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시

월평 「국화」 - 《대구문학》 193호(2024. 5-6월호)

공산(空山) 2024. 5. 24. 17:51

   (전략)
   목소리가 좋으면 그 시를 다시 쳐다보게 된다. 아니, 오래 귀 기울이게 된다. 목소리는 비유를 통해 형상화된다. 어조語調는 독자를 사로잡기도 하고, 멀어지게도 한다. 차가운 음색이 있는가 하면, 한없이 따뜻한 음성이 있다. 시의 내공은 어조가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체나 객체가 겸손하면, 그 시 주변에 사람이 많이 끓고, 반대로 냉정하거나 직선적이면, 하나 둘 독자가 멀어진다. 물론 성깔이 못된 시를 엄청 좋아하는 젊은 마니아mania 층도 두껍다. 어쨌거나 목소리는 그 시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은 틀림없다. 김상동의 「국화」는 묘한 목소리를 가졌다.
 
      이런 경우 3개월도 멀다는 거예요
      2개월 후에 보도록 합시다

      (몇 차례 찬비가 지나가는 동안
      기러기 떼는 북국의 긴 밤들을 물고 왔네)

      그 더디디더디던 2개월이 다 지나고
      내일이면 검사 결과가 나오는데

      만에 하나, 아니 둘에 하나 재발이라면
      아무 약도 듣지 않을 텐데
      생존 기간 중앙값이 4.7개월이라는데

      (울타리 위에까지 내려온 해가
      따스운 손으로 이마를 짚어 주곤 했지)

      밤새 도망만 다니다가
      악몽에서 깨어나 찌뿌둥한 아침
      마당가에 서리 뒤집어쓴 내가 서 있네

      뿌리는 멀쩡하다는 거예요
      새봄에 다시 보도록 합시다
                                             ―김상동,「국화」 전문
 
   「국화」를 다 읽어 내려가도, 행과 연 사이 어디에도 '국화'가 없다. "이런 경우", "2개월 후에" 국화를 "보도록", "북국의 긴 밤들"에게 부탁해야 한다. 시어를 부리고 만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3연에 국화 꽃봉오리가 "내일"쯤 터질 것을, "검사 결과"로 비유한 점은 압권이다. 혹여, 꽃 피지 않으면 큰일날 것처럼 묘사를 끌고 가는 능청 역시 멋지다. 한편 「국화」는 "마당가에 서리 뒤집어쓴 내가" 국화에게 들은 말일 수도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뿌리는 멀쩡"하니, "새봄에 다시" 우리 또 "보도록 합시다"라고, 국화와 시인이 인사를 나누며 배꼽을 잡고 한바탕 웃었나 보다. (김동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