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오래된 책 - 박중기

공산(空山) 2022. 2. 9. 16:36

   오래된 책

   박중기

 

 

   삼십여 년 전

   지인의 권유로 산 책 한 권

   애면글면하면서도 완독하지 못하고 있다

   표지는 어느새 훌쩍 중년을 넘어서고

   책에선 잘 발효된 냄새가 난다

 

   소풍 가듯 읽기도 하고

   데면데면 건성으로 읽기도 하고

   밀애를 나누듯 필사도 했다

   예리한 문장에 마음 다치고

   행간을 놓치고 세월이 대신 읽기도 했다

   남은 것은 여분을 완독하고

   사랑으로 서평을 쓰는 일이다

 

   초판 인쇄로 절판된

   세상 누구에게도 팔린 적 없고

   몸 읽힌 적 없는

   딱 한 권뿐인 희귀본

   ‘당신이라는

   오래된 책

 

 

   ―『시와소금, 2021.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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