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시 78

생각 속의 여우 - 테드 휴스

생각 속의 여우 테드 휴스 나는 상상한다, 이 한밤 순간의 숲을. 다른 무엇인가가 살아있다. 시계의 고독 곁에 그리고 내 손가락들이 움직이는 이 백지 곁에. 창문을 통해 나는 아무 별도 볼 수 없다. 어둠 속에서 비록 더 깊지만 더욱 가까운 무엇인가가 고독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어둠 속에 내리는 눈처럼 차고, 살포시, 여우의 코가 건드린다 잔가지를, 잎사귀를. 두 눈이 도와준다, 이제 막 그리고 또 이제 막, 막, 막 나무 사이 눈 속에 또렷한 자국을 찍는다 하나의 움직임, 그리고 빈터를 대담히 가로질러 온 한 형체의 절름거리는 그림자가 그루터기를 지나 움푹 팬 곳에서 꾸물거리고, 하나의 눈(目) 초록 빛이 퍼지고 깊어지고 짙어지면서, 찬란히, 집중적으로, 제 임무를 다하여 마침내 갑작스럽고 날카로운 ..

외국의 시 2016.01.26

그 겨울날의 일요일들 - 로버트 헤이든

그 겨울날의 일요일들 로버트 헤이든 일요일에도 아버지는 일찍 일어나 그 검푸른 추위 속에 옷을 입고는, 한 주 동안 모진 날씨에 일하느라 갈라져 쑤시는 손으로 재 속의 불을 다시 살려 놓았다.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았다. 나는 잠에서 깨어 추위가 빠개지는 소리를 들었다. 방들이 따뜻해지고 나서야 아버지는 부르셨다, 나는 느릿느릿 일어나 옷을 주워 입고, 그 집의 만성적인 노여움이 두려워, 그분에게 건성으로 말을 건네곤 했다, 추위를 몰아내 주고 내 좋은 구두까지 닦아놓으신 아버지에게 말이다. 내가 그때 어찌, 어찌 알았을 것인가? 사랑의 엄숙하고 외로운 사명을, Those Winter Sundays Robert Hayden Sundays too my father got up early and put his..

외국의 시 2016.01.26

은유 - 실비아 플라스​

은유 실비아 플라스​ 나는 아홉개 음절로 이루어진 수수께끼랍니다. 코끼리이고, 육중한 집이며, 두개의 덩굴손으로 이리저리 거니는 멜론이지요. 오 빨간 열매, 상아, 질좋은 목재여! 이 빵은 이스트로 한껏 부풀려져 커졌답니다. 돈은 이 뚱뚱한 지갑안에서 새로 만들어지고 있구요. 나는 도구이며, 무대이며, 새끼를 밴 암소랍니다. 나는 한 자루의 푸른 사과를 먹고, 종착역도 없는 기차를 탔습니다. Metaphors Sylvia Plath I'm a riddle in nine syllables. An elephant, a ponderous house, A melon strolling on two tendrils. O red fruit, ivory, fine timbers! This loaf's big with ..

외국의 시 2016.01.26

호수의 섬 - 에즈라 파운드

호수의 섬 에즈라 파운드 오 신이여, 비너스여, 도둑 떼의 수호신이여, 간청하노니, 내게 주소서. 조그만 담배 가게를, 선반들에 가지런히 쌓여 있는 작고 반짝이는 상자들과 함께, 묶이지 않은 향기로운 씹는 담배와 독한 살담배와 반짝이는 유리 진열장 아래 흩어진 반짝이는 버지니아 담배가 있고, 너무 번들거리지 않은 천칭 저울도 하나쯤 있는, 잠시 머리를 매만지며, 버릇없는 말로 한두 마디 수작을 거는 매춘부들도 있는. 오 신이여, 비너스여, 도둑떼의 수호신이여, 조그만 담배 가게를 빌려 주거나 아니면 다른 일자리라도 주소서, 쉴 새 없이 머리를 써야 하는 이 빌어먹을 글 쓰는 일만 아니라면. ​The Lake Isle Ezra Pound O God, O Venus, O Mercury, patron of t..

