫번째로 손꼽을 수 있는 것은 식언(食言)일 것이다. 앞서 행한 자신의 말이나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다르게 말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것은 실천보다 목적이 더 급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히 모든 분야에서 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의 식언은 뭇사람의 도덕성을 마비시키고 근원적인 교란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감언..

백석 2016.01.10

여우난곬族

여우난곬族 백석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적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新里 고무 고무의 딸 李女 작은 李女 열여섯에 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土山 고무 고무의 딸 承女 아들 承동이 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든 말 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洪女 아들 洪동이 작은 洪동이 배나무접을 잘 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섬에 반디젓 담..

백석 2015.12.13

모닥불

모닥불 백석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짓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백석 2015.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