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 초롱' 序詩
백석
한울은
울파주가에 우는 병아리를 사랑한다
우물돌 아래 우는 돌우래를 사랑한다
그리고 또
버드나무 밑 당나귀 소리를 임내내는 시인을 사랑한다
한울은
풀 그늘 밑에 삿갓 쓰고 사는 버섯을 사랑한다
모래 속에 문 잠그고 사는 조개를 사랑한다
그리고 또
두툼한 초가지붕 밑에 호박꽃 초롱 혀고 사는 시인을 사랑한다
한울은
공중에 떠도는 흰구름을 사랑한다
골짜구니로 숨어 흐르는 개울물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아늑하고 고요한 시골 거리에서 쟁글쟁글 햇볕만 바래는 시인을 사랑한다
한울은
이러한 시인이 우리들 속에 있는 것을 더욱 사랑하는데
이러한 시인이 누구인 것을 세상은 몰라도 좋으나
그러나
그 이름이 강소천(姜小泉)인 것을 송아지와 꿀벌은 알을 것이다
― 1941년 1월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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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 - 하늘
울파주 - ‘울바자’의 평북 방언 대, 갈대, 수수깡, 싸리 등을 엮어 세워 놓은 울타리
돌우래 - 도루래, 말똥벌레나 땅강아지와 비슷하나 크기는 조금 더 크다. 땅을 파고 다니며 ‘오르오르’ 소리를 낸다. 곡식 을 못 살게 굴며 특히 콩밭에 들어가서 땅을 판다.
임내내는 - ‘흉내내는’의 고어, 평북 방언
버슷 - ‘버섯’의 고어, 방언(평안, 함경)
혀고 -‘켜고’의 고어, 평북 방언
강소천 - 백석의 세 살 아래 제자. 이 서시는 그의 첫 동시집 ‘호박꽃 초롱’ 발간에 부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