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시스 잠 16

조용한 숲 속에

조용한 숲 속에… 조용한 숲 속에, 흘러 가는 시냇물을 가르는, 劍같은 나무 잎들 위에 평화가 있다. 시냇물은 꿈 속에선 양, 이끼들의 금빛 끝에 내려 앉는 해말간 하늘의 푸름을 반사하고. 검은 참나무 밑에 나는 앉았다. 그리고 생각을 버렸다. 지빠귀 새가 나무 높이 내려 앉았다. 그 밖에는 조용할 뿐. 그 고요 속에서 삶은 壯麗하고, 정답고, 엄숙했다. 내 개 두 마리가 날고 있는 파리를 삼키려고 노려보고 있는 동안, 나는 내 괴로움을 대단찮게 생각하게 되었고, 체념이 내 영혼을 슬프게 가라 앉히는 것이었다.

프랑시스 잠 2016.03.08

햇볕 속의 나무딸기들 사이로

햇볕 속의 나무딸기들 사이로… 햇볕 속의 나무딸기들 사이로, 하늘의 푸름 아래 꿀벌들이 잉잉대는 과수원 속을 나는 가고 있었지. 내 나이 아주 젊을 때의 이야기라오. 내가 태어난 곳은 산들이, 산들이 높이 솟은 옆. 그래 이제 난 정녕 느낀다오, 내 영혼 속에 눈(雪)이 있고, 무서리 빛깔의 도랑이 있고, 깨어져 나간 높은 산봉우리들이 있다는 것을. 취할 것 같은 大氣 속에, 눈(雪)과 도랑을 후려치는 바람 속에 猛禽들이 떠도는 산봉우리들이 있다는 것을. 아무렴, 난 정녕 느낀다오, 내가 산을 닮았다는 것을. 내 슬픔은 산에서 자라는 용담 색깔. 우리 집안 조상들엔 아마추어 식물 채집가들이 있었을 거요. 지독히 더운 오후, 초록색 벌레 색깔의 채집통을 메고 써늘한 숲속 그늘 속으로 희귀한 표본 찾아 빠져..

프랑시스 잠 2016.03.08

집 안은 장미와 말벌들로

집 안은 장미와 말벌들로… 집 안은 장미와 말벌들로 가득 차 있겠지. 오후엔 晩禱의 종소리가 들려오리라. 투명한 돌 색의 포도 송이들은 태양 아래 느릿느릿 움직이는 그늘 속에서 잠자듯이 보이리라. 그 가운데서 난 너를 얼마나 사랑하랴! 스물 넷의 내 온 마음, 잘 꼬집는 내 정신 그리고 내 오만과 흰 장미의 내 詩를 네게 바치리. 하지만 난 널 알지도 못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너. 다만 나는 아노라, 네가 살아 있고 나처럼 草原 깊숙히 지금 여기 있다면, 황금색 꿀벌들 나르는 밑에서 우린 웃으며 입맞추리라는 걸. 서늘한 시내 옆, 깊숙한 나무 밑에서 입맞추리란 걸. 들리는 건 따거운 햇빛 뿐이리. 네 귀 위엔 개암나무의 그늘이 드리워지고, 우린 아무도 이야기 못하는 우리의 사랑을 이야기하려 웃음을 멈추고..

프랑시스 잠 2016.03.08

치이즈 냄새 나는

치이즈 냄새 나는… 치이즈 냄새 나는 옷을 입고, 푸른 우산을 가지고, 더러운 양떼를 몰고 너는 언덕의 하늘을 향해 간다. 호랑가시나무나 참나무나 모과나무 지팡이에 몸을 기댄 채. 솟아나온 등어리에 광택 없는 물통을 걸친 당나귀와 거센 털을 한 개를 너는 뒤따라 간다. 너는 마을마다 대장장이 앞을 지나 향내에 싸인 산으로 되돌아 간다. 거기서 관목 덤불 같은 네 흰 양떼는 풀을 뜯으리. 거기, 안개는 길게 끌려 산봉우리들을 감추고, 거기, 깃털 빠진 목의 독수리들이 날고, 밤 안개 속에 붉은 연기가 타오른다. 거기서 너는 고요한 마음으로 바라보리라, 그 끝없이 廣大함 위에 聖神이 떠돌고 있는 것을.

프랑시스 잠 2016.03.08

내 마음 속의 모든 슬픔을

내 마음 속의 모든 슬픔을… 내 마음 속의 모든 슬픔을 네가 알 수 있다면, 병들고 가여운 어느 어머니의 눈물에 넌 그걸 비교하리. 지치고 휑하고, 일그러지고 창백한 얼굴의 어느 어머니, 바로 닥친 죽음을 느끼고, 막내 아가에게 주려고 윤나는 장난감, 그러나 싸구려 장난감을 그 앞에 풀어 보이는 그런 가여운 어머니의 눈물에.

프랑시스 잠 2016.03.08

食堂

食堂 아드리엥 플랑테 氏에게 우리 집 식당에는 윤이 날 듯 말 듯한 장농이 하나 있는데, 그건 우리 大姑母들의 목소리도 들었고 우리 할아버지의 목소리도 들었고 우리 아버지의 목소리도 들은 것이다. 그들의 추억을 언제나 간직하고 있는 장농. 그게 암 말도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그건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까. 거기엔 또 나무로 된 뻐꾹 시계도 하나 있는데, 왜 그런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난 그것에 그 까닭을 물으려 하지 않는다. 아마 부서져 버린 거겠지, 태엽 속의 그 소리도. 그냥 우리 돌아가신 할아버지들의 목소리처럼. 또 거기엔 蜜蠟 냄새와 잼 냄새, 고기 냄새와 빵 냄새 그리고 다 익은 배 냄새가 나는 오래 된 찬장도 하나 있는데, 그건 우리한테서 아무 것도 훔치지 말아야 한다는 ..

프랑시스 잠 2016.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