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말문
최명길(1940~2014)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은
단풍이 붉었다.
천진* 소나무 숲을 지나서야
그녀가 첫 말문을 열었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나에게 들려준 첫 말 한마디
아무것도 몰라요.
청간천 다리를 건너
호롱불빛 내다보는 초가 앞까지
그녀를 바래다주며
두어 번 옷깃이나 스쳤을까
초가을 달빛이 갈댓잎에 부딪혔다가
싸락싸락 떨어지고
그때마다 여울 물살은 아프게 울었다.
동해가 그 아래서 으르렁대고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 천진 : 천진은 이쁜 마을이었다. 이 마을을 중심으로 남녘으로는 순채 순 가득한 천진 호수가 맑고 북녘에는 관동팔경의 하나인 청간정이 다락처럼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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