외국의 시 2016.01.26

개의 묘비명(Epitaph to a Dog) - 조지 고든 바이런

개의 묘비명(Epitaph to a Dog) 조지 고든 바이런 이곳 가까이에 유해가 묻힌 이는 허영 부리지 않은 아름다움과 오만하지 않은 힘과 잔인하지 않은 용기와 인간의 악덕이 없는 모든 미덕을 갖췄다. 이 찬사가 인간의 잿더미 위에 새겨진다면 의미없는 아첨이 되겠지만, 1803년 5월 뉴펀들랜드에서 태어나 1808년 11월 18일 뉴스테드 애비에서 죽은 개 ‘보우슨’을 추모하여 바치는 것이니 너무나 정당한 찬사이리라. ---------------------------------- 조지 고든 바이런(George Gorden, Lord Byron, 1788-1824) ― 낭만주의 시인의 선두주자로 유명했던 영국의 시인. 신체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조각같은 외모와 방탕한 기질로 유럽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

외국의 시 2016.01.26

풀 - 칼 샌드버그

풀 칼 샌드버그 (Carl Sandburg, 1878년 ~ 1967년) 아우스테를리츠와 워털루에 시체를 높이 쌓아라. 땅속에 파묻어라 일을 하련다 -- 나는 풀이다, 모든 것을 덮는다. 게티스버그에도 높이 쌓아라. 이쁘레와 베르뎅에도 높이 쌓아라. 땅속에 파묻어라, 일을 하련다. 이 년, 십 년 지나, 손님들은 차장에게 -- 여기가 어디오? 우린 지금 어디 있소? 나는 풀이다 일을 하련다. Grass Carl Sandburg Pile the bodies high at Austerlitz and Waterloo, Shovel them under and let me work- I am the grass; I cover all. And pile them high at Gettysburg And pile the..

외국의 시 2016.01.26

서늘한 무덤 - 칼 샌드버그 ​

서늘한 무덤 칼 샌드버그 ​ ​ ​ ​ 에이브라함 링컨이 무덤 속으로 들어갈 때 그는 배반자들도 암살자도 잊었다... 흙 속에, 서늘한 무덤 속에. 율리씨이즈 그랜트 역시 사기꾼도 월 스트리트도 모두 잊었다. 현금도 부속물도 재가 되어 버렸으니... 흙 속에, 서늘한 무덤 속에. 포플라처럼 아름다운, 십이월 붉은 산사나무 열매처럼 오월의 포포오 열매처럼 감미로운 포카혼타의 육체를 이 여인은 이상히 생각했던가? 기억하고 있을까?... 흙 속에, 서늘한 무덤 속에. 거리 가득히 옷과 식료품을 사는, 영웅에게 갈채를 보내거나 색종이를 던지며 요란히 나팔 부는 이들이여... 애인들은 과연 지는 자인가... 애인보다 더 나은 자 과연 있는가... 흙 속에... 서늘한 무덤 속에. Cool Tombs Carl Sa..

외국의 시 2016.01.26

창가에서(At a Window) - 칼 샌드버그

창가에서(At a Window) 칼 샌드버그 내게 굶주림을 주소서 앉아서 세상에 명령을 내리시는 오 그대 신들이여 내게 굶주림과 고통과 결핍을 주소서, 수치와 실패로 당신들의 부와 명성의 문 밖으로 날 쫓으시고 당신들의 가장 남루하고 지친 굶주림을 주소서! 다만 내게 작은 사랑 하나, 하루의 끝에서 말 건네는 목소리 하나 어두운 방에서 어루만질 손길 하나 남겨두어 오랜 외로움을 깨뜨리게 하소서. 낮의 형상들이 해넘이를 흐릿하게 하는 땅거미 질 무렵 방황하는 서녘별 하나 그림자 모습 변해가는 해변에 문득 나타날 때. 창가로 가서 그곳에서 황혼녘 낮 형상들을 보고 작은 사랑 하나 다가오고 있음을 기다려 알게 하소서. --------------------------------- 칼 샌드버그(Carl A. Sa..

외국의 시 2016.01.26