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시

태어나기 전에 드리는 기도 - 루이스 맥니스

공산(空山) 2016. 6. 29. 21:36

   태어나기 전에 드리는 기도

   루이스 맥니스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니, 제 말을 들어주세요.

   흡혈박쥐, , 족제비 또는 발이 안쪽으로

   굽은 귀신이 내 가까이로 오지 않게 해주세요.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니, 나를 위로해주세요.

   나는 두려워요. 인류가 높은 벽으로 나를 가두지나 않을까,

   독한 약물로 나를 중독에 빠뜨리지는 않을까, 교묘한 거짓으로 나를 꼬드기지나 않을까,

   검은 선반 위에 올려놓고 나를 괴롭히지나 않을까, 핏물욕조에 나를 처박지는 않을까.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니, 내게 주세요.

   나를 어를 물과, 나를 위해 자랄 풀과, 내게 말 건네줄 나무와

   내게 노래해줄 하늘과, 내 마음의 등 뒤에서 나를 안내할

   새들과 흰 불빛을.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니, 나를 용서해주세요.

   세상이 내 안에서 저지르게 될 죄와 그들이 내 입을 통해 하게 될 말과,

   내 머리를 통해 하게 될 생각과,

   나도 어찌할 수 없는 반역자들에 의해 저지르게 될 내 배신과,

   그들이 내 손을 이용해 죽일 내 삶과,

   그들이 내 몸을 통해 살 죽음을.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니, 내게 예행연습을 시켜주세요.

   내가 연기해야 할 부분과 내가 해야 할 역할을

   나이든 사람들이 나를 가르치려 들 때, 관료들이 내게 허세를 부릴 때,

   산이 내개 찡그리고, 연인들이 나를 비웃고, 흰 파도가

   나를 어리석음으로 불러내며 사막이 나를

   운명으로 불러내고 거지가 내 선물을 거절하고

   내 아이들이 나를 저주할 때.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니, 내 말에 귀 기울여주세요.

   짐승 같은 사람이나 자기가 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내 곁에 오지 못하게 해주세요.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니, 오 내게 채워주세요.

   내 인간성을 얼어붙게 하고, 나를 살인적인 자동기계에

   억지로 밀어 넣으려는 사람들, 나를 기계 톱니바퀴로,

   얼굴 달린 물건으로, 그냥 물건으로 만들려는 사람들,

   내 모든 것을 날려버리려는 사람들에게 대항할 힘을,

   엉겅퀴 홀씨처럼 나를 이리로 날려버리고

   또는 저리로 그리고 이리저리로,

   나를 손에 담긴 물건처럼

   엎지르려는 사람들에게

   대항할 힘을.

 

   그들이 나를 돌로 만들거나 나를 엎지르지 못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차라리 나를 죽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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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스 맥니스(1907-1963) ― 아일랜드 시인이자 극작가. 1930년대를 풍미했던 시인 중 한 명. 스스럼없이 가벼운 구어체와 유머를 통해 현대적인 이미지와 관념을 묘사했다. ― 「첫 키스는 사과맛이야 2」다산북스,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