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따스하고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김상동
국민학교 2학년, 젖은 고리땡 바짓가랑이를 모닥불에 돌아서서 말리다가 불이 붙었지 바지를 벗고 나서야 겨우 불을 끌 수 있었지 타다 만 바지는 돌돌 말아 옆구리에 끼고 썰매는 어깨에 메고 내복 바람으로 집에 갔네
엄마는 김치 이파리를 씻어서 장단지에 붙이기를 반복하셨지 예니레가 지나도 낫기는커녕 점점 깊게 곪아가는 상처를 어쩔 거나 아버지의 리어카에 실려 새벽에 당도한 곳은 가축병원이었네 그 허름한 문간방에 보름을 입원하여 큰 개에게 쓰는 분량의 페니실린을 매일 주사 맞았네
사람이나 짐승이나 한 식구라는 것은 부모님의 확고한 사상이었네 조석으로 가마솥에 쇠죽 끓여 소에게 따뜻하게 먹이고 ‘개는 주둥이가 뜨시면 자고 소는 등이 뜨셔야 잘 잔다’며 겨울이면 소 등에 두툼한 삼정을 덮어 주셨지 아버지의 말을 다 알아들으며 논을 갈고 짐을 나르고 송아지를 잘 낳아 주는 암소가 우리 집 상일꾼이자 복덩이였네 방금 쥐를 잡아먹은 고양이가 내 이불 속에서 함께 자던 시절
그래 나는 지금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내가 우리 집 강아지를 형제라 여기는 것도, 둘째가 수의사가 된 것도 그때 쌓은 크나큰 업보 덕분일 거라고, 시가 안 되어도 이 이야기는 시집에 넣어야겠다고
'내가 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쓴바우 (0) | 2021.11.26 |
---|---|
용선대龍船臺 (0) | 2021.07.14 |
도덕산명동道德山鳴動 다람쥐 이필二匹 (0) | 2021.07.07 |
파지破紙 - 김상동 (0) | 2021.06.29 |
옛 나무들을 회상함 - 김상동 (0) | 2021.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