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첫 말문 - 최명길

공산(空山) 2023. 10. 29. 19:02

   첫 말문

   최명길(1940~2014)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은

   단풍이 붉었다.

   천진소나무 숲을 지나서야

   그녀가 첫 말문을 열었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나에게 들려준 첫 말 한마디

   아무것도 몰라요.

   청간천 다리를 건너

   호롱불빛 내다보는 초가 앞까지

   그녀를 바래다주며

   두어 번 옷깃이나 스쳤을까

   초가을 달빛이 갈댓잎에 부딪혔다가

   싸락싸락 떨어지고

   그때마다 여울 물살은 아프게 울었다.

   동해가 그 아래서 으르렁대고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 천진 : 천진은 이쁜 마을이었다. 이 마을을 중심으로 남녘으로는 순채 순 가득한 천진 호수가 맑고 북녘에는 관동팔경의 하나인 청간정이 다락처럼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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