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시스 잠

나는 당나귀가 좋아

공산(空山) 2016. 3. 11. 18:20

   나는 당나귀가 좋아

 

 

   물풀레 나무 긴 울타리를 끼고 걸어가는

   순한 당나귀가 나는 좋다.

 

   당나귀는 꿀벌에 마음이 끌려

   두 귀를 쫑긋쫑긋 움직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태워 주기도 하고

   호밀이 가득 든 부대를 나르기도 한다.

 

   당나귀는 수챗가에 가까이 이르면

   버거정거리며 주춤 걸음으로 걸어간다.

 

   내 사랑은 당나귀를 바보로 안다.

   어쨌든 당나귀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당나귀는 언제나 생각에 젖어 있고

   그 두 눈은 보드라운 비로드 빛이다.

 

   마음씨 보드라운 나의 소녀야,

   너는 당나귀만큼 보드랍지 못하다.

 

   당나귀는 하느님 앞에 있기 때문이다.

   푸른 하늘 닮아서 당나귀는 보드랍다.

 

   당나귀는 피곤하여 가벼운 모양으로

   외양간에 남아서 쉬고 있다.

 

   그 가련한 작은 발은

   피곤에 지쳐 있다.

 

   당나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기가 할 일을 모두 다했다.

 

   그런데, 내 소녀야, 너는 뭘 했지?

   그렇군, 너는 참 바느질을 했지……

 

   하지만 당나귀는 다쳤단다.

   파리란 놈한테 찔렸단다.

 

   측은한 생각이 들 만큼

   당나귀는 너무나 일을 많이 한다.

 

   내 소녀야, 너는 무얼 먹었지?

   ―― 너는 앵두를 먹었지?

 

   당나귀는 호밀조차 먹지 못했다.

   주인이 너무나 가난하기 때문이란다.

 

   당나귀는 고삐를 빨다가

   그늘에 가 누워 잠이 들었다.

 

   네 마음의 고삐에는

   그만한 보드라움이 없단다.

 

   그는 물푸레나무 울타리를 끼고 가는

   아주 순한 당나귀란다.

 

   내 마음은 괴롭다.

   이런 말을 너는 좋아할 테지.

 

   그러니 말해 다오, 사랑하는 소녀야

   나는 울고 있는 걸까, 웃고 있는 걸까?

 

   가서 늙은 당나귀 보고

   이렇게 전해 다오, 나의 마음을.

 

   내 마음도 당나귀와 마찬가지로

   아침이면 신작로를 걸어간다고.

 

   당나귀한테 물어라, 나의 소녀야.

   내가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를.

 

   당나귀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당나귀는 어두운 그늘 속을

 

   착한 마음 한아름 가득 안고서

   꽃 핀 길을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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